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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 전시

창문 너머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아이 —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거짓말보다 먼저 들여다봐야 할 외로움에 대하여

미디어2026. 09. 04
세상에는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괜찮아서가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다. 에반 핸슨도 그런 사람이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이어가는 일이 어렵고, 학교에서는 언제나 혼자인 것 같은 고등학생. 심리 치료의 하나로 매일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지만, 편지 속에 적힌 ‘좋은 하루’는 좀처럼 현실이 되지 않는다. 〈디어 에반 핸슨〉은 바로 이 조용한 고립에서 출발한다.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이 음악과 가사를, 스티븐 레번슨이 극본을 맡은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 6관왕을 기록했고, 한국에서는 2024년 라이선스 초연을 거쳐 2026년 두 번째 시즌을 맞았다. 

이야기를 움직이는 것은 에반이 자기 자신에게 쓴 편지 한 장이다. 학교에서 만난 코너 머피가 그 편지를 가져가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난 코너의 가족은 아들이 가지고 있던 편지를 에반에게 남긴 유서라고 오해한다. 에반은 사실을 바로잡으려 하지만 슬픔에 잠긴 가족 앞에서 차마 진실을 꺼내지 못한다. 그리고 말한다. 자신과 코너가 친구였다고. 아주 작은 거짓말 하나가 그렇게 시작된다. 

문제는 에반의 거짓말이 악의에서 시작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그의 행동을 선의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는 가짜 이메일을 만들고, 존재하지 않았던 코너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점점 더 깊이 타인의 슬픔 속으로 들어간다. 관객은 그가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그를 완전히 미워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거짓말이 커질수록 그 밑에 숨어 있던 에반의 진짜 욕망이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에반이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세계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그동안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아이에게 코너의 가족은 처음으로 자리를 내어준다. 누군가는 그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누군가는 그의 말을 믿으며, 좋아하던 조이와도 가까워진다. 에반에게 거짓말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자신이 꿈꾸던 삶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처럼 변한다. 그렇기에 〈디어 에반 핸슨〉은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교훈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오히려 그보다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에게 소속감이 얼마나 절실한가. 그리고 한 인간이 사랑받기 위해 자기 자신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

에반의 대표 넘버 ‘Waving Through a Window’가 작품의 세계관을 압축한다. 그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는 않다. 다른 사람들이 웃고 사랑하고 관계를 맺는 모습을 모두 보고 있다. 문제는 자신이 그 풍경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유리창은 투명하기 때문에 더 잔인하다. 세상을 볼 수 있지만 만질 수는 없다. 주변에 수많은 사람이 있어도 자신만 투명인간처럼 느껴지는 현대인의 고립을 이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도 드물다.


 외로움의 반대말은 사람이 많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제대로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감각은 지금의 시대와 더욱 밀접하게 닿는다.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쉽게 연결된다. 메시지를 보내고, 사진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하루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하지만 연결의 양이 관계의 깊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타인의 삶을 매일 보고 있으면서도 정작 힘들다는 말을 건넬 사람 한 명이 없는 경우가 있다. 〈디어 에반 핸슨〉에서 SNS는 고립을 해결하는 동시에 확대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에반의 이야기가 온라인을 통해 퍼지자 그는 순식간에 관심의 중심에 선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에반을 바라보기 시작한 순간에도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진짜 에반이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다.

그 역설이 가장 크게 폭발하는 순간이 ‘You Will Be Found’다. 에반은 코너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처럼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코너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추모 연설은 온라인을 타고 빠르게 확산된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며 위로받는다. 그런데 관객은 알고 있다. 그 감동적인 연대의 출발점에 거짓말이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 넘버는 단순한 희망의 노래보다 훨씬 복잡하다. 거짓에서 출발한 메시지가 누군가에게 진짜 위로가 될 수 있는가. 좋은 결과가 잘못된 과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작품은 쉽게 답하지 않는다. 


 진심은 언제나 완벽하게 올바른 사람에게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자신의 잘못을 지워주는 것도 아니다.

