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창섭 〈사계, 그리고 너〉, 사랑이 끝난 뒤에도 계절마다 한 사람이 다시 떠오르는 이유
사람을 잊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한 달, 일 년, 혹은 새로운 사랑을 만날 때까지. 우리는 이별에도 완료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지우고, 연락처를 삭제하고, 더 이상 그 사람의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으면 비로소 끝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기억은 그렇게 논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어느 봄날 익숙한 꽃향기에서 한 사람이 떠오르고, 유난히 뜨거운 여름밤에는 함께 걸었던 거리가 생각난다. 가을의 색깔 하나가 오래전 장면을 불러내기도 하고, 첫눈이 내리면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람에게 무심코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이창섭의 〈사계, 그리고 너〉는 바로 그 마음을 노래한다. 2026년 9월 15일 발표된 이 곡은 앨범 《Lee;Make (Fragmenta Amoris)》에 수록된 발라드다. 보도에서는 시간이 흘러 계절이 여러 차례 바뀌어도 마음에 남아 있는 한 사람과 그 기억을 노래한 곡으로 소개됐다. 지나간 사랑을 억지로 붙잡기보다 함께했던 시간을 조용히 바라보는 정서가 중심에 있다. 제목에는 쉼표가 하나 있다. ‘사계 그리고 너’가 아니라 ‘사계, 그리고 너’. 작은 문장부호지만 곡을 듣고 나면 그 쉼표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이 있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고도 결국 마지막에 남는 한 사람이 있다. 계절은 앞으로 가는데 기억은 자꾸 뒤로 간다.

노래의 시작은 봄이다. 화자는 그 사람을 몰랐다면 따뜻한 봄과 꽃향기를 아무렇지 않게 반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을 경험한 뒤의 계절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다. 한때 행복했던 풍경이 이별 후에는 오히려 기억을 불러내는 장치가 된다. 실제 가사 역시 봄의 꽃내음에서 여름, 가을의 색감, 겨울로 이동하며 관계의 기억을 사계절 위에 겹쳐놓는다. 사랑이 남기는 가장 오래된 흔적이 이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떠났는데 그 사람이 의미를 부여했던 것들은 남는다. 함께 듣던 노래가 있고, 자주 가던 식당이 있으며, 좋아했던 계절과 여행지가 있다. 상대는 더 이상 내 일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사람과 연결된 사물과 장소는 계속 현실에 남아 있다. 그래서 이별은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와 함께 의미가 생겼던 수많은 것들을 다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사계, 그리고 너〉가 이별을 계절에 빗댄 방식이 특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계절은 우리의 사정과 관계없이 돌아온다. 올해 사랑했던 봄은 내년에도 오고, 헤어졌던 겨울 역시 다시 찾아온다. 시간은 앞으로 흐르는데 풍경이 반복되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와 계속 마주친다. 특히 가을을 묘사하는 방식은 인상적이다. 지나간 사람의 흔적을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바라본다.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 해도 이전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보통 우리는 이런 상태를 ‘아직 못 잊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모든 사랑을 깨끗하게 지워야 다음으로 갈 수 있을까. 이 노래는 조금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억한다는 것과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어떤 사람을 떠올린다고 해서 반드시 다시 만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면서도 지금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어쩌면 잘 헤어진다는 것은 기억을 삭제하는 일이 아니라 기억의 자리를 바꾸는 일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하루 전체를 차지했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 열어보는 서랍 하나가 된다. 그 안에는 행복했던 날도 있고, 미안했던 순간도 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장면도 있다. 하지만 굳이 서랍 자체를 없앨 필요는 없다. 그 사람 역시 내가 지금의 내가 되는 과정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사계, 그리고 너〉에서 화자가 바라는 것도 거창한 재회가 아니다. 다시 사랑해달라는 것도, 돌아와 달라는 것도 아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상대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완전히 사라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별 뒤에 남는 가장 솔직한 욕망 중 하나다. 사랑했던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그 행복 속에서 내가 완전히 지워지는 것은 조금 서운하다. 이제 서로 다른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이 상대에게도 의미 있었기를 바란다. 그것은 미련이라고만 부르기 어려운 감정이다.

오히려 함께했던 시간의 의미까지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가깝다. 뮤직비디오 역시 오래된 연인이 함께했던 시간을 되짚는 방식으로 이러한 정서를 따라간다. 음악적으로는 화려한 장르적 변주보다 정통 발라드의 문법에 집중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편곡과 이창섭의 보컬이 함께 고조된다. 담담하게 시작한 회상이 결국 참아왔던 감정으로 커지는 구조다. 이창섭의 목소리가 이 노래와 잘 맞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처음부터 울음을 쏟아내기보다 낮고 묵직한 음색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곡이 진행될수록 감정을 천천히 끌어올린다. 당시 신곡을 소개한 기사에서도 그의 중저음에서 고음으로 이어지는 표현과, 과도하게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 담담한 보컬이 곡의 애틋함을 살린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 노래에는 흥미로운 확장도 있다. 발매 이후 봄·여름·가을·겨울을 각각 테마로 한 라이브 클립이 순차적으로 공개됐다. ‘Autumn (The Stain)’, ‘Winter (The Hold)’, ‘Spring (The Before)’, ‘Summer (The Depth)’라는 부제가 붙었다. 한 곡 안에 존재했던 네 계절을 다시 네 개의 장면으로 나눈 셈이다. 결국 〈사계, 그리고 너〉가 말하는 것은 시간의 아이러니다. 시간은 사람을 멀어지게 하지만 기억까지 반드시 없애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꼭 나쁜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 시간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쪽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상처인 동시에, 그만큼 내가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봄이 다시 와도 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계절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다시 좋아하게 되는 날도 찾아온다. 그때 과거의 사람을 떠올리더라도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잊어서 괜찮아진 것이 아니라, 기억하면서도 괜찮아진 것. 〈사계, 그리고 너〉는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도착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이별의 끝이라고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