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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억 원을 노리고 아파트 회장이 되려는 전직 조직폭력배. 돈에서 시작된 그의 계획은 뜻밖에도 가족과 이웃,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향해 움직인다.
아파트는 참 이상한 공간이다. 수백 가구가 하나의 건물과 단지를 공유하지만 우리는 옆집 사람의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엘리베이터에서는 함께 서 있으면서 휴대전화만 바라보고, 주차 문제로 얼굴을 붉히면서도 상대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는 알지 못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 살면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아파트》는 바로 그 모순적인 공간을 하나의 작은 사회로 바라본다. 배우 지성 역시 작품을 선택한 이유로 아파트 단지 자체가 “작은 하나의 세상”처럼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그 작은 세상에 박해강이 들어온다. 지성이 연기하는 박해강은 평범한 입주민이 아니다. 전직 오아시스파 보스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다 모든 것을 잃고 아버지처럼 따르던 박용만을 구하기 위해 거액의 돈이 필요해진 인물이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파트에 쌓여 있는 약 178억 원의 장기수선충당금. 해강은 그 돈을 손에 넣기 위해 가짜 가족까지 꾸리고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선거에 뛰어든다. 시작만 놓고 보면 선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아파트》의 재미는 바로 여기서 생긴다. 돈을 노리고 들어온 사람이 점점 돈보다 사람을 보게 된다. 아파트에는 주차 갈등이 있고, 택배 문제가 있으며, 주민 사이의 이해관계와 관리비를 둘러싼 의심도 있다. 실제 우리의 생활에서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문제들이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갈등을 하나씩 해결하는 과정에서 박해강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한다. 그에게 아파트는 처음에는 금고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이 된다. 이 변화가 《아파트》의 중심이다. 우리는 집을 소유하기 위해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그곳에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집을 갖는 걸까.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자산이고, 계층의 상징이며, 때로는 성공을 증명하는 숫자가 된다. 어느 동네인지, 몇 평인지, 얼마인지가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 살아가는지보다 먼저 이야기되기도 한다.


《아파트》는 그 익숙한 시선을 조금 비튼다. 178억이라는 거대한 숫자를 이야기의 중심에 던져놓지만, 정작 작품이 관심을 두는 것은 돈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다. 주민들은 저마다 욕망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몫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조금씩 양보하고 타인의 사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공동체란 좋은 사람들만 모인 공간이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도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고,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관리비 문제를 논의해야 하며, 때로는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웃의 문제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아파트》가 보여주는 공동체는 낭만적이지 않다. 시끄럽고, 피곤하고, 자주 싸운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이다. 박해강 역시 선한 사람으로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계산이 빠르고 상황에 따라 능청스럽게 태도를 바꾸며, 과거 조직 보스로서의 방식도 가지고 있다. 5·6회에서는 장기수선충당금이 사실상 사라진 비리 실태를 마주하며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문제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는 그의 시선이다. 부모 없이 외롭게 자라 세상을 위협적인 곳으로 바라보던 박해강이 아파트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경험하면서 가족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이 지성이 설명한 캐릭터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아파트》는 가족이라는 개념도 흥미롭게 비튼다. 박해강과 강하리가 처음 만드는 가족은 가짜다.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간헐적 가족’에 가깝다. 서류와 이해관계로 연결된 관계다. 그런데 드라마는 오히려 그 가짜 가족을 통해 진짜 가족의 조건을 묻는다. 피가 섞이면 가족일까. 같은 주소에 등록되면 가족일까. 아니면 서로의 곤란한 순간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족일까. 현대의 가족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변하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도 많아졌고, 친구가 가족보다 가까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혈연보다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관계가 삶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는 시대다.


《아파트》가 보여주는 이웃 역시 그런 의미에서 확장된 가족에 가깝다. 처음에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만났지만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관계가 생긴다. 결국 사람을 연결하는 것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이라는 사실을 작품은 유쾌하게 보여준다. 이 드라마에서 ‘돈’ 역시 단순한 악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박해강에게 돈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필요하다. 주민들에게 장기수선충당금은 자신들의 삶과 안전을 위해 쌓아놓은 공동의 자산이다. 돈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것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178억을 둘러싼 싸움은 결국 신뢰를 둘러싼 싸움이 된다. 우리의 돈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우리의 공동체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그리고 권한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작품은 생활 밀착형 코미디를 통해 꽤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럼에도 《아파트》의 온도는 따뜻하다. 지성은 제작발표회에서 작품을 촬영하면서 아파트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이 작품을 통해 “세상의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은 드라마가 향하는 방향과 닮아 있다. 세상에는 비리도 있고 욕심도 있으며 서로를 속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옆에는 또 누군가의 택배를 대신 받아주는 사람이 있고, 넘어졌을 때 손을 내미는 이웃이 있으며, 자기 일이 아니어도 함께 화내주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거대한 아파트와 비슷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간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함께 살아가야 하고,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결국 서로의 손이 필요하다. 박해강은 178억을 얻기 위해 아파트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사람. 가족. 그리고 자신이 돌아갈 수 있는 곳. 《아파트》는 그렇게 묻는다. 집값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그 집 안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화려한 영웅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는 일이 세상을 바꾼다. 《아파트》가 말하는 따뜻함은 바로 그 평범한 관계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