공연 & 전시
세상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과 그들에게 다가간 이들의 이야기, 고립과 편견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묻다
섬은 처음부터 외로운 곳이었을까 우리는 흔히 섬을 고립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육지와 떨어져 있고, 바다를 건너야만 닿을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떠나고 싶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섬을 외롭게 만드는 것은 지리적인 거리만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편견과 두려움, 이해하려 하지 않는 마음 역시 보이지 않는 바다를 만든다. 음악극 〈섬: 1933~2019〉은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작품은 한센병 환자들이 겪었던 차별과 고립의 역사, 그리고 그들의 삶에 다가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중심에는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던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삶이 놓여 있다. 두 사람은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수십 년 동안 환자들과 함께하며 간호와 돌봄을 실천했다. 이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 반드시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손을 잡고, 아픈 몸을 돌보며, 함께 식사하고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것. 세상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평범한 행동이 무엇보다 절실한 연결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구원하는 일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을 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1933년, 사람을 세상 밖으로 밀어낸 것은 질병만이 아니었다 작품은 세 개의 시간을 오간다. 1933년 소록도, 1966년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찾아온 소록도, 그리고 2019년 발달장애 아동과 가족이 살아가는 오늘의 사회다. 이 세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흘러가지 않고 서로 교차하면서 차별과 돌봄의 의미를 확장한다.  1933년의 중심에는 한센인 백수선이 있다.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은 격리정책에 따라 소록도로 보내졌다. 수선은 소록도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박해봉을 만나지만, 두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질병을 이유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제한했던 시대에 사랑조차 마음대로 지킬 수 없었던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다. 이 이야기가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이 반드시 노골적인 폭력의 모습으로만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다르다는 이유로 거리를 두는 태도, 누군가를 한 사람의 인격보다 특정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먼저 판단하는 시선도 차별을 만들어낸다.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은 혼자 있다는 사실보다, 함께 살아갈 자격이 없다는 듯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일 수 있다. 수선과 해봉의 사랑은 그래서 단순한 비극적 로맨스가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인간은 사랑하고 선택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회가 누군가를 환자라는 이름으로만 기억할 때, 작품은 그 사람에게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루고 싶은 미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되돌려준다.

1966년, 사랑은 특별한 선언보다 반복되는 행동에 가까웠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1960년대 소록도로 향했다. 두 사람은 환자들을 간호하고 돌보며 약 40년 동안 그곳에서 생활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실제 두 간호사의 삶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섬: 1933~2019〉의 중심축을 이룬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단순히 희생과 봉사의 미담으로만 읽는다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좁아진다. 중요한 것은 특별히 선한 두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들이 한센인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았는가에 있다. 누군가에게는 두려움과 격리의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두 간호사에게는 함께 생활하고 돌보아야 할 이웃이었다. 연민은 상대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데 머물 수 있지만, 존중은 상대를 나와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는 행동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종종 세상을 바꾸기 위해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필요한 도움을 건네며, 오랫동안 곁에 머무르는 일도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그 변화는 거창한 구호보다 느리지만 누군가의 삶에 훨씬 깊게 남는다.

2019년, 섬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남았다 작품이 과거의 역사에서 멈추지 않는 이유는 고지선과 그의 딸 지원의 이야기 때문이다. 지선은 난산 끝에 딸을 낳고, 아이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자 혼란과 부정, 죄책감을 경험한다.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사회의 냉담한 시선과 현실적인 장벽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에서 1933년과 2019년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한센인에게 가해졌던 격리와 차별의 역사와 오늘날 발달장애인 및 그 가족이 경험하는 사회적 배제는 동일한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을 하나의 진단명으로 판단하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공동체의 바깥에 두려는 태도에는 공통된 문제가 있다. 2026년 공연을 다룬 리뷰에서도 세 시대가 만나는 구조와, 과거의 혐오가 현재의 다른 형태의 배제로 이어지는 지점이 중요한 감상 요소로 언급된다.  시대가 발전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선의 이야기는 가족의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보여준다. 부모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적 편견과 부족한 지원체계까지 혼자 바꿀 수는 없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더 강해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홀로 감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다.

세 개의 시간이 하나의 노래가 되는 이유 〈섬: 1933~2019〉은 서로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단순히 나열하지 않는다. 마리안느 역의 배우가 고지선을, 마가렛 역의 배우가 백수선을 함께 연기하는 구조를 통해 인물들의 삶을 연결한다. 2026년 시즌에서는 백은혜·정연이 마리안느와 고지선을, 정운선·이지숙이 마가렛과 백수선을 맡는다. 장우성이 극본을, 이선영이 작곡과 음악감독을, 박소영이 연출을 담당한다.  한 배우의 몸을 통해 과거의 돌봄과 현재의 고립이 만나는 순간, 관객은 이 이야기들이 결코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음악 역시 각 시대의 고통을 단순히 슬픔으로 설명하기보다 인물들의 목소리를 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지만, 존중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으며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작품의 위로는 모든 고통이 결국 사라진다는 약속에 있지 않다. 오히려 고통을 겪는 사람을 혼자 남겨두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다. 누군가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곁에 머무를 수 있고, 문제를 즉시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가 건너야 할 바다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음악극 〈섬: 1933~2019〉은 2019년 초연, 2024년 재연을 거쳐 2026년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2026년 9월 22일부터 11월 22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되며, 러닝타임은 인터미션 없는 115분이다.  작품을 보고 나면 ‘섬’이라는 단어가 조금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섬은 단순히 육지에서 떨어진 공간이 아니라, 타인의 무관심과 편견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관계의 거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섬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오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 길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지 않는 태도,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마음,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될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어도, 그 사람이 세상에 혼자 남겨져 있지 않다고 느끼게 할 수는 있다. 〈섬: 1933~2019〉은 바로 그 가능성을 노래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존재하지만, 그 거리를 건너려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모두가 같은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