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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 전시

삶이 빛나는 이유는 생각보다 사소한 곳에 있다 —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행복보다,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작고 평범한 순간들에 대하여

미디어2026. 10. 13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목록의 시작

어린 시절에는 행복을 발견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좋아하는 간식을 먹거나 친구와 놀고, 마음에 드는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특별해졌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행복은 점점 복잡한 조건을 갖추어야만 얻을 수 있는 무언가처럼 변한다. 안정적인 직장과 경제적 여유, 성공적인 관계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이러한 익숙한 믿음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 한다. 원작은 영국 극작가 던컨 맥밀런의 〈Every Brilliant Thing〉으로, 조니 도나호와 함께 발전시킨 1인극이다. 이야기는 일곱 살 아이가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의 자살 시도 이후, 어머니에게 세상에는 살아갈 만한 좋은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목록을 작성하면서 시작된다.

목록에 적히는 것은 거창한 성공이나 특별한 기적이 아니다. 아이스크림, 물싸움, 잠들기 전의 이야기처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작고 구체적인 순간들이다.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며 어머니가 다시 삶의 즐거움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목록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했다는 데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그 사람의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곁에 머물며 자신이 발견한 작은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는 일일지도 모른다.



행복의 목록이 삶의 모든 슬픔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목록도 함께 길어진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위한 선물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목록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록이 된다. 사랑을 경험하고, 관계에서 상처받고, 상실을 마주하면서도 주인공은 세상에서 좋은 것들을 계속 발견하려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긍정적인 생각으로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울증은 작은 행복을 많이 발견한다고 반드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가족의 사랑만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환도 아니다.

주인공의 목록은 어머니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이 모두 책임질 수는 없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과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이 힘들어할 때 어떻게든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슬픔에는 즉각적인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 필요한 것은 상대의 감정을 바꾸려는 조언보다 그 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인정하고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곁에서 지지하는 태도다.

이 작품의 위로는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는 약속보다, 고통이 존재하는 삶에도 기쁨과 사랑의 순간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깝다.

관객이 함께 완성하는 한 사람의 인생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이 특별한 이유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도 있다. 무대에는 한 명의 배우가 등장하지만, 공연은 배우 혼자만의 독백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관객들은 행복의 목록을 읽거나 주인공의 삶에 등장하는 인물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에 참여한다.

이러한 관객 참여는 단순한 재미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는 점에서 작품의 주제와 연결된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다른 사람의 삶에 크고 작은 흔적을 남긴다. 우연히 건넨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되기도 하고, 별다른 의도 없이 보여준 친절이 힘든 하루를 견디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모른 채, 누군가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객석의 낯선 사람들이 함께 목록을 읽는 장면은 행복이 반드시 혼자 발견하고 소유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다른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함께 들어주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진다.

어른이 되면서 잊어버린 행복의 감각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배우는 일이지만 동시에 어떤 감각을 잃어버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 이유 없이 좋아했던 것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즐거움에 의미와 효율을 요구하게 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시간에도 생산성을 생각하고, 쉬는 날에는 무언가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러다 보면 행복을 느끼는 순간조차 자신이 충분히 잘 살고 있는지 평가하게 된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의 목록은 이러한 태도를 잠시 멈추게 한다. 행복이 반드시 대단한 사건이나 특별한 성취에서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은 슬픔이 전혀 없는 삶이 아니라, 슬픔 속에서도 자신에게 소중한 순간들을 알아볼 수 있는 삶일지도 모른다.

물론 작은 즐거움을 발견하는 일만으로 경제적 어려움이나 관계의 상처, 정신적인 고통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감각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은 필요하다.

좋아하는 음식을 천천히 먹고,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하고, 익숙한 길에서 계절의 변화를 발견하는 일. 이러한 순간은 삶의 문제를 없애주지는 않지만, 삶이 문제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누군가의 삶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벗어날 때

작품 속 주인공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은 사랑에서 출발했지만, 동시에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책임이었다.

성장한 뒤에도 우리는 비슷한 착각을 하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하면 자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를 충분히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아무리 깊이 사랑하더라도 상대의 모든 고통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가능한 방식으로 함께하는 일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차가운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자신 역시 돌봄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태도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그래서 행복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책임과 상실,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뿐 아니라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함께 보여준다.


삶은 여전히 빛나는 순간을 품고 있다

2026년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10월 17일부터 11월 8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김아영, 정새별, 노재원이 각각 1인극 무대에 오르며, 러닝타임은 90분이다. 

이 작품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힘든 날에는 힘들다고 말해도 되고, 아무것도 좋아할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올 수도 있다. 다만 그러한 순간이 자신의 삶 전체를 설명하는 유일한 문장은 아닐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을 잃고, 어떤 관계와는 작별하며, 때로는 자신이 믿었던 미래를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예상하지 못한 기쁨을 발견하며, 이전에는 몰랐던 자신만의 행복을 알아간다.

삶이 빛나는 이유는 언제나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아름답지 않은 순간들 사이에서도 다시 소중한 것을 발견할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행복을 찾아 떠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 잊고 있었던 작은 기쁨을 하나씩 다시 적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Ice cream.” “아이스크림.”
이 짧은 문장이 특별한 이유는 행복이 반드시 거창한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떠올린 첫 번째 행복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즐거움이었다. 어쩌면 삶을 사랑하는 마음은 대단한 이유를 발견하는 순간보다, 사소한 것을 여전히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이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이라는 목록을 만든다면, 가장 먼저 적고 싶은 작고 소중한 행복은 무엇인가요?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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