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 전시
살인도 스타를 만드는 콘텐츠가 되는 도시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를 보고 박수치는가
살인사건이 하나의 쇼가 되는 도시 록시 하트는 무대 위 스타가 되기를 꿈꾸지만 현실은 평범한 주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관계를 맺었던 남자를 살해하고 감옥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남편과 여동생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보드빌 스타 벨마 켈리가 있다. 두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무죄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다. 대중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변호사 빌리 플린은 법정과 언론을 무대로 바꾸고, 두 여성은 살아남기 위해 더 매혹적인 ‘이야기’를 경쟁적으로 만들어낸다. 이 설정은 완전한 허구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기자 모린 댈러스 왓킨스가 1924년 직접 취재했던 뷸라 애넌과 벨바 개트너의 실제 살인 재판을 토대로 1926년 희곡 〈Chicago〉를 썼고, 이후 존 칸더와 프레드 엡, 밥 포시가 이를 뮤지컬로 발전시켰다. 실제 사건에서도 피고인 여성들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고 유명인처럼 소비됐다. 그래서 〈시카고〉의 세계에서 법정은 정의를 판단하는 공간인 동시에 대중을 사로잡아야 하는 엔터테인먼트 무대다.

〈시카고〉가 무서운 이유는 거짓말이 진실을 이겨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진실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록시와 벨마가 원하는 것은 자유보다 ‘관심’이다 록시가 갈망하는 것은 단순한 석방이 아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이다. 처음에는 무대 위 스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살인사건으로 유명해지자 그 관심마저 성공의 기회로 받아들인다. 벨마 역시 자신의 자리를 빼앗는 록시를 경계한다. 감옥에서도 두 사람은 누가 더 억울한가가 아니라 누가 신문 1면을 차지하는가를 놓고 경쟁한다. 그러나 〈시카고〉에서 명성은 잔인할 정도로 짧다. 록시가 대중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순간 벨마는 어제의 스타가 되고, 록시 역시 새로운 사건이 터지는 순간 헤드라인에서 밀려난다. 관심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면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만 자신이 존재한다고 느끼게 된다.

이 이야기가 1970년대 작품인데도 낡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에는 신문 1면 대신 검색 순위와 조회 수, 팔로워와 ‘좋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사건의 전체 맥락보다 몇 초짜리 영상과 자극적인 제목을 먼저 만난다. 무엇이 사실인지보다 무엇이 더 많이 공유되는지가 여론을 움직이는 순간도 있다. 1920년대의 록시가 지금 태어났다면 법정 밖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콘텐츠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빌리 플린이 파는 것은 무죄가 아니라 이야기다 〈We Both Reached for the Gun〉에서 빌리는 록시를 마치 복화술 인형처럼 움직이며 기자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한다. 록시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정하고, 언론은 그것을 받아 적는다. 이 장면은 〈시카고〉가 언론과 여론을 바라보는 방식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준다. 빌리에게 재판은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배심원과 대중이 믿고 싶어 하는 서사를 만들어내는 공연이다. 그래서 대표곡 〈Razzle Dazzle〉의 세계관도 중요하다. 화려한 쇼를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놓친다. 음악과 춤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자체가 작품의 함정이다. 관객은 부패한 사법제도와 살인, 언론의 선정주의를 보면서도 신나는 재즈와 춤에 매혹된다.

〈시카고〉는 관객에게 “대중은 쉽게 속는다”고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실제로 얼마나 기꺼이 매혹되는지를 공연 자체로 증명한다. 화려하지 않은 사람은 투명해진다 이 세계에서 가장 쓸쓸한 사람은 에이모스 하트다. 아내 록시를 위해 애쓰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의 대표곡 〈Mister Cellophane〉에서 에이모스는 자신을 투명한 셀로판에 비유한다. 바로 옆에 있어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다. 록시와 벨마가 어떻게든 ‘보이기 위해’ 살아가는 인물이라면 에이모스는 아무리 애써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 대비는 〈시카고〉가 유명세를 비판하는 방식에 인간적인 깊이를 더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다.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문제는 관심 자체가 아니라 관심을 얻어야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순간이다.

