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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맥스 베넷 『지능의 기원』이 5억 년에 걸친 뇌의 다섯 번의 혁신을 통해 다시 묻는 인간 지능과 AI의 미래

미디어2026. 10. 07
체스에서는 인간 최고수를 이기는 인공지능이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제대로 넣는 일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조금 이상하다.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고 그림을 만들고 인간처럼 대화를 나누는 기계가 인간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현실의 문제 앞에서 무너진다. AI 연구자이자 기업가인 맥스 베넷은 여기에서 『지능의 기원』을 시작한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AI가 얼마나 똑똑해질 것인가’보다 근본적이다.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똑똑해졌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베넷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향한다. 그것도 인류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 최초의 신경계가 만들어지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관점에서 인간의 뇌는 처음부터 사고하고 철학하고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었다. 최초의 뇌가 해결해야 했던 문제는 훨씬 소박했다.

먹이에는 가까이 가고 위험에서는 멀어지는 것.

살아남는 것.

『지능의 기원』은 이 단순한 능력에서 출발해 뇌가 ‘조종하기(Steering)’, ‘강화하기(Reinforcing)’, ‘시뮬레이션하기(Simulating)’, ‘마음 읽기(Mentalizing)’, ‘말하기(Speaking)’라는 다섯 번의 결정적 혁신을 거쳐 인간 지능에 도달했다고 설명한다. 진화신경과학·비교심리학·AI 연구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한 것이 이 책의 가장 독특한 구조다. 

국내판 『지능의 기원』은 김성훈이 번역하고 KAIST 뇌인지과학과 정재승 교수가 감수했으며, 더퀘스트에서 2025년 1월 출간됐다. 원서는 2023년 출간된 『A Brief History of Intelligence』다. 

인간의 지능은 완성된 설계도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수억 년 동안 덧붙이고 고쳐온 문제 해결의 역사다.

이 관점은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조금 흔든다.

우리는 언어와 추론, 상상력을 가진 인간의 뇌를 진화의 최종 목적지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화에는 애초에 ‘인간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없었다.

필요한 문제가 나타났고 생명은 그것을 해결했다.

움직여야 했고, 선택해야 했고, 실패에서 배워야 했다.

척추동물이 등장하면서 경험의 결과에 따라 행동을 수정하는 강화학습이 발달한다. 어떤 행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기억하고 다음 선택을 바꾸는 능력이다. 현대 AI의 강화학습과 흥미로운 평행선이 만들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생존 경쟁은 점점 복잡해졌다.

시행착오만으로 배우기에는 세상이 너무 위험했다.

실제로 절벽에서 떨어져본 뒤 ‘다음부터 떨어지지 말아야지’라고 학습해서는 늦는다.

그래서 진화는 놀라운 방법을 만들어냈다.

머릿속에서 먼저 해보는 것이다.

포유류의 신피질 발달과 함께 베넷이 세 번째 혁신으로 제시하는 ‘시뮬레이션’ 능력이 등장한다. 실제 행동을 하기 전에 가능한 상황을 내부에서 그려보는 능력이다. 

우리가 ‘내일 회의에서 이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는 것도 이 오래된 능력의 연장선에 있다.

상상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치가 아니었다.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영장류의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다.

세상에는 나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 나를 돕는지, 누가 속이는지, 상대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추측해야 했다. 여기에서 네 번째 혁신인 ‘마음 읽기’가 중요해진다.

타인의 행동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 뒤에 존재하는 마음을 상상하는 능력.

공감과 협력뿐 아니라 경쟁과 속임수까지 가능하게 만든 능력이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 능력은 혼자 더 똑똑하게 생각하는 힘만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만들어볼 수 있는 힘이었다.

이 대목은 『지능의 기원』을 단순한 뇌과학 교양서 이상으로 만든다.

우리의 불안과 후회, 비교와 눈치까지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는 이 질문 때문에 괴롭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상상하는 바로 그 능력이 인간에게 거대한 협력사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마음과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마음이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 혁신이 찾아온다.

언어다.

언어 이전에도 생명은 배우고 상상하고 타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어가 등장하면서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생각이 다른 인간의 머릿속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을 배울 수 있게 되었고, 죽은 사람이 발견한 지식을 다음 세대가 이어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 세대의 지능이 다음 세대의 출발점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베넷의 표현을 빌리면 언어는 인간의 뇌를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기관에서 발명과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매체로 바꾸었다. 

불과 바퀴, 농업, 문자, 수학, 과학, 인터넷 그리고 AI까지.

인간 문명의 거대한 성취는 사실 하나의 천재적인 뇌가 만든 결과가 아니다.

수많은 뇌가 언어를 통해 서로 연결되고, 이전 사람의 생각 위에 다음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올려놓은 결과다.

인간 지능의 가장 놀라운 능력은 모든 것을 혼자 알아내는 데 있지 않다. 서로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연결하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지식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에는 자연스럽게 AI가 기다리고 있다.

베넷은 뇌의 진화와 AI의 발전을 나란히 놓는다.

강화학습, 내부 세계모델, 타인의 마음을 추론하는 능력, 언어 모델까지 현대 AI가 발전시켜온 기술에는 뇌가 진화 과정에서 해결했던 문제들과 흥미로운 유사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베넷은 현재 AI가 특정 영역에서는 인간을 능가하면서도 인간 지능 전체를 재현하지 못했다고 본다. 그의 핵심 주장은 인간과 같은 일반적 지능을 이해하려면 최종 결과인 인간의 뇌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능력들이 어떤 순서와 필요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 시대에 인간의 가치를 묻는 방식도 조금 달라진다.

기계보다 계산을 잘해야 인간다운 것이 아니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해야 인간다운 것도 아니다.

우리의 지능 자체가 수억 년 동안 다른 생명에게서 물려받고 변형한 능력들의 집합이라면 인간과 기계를 단순하게 ‘누가 더 똑똑한가’라는 하나의 점수로 비교하는 것부터 잘못된 질문일 수 있다.

지능은 하나의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우는 능력이며, 실패를 수정하는 능력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세계를 상상하는 능력이다. 다른 존재의 마음을 추측하는 능력이고, 자신의 경험을 언어로 건네 다음 존재가 더 먼 곳에서 시작하도록 만드는 능력이다.

그래서 『지능의 기원』을 읽고 나면 인간의 뇌가 위대해서 감탄하기보다 이상하리만큼 겸손해진다.

우리가 가진 불완전한 뇌는 수많은 생명이 살아남기 위해 조금씩 만들어온 오래된 유산이다.

불안하고, 실수하고, 잘못 판단하고, 때때로 타인의 마음을 오해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고,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상상하며, 혼자서는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다.

어쩌면 지능의 역사는 가장 뛰어난 존재가 되어온 역사가 아니라, 부족한 존재가 부족함을 해결하는 방법을 계속 발명해온 역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AI라는 새로운 지능을 만들어가는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존재 역시 결국 우리 자신이다.

“What separates you from an earthworm is not the unit of intelligence itself—neurons—but how these units are wired together.”
맥스 베넷은 인간과 단순한 생물을 가르는 핵심을 신경세포라는 재료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이 연결된 방식에서 찾는다. 인간의 특별함을 하나의 신비로운 능력에서 찾기보다 수억 년 동안 축적된 연결과 변화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문장이다. 당신이 지금 ‘나의 부족함’이라고 생각하는 능력도 사실은 아직 배우고 수정하는 과정이라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떤 시행착오를 조금 더 허락해주고 싶나요?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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