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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생은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 《교생실습》

시험의 정답을 얻기 위해 영혼까지 내놓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모의고사’에 뛰어든 초보 선생님. 《교생실습》은 엉뚱한 호러 코미디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성적이 한 사람의 가치를 결정해버린 교실과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숨어 있다.

미디어2026. 08. 25
시험에는 정답이 있다.

1번이 아니면 2번이고, 맞으면 점수를 얻고 틀리면 잃는다. 학교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어느 순간 시험의 점수가 문제를 얼마나 잘 풀었는지를 넘어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교생실습》은 바로 그 불안에 귀신을 끌어들인다.

한선화가 연기하는 은경은 자신의 모교인 세영여고에 교생으로 돌아온다. 신조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학생들과 금세 어울리는 이른바 ‘MZ 교생’.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근엄한 선생님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학생들이 위험에 빠지는 순간 은경은 가장 먼저 그들 앞에 선다. 

학교에서는 기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흑마술 동아리 학생들이 시험 답을 알려주는 존재와 얽히고, 결국 400살 먹은 일본 요괴 이다이나시와 ‘죽음의 모의고사’를 치르게 된다. 좋은 점수를 얻고 싶다는 평범한 욕망이 목숨과 영혼을 걸어야 하는 상황까지 커진 것이다. 

설정은 황당하지만 그 안의 감정은 현실적이다.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미래가 사라질 것 같고,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인생에서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이들. 영화 속 요괴는 그런 불안을 파고든다.

답을 알려줄 테니 대가를 내놓으라고.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귀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답 하나를 얻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포기해도 괜찮다고 믿게 만드는 세상이 더 무섭다.



《교생실습》은 이 지점에서 단순한 학교괴담을 넘어선다. 사교육의 영향과 입시 경쟁, 교권이 흔들리는 교실의 풍경이 코미디와 호러 사이에 놓인다. 김민하 감독은 무너진 교실과 교육의 문제를 엉뚱한 장르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은경도 처음부터 훌륭한 선생은 아니다.

교생실습은 그에게 하나의 경험이고, 학교에 돌아왔다는 설렘도 크다. 학생들과 세대 차이가 거의 없는 듯 행동하고 교장까지 당황하게 만드는 자유분방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위험해지면서 그의 태도가 달라진다.

선생이 된다는 것은 학생보다 모든 것을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 학생을 자신의 등 뒤에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씨네21이 은경을 설명한 방식도 정확하다. 그는 무서워하면서도 학생들을 등 뒤에 두고 물러서지 않는다. 

여기에 이 영화가 가진 중요한 철학이 있다.

우리는 흔히 어른이 아이에게 정답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삶에는 모의고사처럼 정답지가 없다.

어떤 대학에 가야 행복한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 성공한 것인지, 몇 살까지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 누구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좋은 어른의 역할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답을 찾을 때까지 옆에 있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은경의 성장은 그래서 교사가 되는 과정인 동시에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가진 답을 상대에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의 답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일일 수 있다.



영화는 여기서 더 오래된 역사까지 끌어온다.

이다이나시가 조선에 처음 들어온 시점을 일제강점기로 설정하면서 당시 일제의 교육 침략과 탄압 속에서 사라져간 서당과 민족교육의 역사까지 이야기 안에 담는다. 김민하 감독은 오늘날의 교권 문제를 생각하다 과거 스승과 교육의 역사를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내용을 영화의 세계관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요괴는 단순히 학생들을 놀라게 하는 장치가 아니다.

교육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사람을 성장시키기 위한 교육인가.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을 골라내기 위한 교육인가.

좋은 성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과장되어 있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는 않다.

우리는 이미 너무 자주 숫자로 사람을 설명한다.

점수, 등수, 학점, 연봉, 조회 수.

숫자가 높으면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낮으면 자신에게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숫자는 한 사람의 일부만 보여준다.

시험을 못 본 날에도 그 사람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남들보다 늦게 자신의 길을 발견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다.



《교생실습》이 호러와 코미디를 함께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입시 경쟁이라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영화는 그 현실을 수능 귀신과 흑마술, 죽음의 모의고사라는 터무니없는 세계로 옮겨놓고 웃게 만든 뒤, 그 웃음 뒤에 남아 있는 불안을 바라보게 한다.

한선화 역시 이 작품을 단순한 코미디로 접근하지 않았다. 웃기려고 연기하기보다 상황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무엇보다 학생들을 지켜야 한다는 은경의 마음을 중심에 두었다고 말했다. 

그 태도가 은경이라는 인물을 완성한다.

조금 철없고 말도 거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도망가지 않는 사람.

어쩌면 학생들에게 필요한 선생님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그런 어른인지도 모른다.

자신도 무섭지만 함께 있어주는 사람.

틀렸다고 혼내기 전에 왜 그런 답을 골랐는지 물어봐주는 사람.

성적보다 먼저 한 사람을 바라봐주는 사람.

그래서 《교생실습》이 끝난 뒤 남는 것은 ‘죽음의 모의고사’의 정답보다 은경이 어떤 선생이 되어가는가에 대한 기억이다.

시험은 언젠가 끝난다.

하지만 시험이 끝난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는 대개 정답지가 없다.

그 사실을 먼저 알려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좋은 어른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교육인지도 모른다.

“선생으로서 친구들을 지켜줘야겠다는 진심으로 접근했다.” — 한선화
이 말은 《교생실습》의 중심을 정확히 보여준다. 좋은 선생은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가장 두려운 순간에 도망가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학창 시절에도 정답을 알려준 사람보다, 틀려도 괜찮다고 말해준 선생님이 있었는가?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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