가장 큰 박수를 받는 사람이 반드시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의 삶도 헤드라인에 오르지 않을 뿐 충분히 중요한 이야기다. 이 점에서 〈시카고〉는 묘한 위로를 건넨다. 우리는 모두 록시처럼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더라도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신을 평가할 때가 있다. SNS에 올린 사진의 반응이 적으면 괜히 초라해지고, 다른 사람의 화려한 성취를 보면서 평범한 자신의 하루를 실패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관심은 가치의 정확한 측정기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 중 상당수는 아무도 박수치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죄보다 이미지가 중요해진 순간, 정의는 흔들린다 〈시카고〉가 단순한 범죄 코미디를 넘어서는 또 하나의 이유는 헝가리 출신 수감자 후냑 때문이다. 다른 여성들이 자신의 사건을 능숙하게 이야기로 포장하는 가운데 후냑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 결국 그는 쇼를 만들 능력도, 좋은 변호사를 살 돈도, 대중을 매혹할 이야기 역시 갖지 못한다. 이 장면 앞에서 작품의 웃음은 갑자기 서늘해진다. 같은 사법제도 안에서도 누군가는 돈과 이미지와 언론을 이용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정의가 진실보다 돈과 언어, 이미지에 더 쉽게 반응한다면 법 앞의 평등은 문장으로만 남을 수 있다. 그래서 〈시카고〉의 냉소는 특정한 악인을 향하지 않는다. 록시와 벨마만의 문제도, 빌리 한 사람의 탐욕만도 아니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원하는 언론과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 스타를 만들었다가 새로운 사건이 생기면 곧바로 버리는 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쇼를 완성한다. 관객도 완전히 바깥에 서 있을 수 없다.

50년이 지나도 ‘All That Jazz’가 끝나지 않는 이유 197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시카고〉는 1996년 리바이벌을 통해 다시 폭발적인 생명력을 얻었다. 작품은 화려한 대형 세트보다 무대 위 오케스트라와 검은 의상, 배우의 몸과 춤을 전면에 내세운다. 보드빌 형식으로 구성된 〈All That Jazz〉, 〈Cell Block Tango〉, 〈Roxie〉, 〈Mister Cellophane〉, 〈Razzle Dazzle〉 같은 넘버들이 각각 하나의 쇼처럼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형식 자체가 ‘범죄와 재판까지 쇼 비즈니스가 되는 사회’라는 작품의 풍자를 완성한다. 한국에서는 2000년 초연 이후 2026년까지 1,729회 공연, 누적 관객 약 180만 명을 기록했다. 2024년 시즌은 객석 점유율 100%를 기록했다. 2026년 시즌에는 벨마 켈리 역에 최정원·윤공주·린아, 록시 하트 역에 아이비·티파니 영·김수하, 빌리 플린 역에 박건형·에녹이 출연한다. 김영주·김경선이 마마 모튼, 차정현이 에이모스를 맡으며 린아·김수하·에녹은 이번 시즌 새롭게 합류한다. 특히 아이비는 2026년 8월 브로드웨이 〈시카고〉에서 록시 하트로 무대에 오른 뒤 이번 한국 시즌으로 돌아온다. 익숙한 얼굴과 새로운 캐스트가 만나는 2026년 시즌은 12월 5일부터 2027년 3월 14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에서 공연된다. 러닝타임은 인터미션 20분 포함 145분, 관람등급은 14세 이상이다. 하지만 〈시카고〉가 26년 동안 한국 관객을 붙잡은 가장 큰 이유는 시대가 바뀌어도 작품 속 풍경이 좀처럼 낯설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 사람을 스타로 만들어 돈을 버는 사람, 자극적인 사건을 원하는 미디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재미있게 바라보는 대중. 기술만 달라졌을 뿐 이 욕망의 구조는 여전히 익숙하다.

〈시카고〉의 가장 날카로운 풍자는 무대 위 사람들이 타락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의 쇼를 보며 웃고 박수치는 우리 역시 그 세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