이 균형이 〈디어 에반 핸슨〉을 흥미롭게 만든다. 작품은 에반을 피해자로만 감싸지 않는다. 그의 불안과 외로움을 이해하게 만들면서도, 그가 코너의 가족과 조이에게 남긴 상처까지 외면하지 않는다. 결국 거짓말은 무너진다. 에반이 그렇게 어렵게 얻었던 관계와 인정도 흔들린다. 여기서 작품이 선택하는 것은 ‘용서받은 주인공의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성장에 가깝다. 한국 초연에 대한 평론에서도 에반은 거짓말이라는 문제적 행동과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취약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인물로 분석됐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에반만큼 중요한 인물이 엄마 하이디다. 혼자 아들을 키우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하이디는 에반을 사랑하지만 언제나 그의 곁에 있을 수는 없다. 에반은 그런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하이디 역시 자신이 아들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이 모자의 관계는 〈디어 에반 핸슨〉이 청소년 성장극을 넘어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특히 ‘So Big / So Small’이 건드리는 것은 완벽한 부모의 모습이 아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고, 아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항상 알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떠나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작품의 위로는 의외로 소박하다. 누군가의 고통을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때로는 해결책보다 떠나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언제나 완벽한 문장이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끝까지 곁에 남아 있는 한 사람이다.

코너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극이 진행될수록 우리가 알게 되는 코너의 모습 상당수는 에반이 만들어낸 이야기다. 죽은 사람은 자신을 설명할 수 없고, 남은 사람들은 각자의 기억으로 그 사람을 다시 만든다. 부모가 기억하는 코너, 조이가 기억하는 오빠, 에반이 만들어낸 친구 코너는 서로 다르다. 이 때문에 작품은 한 사람의 고통을 아름다운 서사로 너무 쉽게 소비하는 사회의 태도까지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의 상처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과 그 사람을 실제로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일 수 있다.

2026년 한국 공연은 8월 1일부터 11월 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이어진다. 에반 핸슨 역에는 초연에 참여했던 박강현과 임규형에 나현우가 새롭게 합류했다. 에반의 엄마 하이디는 김선영과 신영숙이 다시 맡으며, 코너는 조민호·김수호, 조이는 강지혜·장민제, 래리는 장현성·정동근, 신시아는 안시하·임민영이 연기한다. 한국 공연은 2024년에 이어 두 번째 시즌이며, 현재 NOL 기준 러닝타임은 인터미션 20분을 포함해 160분, 관람 연령은 14세 이상이다. 

그리고 〈디어 에반 핸슨〉이 결국 도착하는 곳은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오래된 문장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 말은 예쁘기만 한 자기계발 문구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부끄러운 모습까지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반이 성장하는 것은 더 이상 불안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받게 만들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 대신 불완전한 자기 모습으로 세상 앞에 서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진짜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숨기고 싶은 나까지 내 삶의 일부라고 인정하는 일이다.

우리는 에반처럼 거대한 거짓말을 만들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받기 위해 조금 다른 사람이 된 적은 있을 것이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고, 외로운데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고, 실패가 두려운데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SNS에는 가장 괜찮은 순간을 골라 올리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좋은 모습으로 자신을 조금씩 편집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반의 거짓말은 극단적이지만 그 마음까지 낯설지는 않다.

〈디어 에반 핸슨〉은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라고 말한다. 관계는 우리를 구할 수 있지만 관계를 얻기 위해 자신을 잃어버린다면 그 연결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우리가 정말 발견되어야 하는 순간은 완벽해졌을 때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모습으로도 누군가 앞에 설 용기를 냈을 때인지 모른다.

그래서 공연장을 나설 때 남는 것은 에반의 거짓말보다 그 이전의 에반이다. 창문 너머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도 그곳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아이.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말을 걸지 않아서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괜찮아 보여서 괜찮다고 믿었던 사람.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You will be found.”
이 문장이 위로가 되는 것은 모든 문제가 결국 해결된다고 약속하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순간에도 관계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발견된다는 것은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라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는 일에 가깝다. 당신은 요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괜찮은 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있나요?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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