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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 《이런 엿같은 사랑》이 묻는 진짜 마음

기억을 잃은 여자 앞에서 남자친구를 자처한 남자. 거짓말에서 시작된 관계는 결국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 기억인지, 선택인지 묻기 시작한다.

미디어2026. 08. 25
사랑했던 기억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질까.

우리는 관계를 기억으로 설명한다. 처음 만난 날, 좋아한다고 말했던 순간, 함께 갔던 장소와 다퉜던 밤. 그런 장면들이 쌓여 두 사람의 역사가 되고, 그 역사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면 어떨까. 상대의 얼굴도, 함께한 시간도, 심지어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관계는 여전히 유효할까.

《이런 엿같은 사랑》은 이 조금 짓궂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하영이 연기하는 고은새는 사고 이후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그녀 앞에 정해인이 연기하는 장태하가 나타나 자신이 남자친구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데 있다. 태하는 거짓말을 하고 있고, 은새는 그것을 믿는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인 척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설정만 보면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태하라는 인물의 과거가 드러날수록 이야기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는 전도유망한 복싱 선수였고 조직의 세계를 거쳐 지금은 소도시에서 복싱 코치로 살아간다. 사랑에는 서툴지만 한 사람을 지키는 일에서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과거와 조직 보스 백상길의 존재가 얽히면서 로맨틱 코미디였던 이야기는 액션과 스릴러, 느와르의 색까지 품는다. 

그런데 이 복잡한 장르의 중심에는 의외로 단순한 감정 하나가 있다.

한 사람을 끝까지 좋아하는 마음이다.



정해인은 제작발표회에서 이 작품을 “달콤하면서도 끈적한 사랑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김장한 감독 역시 제목의 ‘엿’이 욕설처럼 들리는 동시에 달콤하고 찐득한 음식이라는 중의성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엿이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듯 작품 역시 로맨스부터 액션과 스릴러까지 여러 장르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 《이런 엿같은 사랑》은 생각보다 정확하다.

사랑은 언제나 달콤하지 않다.

좋아해서 행복한 순간도 있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비참해지는 순간도 있다. 그만두면 편해질 것을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잊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린다. 사랑이 사람을 구하기도 하지만 가장 깊은 상처를 만드는 것도 사랑이다.

태하에게 은새는 그런 존재다.

그의 사랑은 세련되지 않다.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마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행동이 먼저다. 정해인은 이 인물을 말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보여주는 캐릭터로 완성했고, 극이 액션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싸움의 중심에는 은새를 지키려는 절박함이 놓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문장이 중요한 이유는 은새의 기억 때문이다.

기억을 잃었다는 것은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잠시 자유로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검사로 살아가던 고지원과 기억을 잃은 고은새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기억과 신분을 잃은 그녀는 불안하지만, 동시에 이전의 자신이 만들어놓은 기준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경험한다.



하영은 두 사람의 관계를 ‘불안형 여자친구와 안정형 남자친구’라고 설명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 불안해진 은새가 태하의 변함없는 마음을 경험하면서 사랑을 받고, 다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런 엿같은 사랑》은 단순한 기억상실 로맨스보다 조금 깊어진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자신에게 붙잡혀 살아간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나는 사랑받지 못했으니까.

한 번 실패했으니까.

상처받아봤으니까 다시 믿으면 안 되니까.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나를 설명해주지만 동시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제한하기도 한다. 은새에게 기억상실은 분명 불행한 사건이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이 된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과거를 지워버리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억은 결국 돌아오고, 진실 역시 드러나야 한다.

태하가 시작한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거짓이라도 상대에게 선택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가 진짜 사랑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짓말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알고 난 뒤에도 서로를 다시 선택하는 과정이다.

이 차이는 크다.

모르고 사랑하는 것과 알고도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완벽하다고 믿어서 좋아하는 것과 결함을 알고도 곁에 남는 것도 다르다.

사랑이 환상에서 관계로 변하는 순간은 대개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런 엿같은 사랑》이 기억상실이라는 익숙한 장치를 사용하는 이유도 결국 이것일 것이다. 기억을 지워 두 사람을 처음으로 돌려놓은 뒤 묻는 것이다.

과거의 추억이 없어도 다시 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가.

그리고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뒤에도 같은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가.



사실 우리의 현실에서도 관계는 계속해서 이 질문을 반복한다. 사람은 변하고 상황도 변한다. 처음 사랑했던 사람과 10년 뒤의 사람은 완전히 같지 않다. 연애 초반의 설렘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럼에도 관계가 계속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감정을 보존해서가 아니라 변화한 상대를 계속해서 다시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된 사랑에는 기억보다 선택이 중요하다.

어제 사랑했으니까 오늘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당신을 다시 사랑하기로 결정하는 것.

그것이 관계를 이어간다.

작품 속 ‘엿마을’ 역시 이런 사랑을 조금 더 넓은 의미로 보여준다. 태하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과 가족처럼 연결된 인물들은 로맨스 바깥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지탱하는 모습을 만든다. 정해인은 여러 인물과 각기 다른 관계의 결을 보여주면서 장태하의 인간적인 면모를 확장한다.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한 종류의 사랑만이 아니다.

연인의 사랑도 있고, 가족의 사랑도 있으며, 오래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정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관계에는 공통점이 있다.

완벽해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엉망인 순간에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엿같은 사랑’이라는 제목은 욕처럼 시작해 꽤 따뜻한 문장으로 끝난다.

끈적해서 귀찮고, 쉽게 떨어지지 않아 답답하며, 때로는 너무 달아서 질리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또 누군가를 사랑한다.

상처받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마음을 내어주고, 실패했던 사람이 다시 관계를 시작하며, 떠날 수 있는 순간에도 누군가의 곁에 남는다.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지는 않다.

때로는 정말 엿같다.

하지만 그 엉망진창인 마음 때문에 우리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런 엿같은 사랑》이 끝내 보여주는 것은 완벽한 연애가 아니다.

불완전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붙어 있는 동안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랑에서 바라는 것도 그 정도면 충분한지 모른다.

“달콤하면서도 끈적한 사랑 이야기.” — 정해인
사랑은 깨끗하게 정리되는 감정이 아니다. 기억을 잃어도 남아 있고, 진실을 알면 흔들리며, 끝났다고 생각해도 마음 어딘가에 붙어 있다. 그래서 사랑은 달콤하기만 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지독하게 엉켜도 다시 상대에게 향하기 때문에 특별한지도 모른다. 모든 추억이 사라진 뒤 처음부터 다시 만난다고 해도, 당신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될까?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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