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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 전시

얼굴 없는 예술가는 왜 아직도 우리 곁에 있는가 — 〈뱅크시: Still Here〉

전쟁과 소비, 권력과 차별을 향해 던진 질문. 뱅크시가 거리의 벽에 남긴 것은 그림보다 오래 살아남는 메시지였다

미디어2026. 08. 26
빨간 풍선을 향해 손을 뻗는 소녀, 꽃다발을 수류탄처럼 던지는 남자, 웃으라는 팻말을 목에 건 원숭이. 뱅크시의 이미지는 현대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거리의 벽을 캔버스로 삼았고, 스텐실과 블랙유머라는 간결한 언어로 전쟁과 빈곤, 권력, 차별, 소비사회의 모순을 건드려왔다. 2026년 7월 22일부터 11월 3일까지 더현대 서울 ALT.1에서 열리는 〈BANKSY: Still Here〉는 바로 이 ‘메시지로서의 뱅크시’를 전면에 내세운다. 〈Girl with Balloon〉, 〈Love is in the Air〉, 〈Laugh Now〉, 〈Flying Copper〉, 〈Love Rat〉 등 대표작과 공식 인증기관 Pest Control Office(PCO)의 인증 작품, 초기 판화와 에디션, 벽화 기록 사진과 프로젝트 오브제 등을 통해 그의 작업을 입체적으로 따라간다. 

흥미로운 것은 전시 제목이다. ‘Still Here’, 여전히 여기 있다는 말.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예술가에게 이 문장은 묘하게 어울린다. 뱅크시는 보이지 않지만 그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나타난다. 거리에서 발견되고, 뉴스가 되고, 경매장에서 거래되고, SNS를 통해 복제된다. 그러나 이 전시가 말하는 ‘여전히 여기’는 단순히 한 유명 예술가의 건재함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가 오래전부터 그림으로 지적했던 전쟁과 불평등, 혐오와 권력, 과잉 소비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뱅크시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는 그의 그림이 시대를 앞섰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그의 질문을 지나오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시가 작가의 신원보다 전쟁과 평화, 풍자와 유머, 희망과 연대라는 메시지에 집중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뱅크시의 예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장소’다. 미술관에 걸린 그림은 보호받지만 거리의 그림은 언제든 지워질 수 있다. 누군가 덧칠할 수도 있고 건물이 철거되면 함께 사라진다. 그런데 그는 바로 그 불안정한 장소를 선택했다. 미술관에 갈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출근하는 사람, 장을 보러 가는 사람, 길을 잃은 관광객이 우연히 작품을 발견하도록 했다. 예술을 특별한 공간에서 일상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이번 전시장 역시 도시의 거친 벽면을 재현하고 ‘Intro: Mask’, ‘Wall’, ‘Laugh Now’, ‘Icon’, ‘Peace’, ‘Outro: After the Mask’로 이어지는 구성을 통해 스트리트 아트가 발생했던 현장성을 경험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재미있는 역설이 있다. 자본주의와 미술시장을 조롱했던 거리의 예술가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값비싼 현대미술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Girl with Balloon〉이 낙찰된 직후 액자 속 파쇄기가 작동한 사건은 그 모순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미술시장을 조롱하려 했던 퍼포먼스조차 다시 시장의 거대한 사건이 됐다. 저항이 상품이 되고, 반체제가 브랜드가 되는 순간이다. 뱅크시를 바라볼 때 단순히 ‘멋진 저항 예술가’라는 이미지에 머물 수 없는 이유다.

 자본을 비판하는 예술조차 자본에 의해 소비될 수 있다면, 오늘날 예술의 저항은 어디에서 가능할까.

이 질문은 더현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더욱 흥미롭게 작동한다. 거대한 상업 공간 한가운데에서 소비사회를 비판해온 뱅크시를 만나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뱅크시다운 상황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자신이 비판하는 현실의 바깥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 나타났기 때문이다. 소비를 멈춘 이상적인 세계에서 소비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물건을 사고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아가는 바로 그 장소에 질문을 끼워 넣는다.



뱅크시의 작품이 오래 살아남는 또 하나의 이유는 메시지가 무겁지만 표현은 놀라울 정도로 간결하기 때문이다. 대표작 〈Love is in the Air〉에서는 폭력적인 자세로 팔을 휘두르는 남자의 손에 무기가 아니라 꽃다발이 들려 있다. 공격의 몸짓과 평화의 상징이 한 화면에서 충돌한다. 설명이 길지 않아도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뱅크시는 거대한 정치적 문제를 일상의 이미지로 번역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 앞에서는 미술사 지식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감각이 먼저 작동한다.

그렇다고 그의 세계가 분노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풍선, 꽃, 아이, 쥐처럼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미지에는 이상할 만큼 연약한 것들이 많다. 권력과 폭력을 비판하는 작품 속에서도 희망과 유머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뱅크시의 중요한 태도다.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이 달라질 가능성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냉소는 세상을 비웃는 데서 끝나지만, 풍자는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남아 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뱅크시의 작품은 때로 위로처럼 다가온다. 그 위로는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는 낙관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과 분노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종류에 가깝다. 세상의 모순을 보고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 그의 그림은 그 감정을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예술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문제를 보이게 만들 수 있고,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사회적인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익명이라는 뱅크시의 방식도 새롭게 읽힌다. 우리는 유명인을 만나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궁금해한다. 나이와 출신, 얼굴과 사생활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뱅크시는 자신의 얼굴을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작품을 앞으로 밀어냈다. ‘누가 말했는가’보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바라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번 전시 역시 그의 정체를 추적하기보다 가면 뒤에 놓인 세계관과 메시지에 집중한다. 

그런 의미에서 〈Still Here〉라는 제목의 진짜 주어는 뱅크시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전쟁은 여전히 여기 있고, 불평등도 여전히 여기 있다. 권력에 대한 질문과 소비사회의 욕망도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평화를 원하는 사람과 부조리를 비웃는 유머, 서로를 향한 연대와 희망 역시 여전히 여기 있다. 뱅크시의 그림에는 이 두 세계가 함께 존재한다.

우리는 세상을 완전히 바꾸지 못할 수도 있다. 거대한 구조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작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하지만 뱅크시는 작은 이미지 하나가 도시의 벽에서 시작해 수많은 사람에게 질문을 건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말하고, 누군가는 외면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든다.

 세상을 바꾸는 일의 시작은 거대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당연하다고 지나치는 장면 앞에서 한 번 더 질문하는 것인지 모른다.

전시장을 나선 뒤에도 뱅크시의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백화점의 광고와 쇼윈도, 거리의 사람들과 뉴스 속 전쟁을 바라보는 순간 다시 시작된다. 그것이 거리에서 태어난 예술가를 실내 전시장에 불러들이는 가장 타당한 이유일 것이다. 작품을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현실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

뱅크시는 여전히 여기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남긴 질문이 여전히 여기 있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면하며, 어떤 세계를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것인지는 이제 관객의 몫이다.

“Art should comfort the disturbed and disturb the comfortable.”
뱅크시의 이름과 널리 연결되어 유통되는 문장이다. 다만 이 문구는 출처가 불분명해 뱅크시의 확정적인 직접 발언으로 단정하기보다, 그의 작품 세계를 압축해 보여주는 대표적 문장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불편한 사람에게는 위로를, 편안한 사람에게는 불편한 질문을 건네는 것. 그의 예술이 거리에서 계속해온 역할과 닮아 있다. 지금 당신이 살아가는 도시의 벽에 단 하나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어떤 질문을 적고 싶나요?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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