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 전시
근데 이제 줌바를 곁들인, 이상하고 유쾌해서 더 다정한 성장 이야기
사막은 흔히 아무것도 없는 장소로 생각된다. 비는 거의 내리지 않고, 식물이 살아남기 어렵고, 끝없이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실제 사막에도 비는 내린다. 아주 드물게 찾아온 비가 메마른 땅에 닿으면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씨앗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해진, 모래, 고도가 있다. 이름부터 조금 이상하다. 특히 ‘모래’와 ‘고도’라는 이름은 제목 속 사막의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제작사가 공개한 문장들을 보면 이 작품이 무거운 성장담만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해진은 “전학 첫날 기선제압엔 역시 간지가 중요하다”고 외치고, 고도는 씨앗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한다. 모래는 자신이 아주 넓은 사막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진지한 고민 한가운데 뜬금없는 농담이 등장하고, 감정을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순간에는 몸이 먼저 움직인다. 그리고 제목이 예고했듯 그 옆에는 정말 ‘줌바’가 있다. 사람의 마음은 슬플 때조차 슬픔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울다가도 웃고, 상처받은 날에도 배가 고프고, 가장 힘든 순간에도 엉뚱한 농담 하나에 웃음이 터진다. 그래서 ‘근데 이제 줌바를 곁들인’이라는 부제는 단순한 코미디 장치 이상으로 읽힌다. 삶은 언제나 감정에 어울리는 음악만 틀어주지 않는다. 마음은 바닥인데 세상은 평소처럼 돌아가고, 슬픔이 끝나지 않았는데 다음 날 학교나 회사에 가야 한다. 때로는 그런 부조화가 우리를 견디게 한다. 완전히 회복한 뒤에야 다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아직 힘든 상태로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몸을 움직이는 동안 조금씩 살아가는 쪽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것 같은 마음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강한 은유는 역시 ‘사막’이다. 제작사가 공개한 포스터의 문장에는 “나는 나중에 사막에서 살 거야! 아니아니, 엄청 넓은 사막이 될 거야!!”라는 말이 등장한다. 보통 우리는 사막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오히려 사막이 되겠다고 한다. 이 역설 안에는 타인에게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 숨어 있다. 사람은 상처받을수록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고, 좋아하지 않으면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관계가 피곤하면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고, 외로우면서도 누군가 다가오면 먼저 거리를 둔다. 마음속에 일부러 사막을 만드는 셈이다. 아무것도 심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쩌면 아픔을 피하는 대신 기쁨까지 함께 포기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막에도 가끔 비가 내립니다〉는 그런 마음에 거대한 희망을 억지로 심으려 하지 않는다. 제목부터 ‘사막이 결국 숲이 됩니다’가 아니다. 사막은 여전히 사막이고 비는 ‘가끔’ 내린다. 이 표현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인생의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는 순간은 드물다. 외로운 사람이 친구 한 명을 만났다고 영원히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상처를 이해했다고 그 기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떤 날에는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다가오고, 별것 아닌 친절 하나가 하루를 견디게 한다.


고도가 남긴 “그래도. 난 너 친절해서 좋았어”라는 공개 문장이 유독 오래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거대한 사건만이 아니다. 별것 아닌 말 한마디, 기다려준 몇 분, 내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해준 사람이 한 사람의 세계를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인생 전체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이 오늘 하루를 조금 덜 메마르게 만드는 비가 될 수는 있다. 씨앗에게 필요한 것은 평가보다 살아갈 조건 이번 시즌의 공식 프로필에 공개된 고도의 문장 가운데 “좋고 나쁘고는 씨앗들한테는 상관없지 않을까?”라는 말이 있다. 짧지만 작품의 가치관을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우리는 사람을 너무 빨리 평가한다. 좋은 학생과 문제 학생, 사회적인 사람과 내성적인 사람, 잘 적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특히 성장기에는 주변에서 붙인 이름이 자신의 정체성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씨앗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은 씨앗인지 나쁜 씨앗인지 판정받는 일이 아닐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온도와 물, 햇빛을 만나 살아남는 것이다. 사람 역시 비슷하다. 누군가는 관계 속에서 빨리 자라고, 누군가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한 환경에서 문제라고 불렸던 사람이 다른 관계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잘 자라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왜 너는 꽃을 피우지 못했느냐”는 질문보다, 지금 그 사람에게 물과 햇빛이 충분한지를 살펴보는 일일 수 있다. 이 시선은 성장에 대한 우리의 기준까지 조금 흔든다. 성장이라고 하면 우리는 더 강하고, 능숙하고,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사람이 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성장은 자신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수 있게 되는 변화에 가깝다. 도움을 받는 법, 마음을 조금 내어주는 법, 다른 사람의 이상함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 역시 성장이다. 슬픔 옆에서 춤추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줌바다. 제목만 보면 가장 먼저 궁금해지는 단어지만, 작품의 정서를 생각하면 꽤 정확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줌바는 혼자 가만히 생각하는 운동이 아니다. 음악을 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인다. 완벽하게 동작을 맞추지 못해도 몸은 계속 다음 박자로 넘어간다. 삶도 그렇다. 모든 문제를 이해하고 난 뒤에야 다음 날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감정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고, 우리는 그 감정을 데리고 계속 살아간다. 어쩌면 회복은 슬픔을 완전히 없애는 일이 아니라 슬픔이 있는 상태에서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과정에 더 가깝다.


괜찮아져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움직이고 웃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동안 조금씩 괜찮아진다. 그래서 이 작품이 건네는 위로는 지나치게 밝지 않다. “다 잘될 거야”라고 약속하지 않는다. 제목부터 비가 매일 내린다고 하지 않는다. 가끔 내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 가끔이면 충분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친절, 한 번의 만남, 뜻밖의 웃음, 함께 추는 춤처럼 아주 짧은 순간이 오래 버틸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결국 〈사막에도 가끔 비가 내립니다〉는 사막을 없애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곳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작품으로 읽힌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조금씩 메마른 장소를 가지고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기억, 기대했다가 포기한 관계, 다시는 건드리고 싶지 않은 감정 같은 것들이다. 그것을 당장 숲으로 바꾸지 않아도 된다. 비가 한 번 내리고, 씨앗 하나가 살아남고, 옆에 있는 사람과 조금 우스운 춤을 출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날도 있다. 인생의 희망은 사막이 영원히 사라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막에도 언젠가는 비가 내린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