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 전시
변화는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의 몸과 관계와 습관을 조금씩 다르게 만드는 일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아주 잠깐 이상한 상태가 된다. 방금 전까지 당연했던 것이 낯설어지고, 익숙했던 생각에 작은 틈이 생긴다. 전시장을 나선다고 곧바로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바로 이 미세한 순간을 ‘변화’라고 부른다. 2026년 9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72일간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리는 이번 비엔날레의 제목은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You Must Change Your Life)》. 싱가포르 출신 시각예술가이자 기획자인 호추니엔이 예술감독을 맡고 박가희, 브라이언 쿠안 우드, 최경화가 큐레이터로 함께한다. 22개국 43인(팀)이 참여하며, 한국 작가 10팀을 포함해 아시아·유럽·미주·아프리카의 서로 다른 세대와 지역을 아우른다. 전시 제목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1908년 발표한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마지막 구절에서 가져왔다. 시 속 화자는 머리조차 남아 있지 않은 고대 조각의 파편을 바라본다. 완전하지 않은 조각인데도 그 안에서 강렬한 생명과 시선을 감지하고, 마지막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요구와 마주한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중요한 것은 릴케가 어떻게 바꾸라고 설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광주비엔날레 역시 이 문장을 자기계발식 명령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변화의 목적지를 지정하지 않는다. 대신 물질과 몸, 감각과 관계가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과정 자체를 변화의 방법으로 바라본다.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못하게 만드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전시가 말하는 변화는 혁명적인 사건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할 때 직장을 그만두거나 도시를 옮기거나 관계가 끝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사건을 떠올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변화는 훨씬 조용하게 진행된다. 매일 만나는 사람의 얼굴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듯, 우리 역시 반복되는 행동과 관계와 습관 속에서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이번 비엔날레는 바로 이 ‘반복’에 주목한다.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목적지가 아니라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생각을 따라 전시는 다섯 개 갤러리를 하나의 긴 여정처럼 구성한다. 시작은 ‘Molecules & Me’, 분자와 나다. 인간이 감지하기 어려운 가장 작은 규모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하나의 인간도 단단하게 고정된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기억과 습관, 욕망과 관계, 세포와 감정이 끊임없이 결합하고 흩어지는 구성체라고 바라본다. 우리는 흔히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열 살의 나와 스무 살의 나, 지금의 나는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을 뿐 수많은 경험을 통과하며 계속 재구성된 사람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나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계속 변하는 나를 이해하는 일일 수도 있다. 두 번째 ‘Bodies & Bonds’에서는 변화의 크기가 몸과 관계로 확장된다. 가족, 우정, 질병, 욕망, 훈련과 일상의 반복이 인간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살핀다. 여기에서 몸은 피부로 완전히 닫힌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과거의 기억과 언어와 의무를 몸 안에 가지고 살아간다. 관계는 때때로 우리를 구하지만 동시에 구속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힘이 될 때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이 되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규칙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전시는 관계를 무조건 아름답게 바라보지 않고 우리를 묶는 것과 변화시키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소로 이해한다. 세 번째 ‘Landscapes & Learning’에 이르면 시선은 개인의 몸 밖으로 이동한다. 풍경을 단순히 바라보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기억과 역사, 노동과 학습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만들어낸 관계의 장으로 해석한다. 길과 숲과 밭, 학교와 제도 역시 누군가의 반복된 행동으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믿었던 사회의 규칙 역시 언제든 다시 배울 수 있고, 다르게 구성할 수 있다. 오랫동안 반복되었다는 사실이 반드시 그것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네 번째 ‘Cosmos & Change’에서는 인간의 시간보다 훨씬 큰 우주적 규모로 시야가 넓어진다. 계절이 바뀌고 별이 태어나고 사라지며 세계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과정 속에서 변화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존재의 기본 상태가 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조차 거대한 우주의 변화를 거쳐 만들어졌다는 사실 앞에서 ‘변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인간의 욕망은 조금 낯설어진다. 마지막 ‘Air & Articulations’는 다시 공기와 소리, 말이라는 일상적인 감각으로 돌아온다. 전시에서 발생한 말과 감정, 만남이 전시장 밖으로 이동하면서 변화가 계속될 가능성을 남겨둔다. 분자에서 시작해 몸과 관계, 풍경과 우주를 지나 다시 한 사람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이 여정에서 특히 중요한 단어는 ‘실천’이다. 호추니엔과 큐레토리얼 팀은 예술을 완성된 결과물보다 반복되는 연습과 실험으로 바라본다. 예술가는 계속 보고, 만들고, 실패하고, 다시 만든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느 날 완성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누군가의 말을 조금 더 오래 듣고, 익숙한 편견을 의심하고, 실패했던 일을 다시 시도하는 작은 반복 속에서 사람은 변한다.

