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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HOPE 리뷰

개봉 후부터 지금까지 온라인이 떠들썩하다. '호프 완전 분석', '호프 망상회' 같은 콘텐츠가 쏟아지고, 관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영화를 해부하며 즐기고 있다. 크리쳐물이라는 장르 안에 가둬두기엔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꽤 크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성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수 있는가. 평온했던 호포항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의 습격을 받는다. 그저 호랑이라는 해솔이 아저씨의 말을 단서 삼아, 범석과 성기는 진상을 파악하러 숲으로, 마을로 향한다. 피해 흔적을 쫓을수록 드러나는 건 호랑이도 곰도 아닌, 이제껏 본 적 없는 기이함이다. 그 시선을 따라가는 관객의 긴장감도 함께 고조된다. 러닝타임 1시간이 지나서야 생명체의 정체가 드러나는데, 이 영화의 영리함은 여기서 시작된다. 피해 현장만으로 강력함을 상상하게 만들고, 보일 듯 보이지 않으며 소리로만 존재를 암시하는 연출로 보이지 않아서 더 두려운 공포를 조성한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가 힘을 더한다. 겁에 질린 황정민의 얼굴만으로 루즈해질 틈이 없고, 그 시선을 따라가는 사이 관객은 자연스럽게 더 깊은 긴장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괴생명체 바미기르의 첫 등장은 단연코 압도적이다. 진격의 거인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지만, 지붕을 뚫고 나타나 사람을 내동댕이치고 일행을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는 파급력은 그 이상이다. 오토바이를 집어 던지며 달려드는 속도감과 낯선 카메라 앵글은 두 손을 쥐게 만들고, 숨을 참았다 내몰아 쉬게 한다. 여기까지는 그저 상대할 수 없는 무서운 괴물일 뿐이다. 그런데 성애의 공격에 다리가 잘려 도망가는 순간부터, 관객의 감정에 알 수 없는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조금씩, 이슬비에 옷이 젖듯 나홍진 감독은 설치해둔 장치들로 관객의 감정을 바꿔간다. 도망치던 바미기르와 범석이 마주치는 순간 영화는 슬로모션으로 전환되고, 범석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젖어든다. 그리고 그 괴물이 "울고 있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이미 범석의 마음은 혼란스럽다. 이 감정은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진다. 감독은 범석의 시선을 통해 정보를 노출하고, 그가 느낀 감정을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이시킨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우리도, 단순히 없애야 할 적으로 여겼지만 절뚝거리며 도망치는 바미기르의 눈물을 마주한 순간 범석이 겪었던 혼란을 함께 느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스며든다. 이제 영화는 외계생명체와 인간을 선악의 구도로 나누지 않고, 서로 '다른 존재'로 묘사하기 시작한다. 다른 크리쳐물과 달리 이 영화는 괴물과 인간의 갈등 구조를 취하지 않는다. 감독은 외계 생명체를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조명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볼수록 '인간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장면이 많다. 외계 생명체의 얼굴을 폄하하는 대사들, 손과 발이 인간과 비슷하다며 관찰하는 대사들. 그 대사가 무색하게, 생명체를 가차 없이 톱질하는 보건소장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절정은 역시 모든 사건의 원흉인 양배의 태도다. 그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사냥에 성공했다는 기쁨으로 칼리의 죽음을 훈장처럼 여긴다. 서울에 가면 값을 후하게 쳐준다는 말, 신선도를 위해 냉동고에 넣어뒀다는 대사는 그가 느껴야 할 죄의식을 오히려 관객에게 떠넘긴다. 이를 대변하듯 범석이 양배를 향해 분노를 쏟아낸다. 생명체를 고깃덩이 대하듯 하는 그의 순수함을 가장한 무지가, 오히려 더 큰 경악을 부른다. 더 놀라운 건 그런 그가 마지막 장면에서 고양이를 칠까 봐 핸들을 꺾는다는 점이다. 생명체를 사냥한 사람이 고양이는 죽이기 싫어하는 이 모순을, 관객 입장에서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양배는 악의성 없이 악을 저지르는 인물이다. 오히려 순수해 보이는 그의 웃음이 기시감을 배가시킨다.
이로써 올라오는 이질감과 죄책감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인간이 갖춰야 할 인간성은 정말 인간에게 있는가. 산속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는 성기 일행의 모습에서마저 먹는 행위가 잔인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성이 결여된 장면들 덕분에 오히려 외계 생명체의 행동이 대비되어 조명된다. 숲속에서 성기 일행이 외계 생명체와 마주쳤을 때, 먼저 공격하는 쪽은 외계생명체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겁에 질린 성기 일행이 기어코 일을 저지른다. 성기와 마베이오가 싸울 때조차 성기는 죽지 않는데, '성기 외계인설'이 나올 정도로 이는 단순한 주인공 버프를 넘어선다. 마베이오는 성기를 죽일 듯 달려들지만, 성애와 범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를 봐주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심지어 대화를 시도하려는 듯한 장면까지 있다. 하지만 상황은 사냥꾼이 먹잇감을 몰아가듯, 결국 대립으로 흘러간다. 모든 갈등의 표면적 원흉은 양배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재가 근본 원인이다. 나홍진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결국 "세상의 모든 비극은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호포항 주민들 입장에서는 낯선 존재가 그저 두렵고, 두렵기에 사냥을 택한다. 하지만 외계 생명체들의 목적은 인간을 해치는 것도 지구를 점령하는 것도 아닌, 그저 왕세자 칼리를 찾는 것뿐이다. 갑자기 나타난 존재로 인한 마을의 비극, 낯선 땅에 착륙해 아이를 잃은 생명체들의 비극, 그리고 영화 말미 쿠얼의 함선이 침몰하는 비극까지 어느 쪽에서 보든 눈앞에 놓인 건 비극뿐이다.

이 지점에서 나홍진의 전작 <곡성>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그는 <곡성>에서 인간에게 찾아오는 비극을 어쩔 수 없는 우연,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것으로 그리며 개인의 잘못에서 비롯된 게 아니니 죄책감을 갖지 말라는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호프>는 그 위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비극은 여전히 어쩔 수 없이 찾아오지만, 이번엔 그 앞에 무력하게 남겨진 존재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존재를 그린다.

제목이 말하듯 영화는 절망 대신 희망을 붙잡는 쪽을 택한다. 함선이 떨어지고 불꽃이 산과 마을을 뒤덮을 때, 범석과 성애는 앞을 향해 달린다. 성애는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범석은 머릿속이 채 정리되지 않은 채로도 어쨌든 계속 뛴다. 단 하루 만에 벌어진 일들이니 그의 이런 반응은 오히려 당연하다. 조르와 마베이요 역시 과거를 뒤로하고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대화를 나눈다. 마베이요는 칼리의 운명을, 나아가 모두의 운명을 바꿔놓겠다고 다짐하고, 조르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믿음을 붙든 채 그에게 운명을 바꿔달라 청한다. 인간에게도 외계 생명체에게도 주어진 상황은 비극적이지만, 그들은 그 비극에 머무르지 않기를 선택한다. 제목이 말하는 희망은 비극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다. 비극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기를 택하는 태도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호프>는 관객에게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결말을 활짝 열어둔 채 해석과 고민의 몫을 관객에게 넘긴다. 그리고 관객들은 감독의 의도대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토론의 장을 열고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어쩌면 이런 현상까지도, 감독이 영화를 통해 건네고자 하는 재미요소이자 영화의 연장선일지도 모르겠다.
글 : 황보라 에디터
bora@banm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