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thumbnail

도서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 두 존재는 어떻게 서로를 살렸는가

케일럽 카 『친애하는 나의 괴물』이 인간과 고양이의 17년을 통해 다시 묻는 사랑과 신뢰, 상실 그리고 ‘반려’라는 관계의 의미

미디어2026. 10. 07
사랑 이야기는 대개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친애하는 나의 괴물』에서 서로를 발견하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다. 한쪽은 어린 시절부터 폭력과 불신을 경험한 작가 케일럽 카이고, 다른 한쪽은 버려진 뒤 인간을 극도로 경계하게 된 시베리안 포레스트 고양이 마샤다.

2000년대 중반, 카는 버몬트의 한 보호소에서 마샤를 만난다. 보호소 사람들에게조차 다루기 어려울 만큼 사납고 경계심이 강했던 고양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샤는 카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

훗날 카는 인터뷰에서 그 만남을 설명하며 단순하게 말했다.

마샤가 자신을 선택했다고.

그렇게 둘은 뉴욕주 북부 산속의 집으로 향했고, 이후 17년을 함께 살았다. 

『친애하는 나의 괴물』의 원제는 『My Beloved Monster: Masha, the Half-wild Rescue Cat Who Rescued Me』다. 2024년 미국에서 출간됐고, 국내에서는 김명남의 번역으로 다산책방에서 2026년 10월 14일 출간된다. 

제목에 붙은 ‘괴물’이라는 단어는 이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마샤는 얌전하고 사랑스러운 반려묘로 길들여지는 존재가 아니다. 야생성을 간직한 채 산과 숲을 자신의 영역으로 살아간다. 곰에게 공격당하기도 하고 개 무리와 맞서기도 한다. 카는 그런 마샤를 자신에게 편리한 동물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마샤가 어떤 존재인지를 관찰하고, 그녀가 가진 본성을 존중하려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내가 편안해할 수 있는 존재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 그 존재의 일부로 인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흔한 반려동물 에세이에서 멀어지는 것도 이 지점이다.

카에게 마샤는 외로운 인간을 위로하기 위해 등장한 귀여운 동물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의지와 감정, 취향과 두려움을 가진 하나의 독립된 존재다.

카는 오랜 세월 고양이의 행동을 공부하고 함께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마샤의 몸짓과 소리, 습관을 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인간의 언어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에는 결국 알 수 없는 영역이 남는다.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가까워지면 상대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원래 저 사람은 그래”라는 말로 성격을 정의하고, 행동의 이유를 추측하고, 때로는 상대보다 자신이 상대를 더 잘 이해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진짜 가까운 관계는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사랑해도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 여백을 없애려 하지 않는 것.

마샤를 바라보는 카의 태도에는 그런 존중이 있다.

그리고 이 존중은 그의 어린 시절과 대비될 때 더욱 선명해진다.

카의 아버지 루시엔 카는 미국 비트 세대의 핵심 인물들과 가까웠지만 가정에서는 알코올 문제와 폭력적 행동을 보였다. 케일럽 카는 어린 시절 심각한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경험했고, 그 기억은 성인이 된 뒤에도 인간관계와 신뢰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그런 아이에게 고양이는 다른 종류의 관계를 알려주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폭력을 예상하며 상대의 표정을 살피지 않아도 되는 관계.

어린 시절부터 여러 고양이는 카에게 안정적인 동반자였고, 마샤와의 만남은 그 오랜 관계의 가장 깊은 형태가 된다. 

누군가에게 구원받는다는 것은 상처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그 상처를 가진 채로도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관계를 만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에서 ‘누가 누구를 구했는가’라는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다.

카가 보호소에서 마샤를 데려왔으니 표면적으로는 인간이 고양이를 구조했다.

하지만 원서의 부제는 방향을 뒤집는다.

‘나를 구해준 반야생 구조묘 마샤.’

카가 마샤를 돌본 만큼 마샤도 카를 돌본다. 마샤가 다쳤을 때 카가 치료하고 지켜주었다면, 오랫동안 건강 문제를 겪은 카에게 마샤 역시 곁을 지키며 반응했다. 둘은 보호자와 반려동물이라는 단순한 위계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관계가 되어간다. 

출판사가 국내판을 소개하며 내세운 “우리는 서로의 가장 사나운 구원자였다”는 문장이 이 관계를 압축한다. 

우리는 보통 구원을 부드러운 이미지로 생각한다.

다정한 말, 포옹, 위로.

하지만 누군가를 살리는 관계에는 때로 더 거친 것들이 필요하다.

아픈 몸을 돌보는 노동.

상대가 예민해졌을 때 기다리는 인내.

좋은 날뿐 아니라 병들고 늙어가는 시간을 함께 견디는 일.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이별을 알고도 계속 사랑하는 일.

17년이라는 시간은 결국 두 존재를 마지막 장면으로 데려간다.

마샤는 늙고 병들어간다. 카 역시 오랜 질병과 수술을 겪으며 자신의 몸이 무너지는 시간을 통과한다. 그래서 후반부의 이야기는 단순한 동물과 인간의 우정을 넘어 ‘사랑하는 존재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계속 사랑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향한다. 

사랑의 가장 잔인한 조건은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이고,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조건 역시 그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곁에 머무르는 데 있다.

그래서 『친애하는 나의 괴물』은 동시에 애도의 책이다.

마샤와의 시간을 기록한다는 것은 사라진 존재를 되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함께했던 시간이 사라지지는 않았음을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카 자신도 이 책이 출간된 지 한 달여 뒤인 2024년 5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사실을 알고 책을 읽으면 이 회고록은 더욱 특별한 무게를 갖는다. 마샤를 추모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이야기가 결과적으로 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마지막 기록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을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만 기억하면 중요한 절반을 놓친다.

『친애하는 나의 괴물』은 죽음보다 훨씬 많은 페이지를 ‘함께 산다는 것’에 사용한다.

함께 밤을 보내고, 서로의 습관을 배우고, 다치고, 회복하고, 산속을 돌아다니고, 나이가 들고, 다시 서로를 돌보는 시간.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이 관계를 만든다.

그래서 반려라는 말도 새롭게 들린다.

반려는 누군가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다.

나와 전혀 다른 생명에게 내 삶의 일부를 내어주고, 그 존재 때문에 내 시간과 습관이 달라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변화에 기꺼이 동의하는 일이다.

어쩌면 사람에게도 가장 필요한 사랑은 그런 것일지 모른다.

상처를 고쳐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 때문에 조금 이상해진 나의 모습까지 알아보고도 떠나지 않는 존재.

카와 마샤는 서로의 상처를 완전히 치료하지 못했다.

마샤는 끝까지 야생성을 가진 마샤였고, 카 역시 자신의 과거를 지워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도 둘은 함께 살아냈다.

그것이면 충분한 관계도 있다.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아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서로의 곁에서 하루를 더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관계.

『친애하는 나의 괴물』이 말하는 구원은 아마 그곳에 있다.

사랑하는 존재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약속은 결국 제한적이다.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약속은 지킬 수 없지만, 함께 있는 동안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 그 약속 하나가 한 생명을 다음 날까지 살아가게 한다.


“네가 안 죽는다면 나도 안 죽을게, 마샤.”
당신에게도 상처를 없애주지는 못했지만, 그 상처를 가진 모습 그대로 곁에 있어준 ‘나의 구원자’가 있나요?

글  :  미디어 에디터

EDITOR'S PICK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