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 전시
엘 그레코에서 벨라스케스와 고야까지, 아름다움 뒤에 남겨진 인간의 욕망과 불안을 바라보다
스페인 미술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아마 ‘대비’에 가까울 것이다. 뜨거운 태양과 짙은 그림자, 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 왕실의 화려함과 거리의 가난, 삶에 대한 열정과 죽음에 대한 강렬한 인식. 2026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스페인 미술 500년: 빛과 어둠의 연대기〉는 바로 그 대비를 따라가는 전시다. 중세 종교화와 르네상스에서 출발해 스페인 황금기의 바로크, 고야와 낭만주의, 빛과 풍경을 탐구한 외광회화, 일상의 풍속화, 전통과 근대가 교차하는 모더니즘까지 500년의 시간을 한 공간에 펼쳐놓는다. 스페인의 미술이 독특한 것은 이 나라의 역사 자체가 하나의 문화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베리아반도에는 오랜 시간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 문화가 교차했고 지중해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들어왔다. 서로 다른 문명이 충돌하고 뒤섞였던 시간은 회화에도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스페인 미술에는 화려함과 금욕, 장식성과 엄숙함이 이상할 만큼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림의 빛을 바라볼수록 그 뒤에 놓인 역사적 그림자까지 보게 되기 때문이다.


전시 초반의 종교화에서 빛은 신성에 가깝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설명하고 보이지 않는 믿음을 눈앞에 보여주는 것이 그림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엘 그레코의 회화는 이러한 정신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길게 늘어난 인체와 현실을 벗어난 듯한 색채, 위로 상승하는 화면의 긴장은 우리가 실제로 보는 세상보다 인간이 믿고 갈망하는 세계에 가까워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그의 1585년작 〈성가족〉 역시 종교적 소재를 통해 인간과 초월적 세계 사이의 긴장을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림 속 시선은 점차 하늘에서 인간에게로 내려온다. 스페인 황금기에 등장한 벨라스케스는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화가다. 왕과 귀족을 그렸지만 그의 초상은 단순히 권력자를 찬양하는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1650~1651년경 제작한 추기경 카밀로 아스탈리의 초상도 포함된다. 한 사람의 얼굴과 자세, 눈빛을 통해 사회적 지위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존재감을 포착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초상화는 ‘누구를 그렸는가’보다 ‘한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위대한 그림은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인간의 얼굴까지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그 시선이 가장 날카롭게 변하는 지점에서 고야를 만나게 된다. 고야는 궁정화가였지만 동시에 인간 사회의 어리석음과 폭력, 전쟁과 광기를 누구보다 집요하게 바라본 작가였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1799년작 〈돈 마누엘 라페냐〉 같은 전신 초상에서는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개성이 함께 드러난다. 그러나 고야의 예술 전체를 놓고 보면 그의 관심은 점차 권력의 표면에서 인간 내부의 어둠으로 이동한다. 이성적인 존재라고 믿었던 인간이 얼마나 쉽게 욕망과 공포, 집단적 광기에 휩쓸릴 수 있는지 그는 평생 그림을 통해 질문했다. 그래서 전시 제목의 ‘빛과 어둠’은 단순한 명암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자체에 대한 은유처럼 읽힌다. 사람에게는 친절함과 잔혹함이 함께 있고, 사회에는 발전과 폭력이 동시에 존재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찬란한 문화가 꽃피던 시대에도 누군가는 고통받았고, 가장 어두운 시대에도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만들었다.


빛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둠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도 우리가 바라볼 방향을 발견했다는 뜻인지 모른다. 그 점에서 이 전시는 고전 명화를 나열하는 미술사 전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대가 변하면서 화가들이 무엇을 바라보았는지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가 보인다. 종교의 시대에는 신을 그렸고, 왕권의 시대에는 권력을 그렸다. 이후에는 거리의 사람과 풍경, 노동과 일상, 개인의 감정이 그림 안으로 들어왔다. 미술의 중심이 초월적인 존재와 권력에서 평범한 인간의 삶으로 조금씩 이동한 것이다. 19세기 이후 빛과 풍경을 탐구한 화가들의 작품에서는 또 다른 스페인이 등장한다. 어두운 실내와 종교적 긴장 대신 강렬한 햇빛과 야외 풍경,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화면을 채우기 시작한다. 특히 스페인 근대회화를 대표하는 호아킨 소로야를 비롯한 작가들에게 빛은 더 이상 신성의 상징만이 아니다. 실제 세계의 공기와 온도, 살아 있는 순간을 포착하는 회화적 언어가 된다. 같은 나라를 그렸지만 시대가 달라지면서 빛의 의미 역시 변한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술이 시대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림에는 화가가 바라본 얼굴과 풍경뿐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며 어떤 미래를 꿈꾸었는지가 남는다. 역사책이 사건과 연도를 기록한다면 미술은 그 시대를 살아간 인간의 감각을 기록한다. 그래서 500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림 속 사람들도 우리처럼 인정받고 싶어 했고 사랑했으며 죽음을 두려워했다. 권력 앞에서 흔들렸고 더 나은 삶을 꿈꾸었다. 기술과 옷차림은 달라졌지만 인간의 마음은 놀랄 만큼 비슷하다. 수백 년 전 초상 앞에서 문득 자신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이 전시가 건네는 위로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의 삶에는 언제나 밝은 순간과 어두운 순간이 함께 존재했다는 것. 불안과 혼란은 지금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며, 수많은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사랑하고 삶을 이어왔다.


좋은 시대만이 아름다운 예술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때로 인간은 가장 불안한 시대에 자신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더 선명하게 발견한다. 〈스페인 미술 500년〉을 보고 나면 ‘스페인 미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조금 더 개인적인 질문이 남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삶의 밝은 부분만을 나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실패와 후회, 불안과 외로움까지도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이라면 그것들을 반드시 지워야 할까. 스페인 미술의 아름다움은 어둠을 제거한 완벽한 세계를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어둠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도 끝내 빛을 발견하고 그 순간을 화면에 남겼다는 데 있다. 엘 그레코의 신비로운 빛도, 벨라스케스가 바라본 인간의 얼굴도, 고야가 직시했던 사회의 어둠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불완전한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500년 동안 화가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질문에 답했다. 누군가는 신을 바라봤고, 누군가는 인간의 얼굴을 들여다봤으며, 누군가는 햇빛이 내려앉은 평범한 하루를 그렸다. 그리고 그 그림들이 오늘 우리 앞에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대답처럼 느껴진다. 삶에는 어둠이 있지만, 인간은 그 안에서도 계속 빛을 그려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