삶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결심보다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일 가능성이 크다. 이 철학이 ‘광주’라는 도시에서 펼쳐진다는 점도 중요하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창설 이후 광주의 역사와 민주주의, 공동체의 기억을 국제 현대미술의 담론과 연결해왔다. 이번 큐레토리얼 팀 역시 광주를 단순한 전시장 소재지가 아니라 억압과 위기를 집단적 행동을 통해 변화시켜 온 도시로 바라본다. 특히 5·18민주화운동 당시 가족을 잃은 오월어머니집 어머니들이 참여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는 점은 이번 전시가 말하는 ‘실천’의 의미를 현실과 연결한다. 이들의 그림은 전문 미술가의 경력이라는 기준보다 기억하고 견디고 표현해온 삶 자체를 하나의 지속적인 창조적 행위로 바라보게 한다. 여기서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문장의 의미도 조금 달라진다. 변화는 개인의 성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다른 사람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개인의 선택은 공동체와 사회를 조금씩 구성한다. 기후변화와 민주주의의 후퇴, 팬데믹처럼 개인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위기 앞에서 우리는 쉽게 무력감을 느낀다. 호추니엔을 예술감독으로 선정하면서 광주비엔날레가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런 시대적 조건 속에서 예술이 개인의 무력감을 넘어 집단적 실천과 연대를 만들어낼 가능성이었다.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과,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전혀 같은 뜻이 아니다. 이 문장은 이번 비엔날레가 건네는 중요한 위로이기도 하다. 우리는 너무 자주 ‘변화’를 완성된 결과로 평가한다. 운동을 시작했다가 며칠 쉬면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관계를 바꾸려다 다시 같은 실수를 하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변화가 반복되는 실천이라면 실패 역시 그 과정 안에 포함될 수 있다. 어제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된다. 다시 시작하는 행동 자체가 이미 변화의 일부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그래서 거대한 현대미술 행사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생활에 관한 전시처럼 읽힌다. 참여 작가에는 권병준·박찬경, 남화연, 정금형, 임동식, 루양, 매튜 바니, 시에테칭, 리지아 클라크, 사오다트 이스마일로바 등 서로 다른 세대와 매체를 다뤄온 작가들이 포함된다. 자연미술가 우평남, 제주 화산석, 운림산방의 계보처럼 일반적인 현대미술 작가 목록에서는 다소 낯선 존재들도 함께 놓인다. 하나의 장르나 미술사적 계보보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서로 다른 ‘실천의 방식’을 연결하려는 구성이다. 전시장 밖으로도 시선은 확장된다.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통해 여러 국가와 기관의 전시가 광주의 문화시설과 역사적 장소 곳곳에서 이어진다. 본전시가 하나의 완결된 세계라기보다 도시 전체에서 서로 다른 예술적 실천이 만나고 충돌하는 구조를 지향하는 셈이다. 결국 이 전시는 관객에게 “이 작품을 이해했는가”보다 다른 질문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작품 하나를 보고 생각이 조금 달라졌는가. 다른 사람의 삶을 이전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는가. 내가 너무 오래 당연하다고 믿어온 것이 무엇인지 발견했는가. 예술은 우리 대신 세상을 바꿔주지 않는다. 전시 한 번을 본다고 성격이 달라지거나 사회의 문제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예술은 익숙한 세계를 바라보던 우리의 시선을 아주 조금 이동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이동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어쩌면 삶이 바뀌는 순간은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날이 아니라, 더 이상 예전과 똑같이 볼 수 없게 된 날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9월 5일 문을 연다. 이 글을 쓰는 9월 4일 현재는 아직 일반 관람 개막 전이기에 실제 관람 후기를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인용하기보다, 공식 큐레토리얼 자료와 공개된 참여 작가·전시 구성에 근거해 읽는 편이 정확하다. 전시는 11월 15일까지 이어지며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관람할 수 있다. 일반 성인 현장 입장료는 2만 원이다. 그리고 전시장 입구에서 다시 그 문장을 만날 것이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다섯 개의 전시장을 지나고 나면 그 문장은 명령보다 가능성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의 모습으로 영원히 고정된 사람이 아니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역시 지금의 모습 그대로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가능성.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때로 변해야 한다는 요구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