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 전시
시간을 건너 미래에 도착한 한 남자가 뒤늦게 발견한 사랑, 꿈, 그리고 평범한 하루의 가치
1969년 7월,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을 향해 날아가던 시대. 청년 남원에게도 마음속 우주가 있었다. 사랑하는 정분과 함께 미래를 꿈꾸던 어느 밤, 점점 커지는 달을 바라보다 정신을 잃은 남원이 눈을 뜬 곳은 놀랍게도 2020년이다. 게다가 거울 속 자신은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다. 어떻게든 1969년으로 돌아가 정분을 만나야 한다는 남원 앞에는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낯선 노년의 여성 선희가 있다. 이 기묘한 상황에서 시작된 미래 탐사는 조금씩 시간여행보다 더 중요한 질문으로 향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엇을 잊고 있었으며, 누구와 함께 여기까지 왔는가. 〈렛미플라이〉의 제목에는 날아가고 싶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이 담겨 있다. 달로, 미래로, 지금보다 나은 삶으로. 우리는 언제나 현재보다 조금 먼 곳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취업하면, 돈을 벌면, 성공하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면 비로소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목표에 도착한 뒤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기다리고 실패하고 사랑하고 다투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까지 모두 이미 삶이다. 중요한 문장: 우리는 미래에 도착하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들이 쌓여 어느 순간 미래에 도착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시간여행을 거창한 SF 판타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969년에서 2020년으로 이동한 남원에게 미래의 기술과 변화는 낯설고 우스운 사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웃음이 조금씩 잦아들면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는 결국 한 사람이 자신의 생을 멀리 떨어져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거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청년 남원은 미래를 꿈꾸고, 노인 남원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젊을 때는 앞만 바라보았던 사람이 늙어서는 지나온 시간을 되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놓인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다. 그래서 〈렛미플라이〉는 청춘을 무조건 찬양하지 않는다. 젊음만이 가능성이고 노년은 지나가 버린 시간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한 사람 안에는 수많은 나이가 함께 살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노인이 된 남원 안에는 여전히 달을 바라보던 청년이 있고, 청년 남원이 꿈꾸던 미래의 끝에는 자신이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과거의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시간을 품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간의 중심에 선희가 있다. 남원에게 미래는 갑자기 도착한 낯선 세계지만 선희에게 그 시간은 하루씩 살아낸 삶이다. 누군가에게 50년은 한순간에 건너뛴 시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기다리고 사랑하며 살아온 수많은 날의 합이다. 이 차이가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 거대한 시간여행 옆에 너무나 평범한 생활이 놓이고, 결국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미래의 신기함보다 오랫동안 한 사람의 곁을 지켜온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나 가장 극적인 순간에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는 날에도 같은 사람의 곁에 남아 있는 것으로 증명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사랑은 첫사랑의 설렘에만 머물지 않는다. 청년 남원과 정분에게 사랑이 꿈과 가능성이라면, 노년의 시간에서 사랑은 기억과 생활의 형태를 갖는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함께 살아간다는 선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래서 〈렛미플라이〉를 보다 보면 사랑에 대한 기준도 조금 달라진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특별한 사건으로 기억하지만 실제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별일 없었던 수천 번의 하루일 가능성이 크다. 함께 밥을 먹고, 상대의 습관을 알고, 아플 때 곁을 지키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어주는 시간. 너무 평범해서 기록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사실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사랑이었다는 것을 작품은 천천히 발견하게 한다.


여기에는 꿈에 대한 현실적인 시선도 있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모습과 지금의 내가 다르다고 해서 삶이 실패한 것일까. 청춘에는 꿈이 직선처럼 보인다. 한 방향으로 열심히 달려가면 언젠가 원하는 곳에 도착할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인생에는 우회와 포기,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선택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어떤 꿈은 이루어지고 어떤 꿈은 사라지며, 대신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삶이 시작되기도 한다. 〈렛미플라이〉는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익숙한 문장을 반복하는 대신 더 성숙한 위로를 건넨다. 꿈꾸었던 인생과 다른 곳에 도착했다고 해서 그 시간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중요한 문장: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우리는 꿈보다 더 소중한 것을 만나느라 처음 생각했던 목적지와 다른 곳에 도착한다. 그래서 작품에서 달은 흥미로운 상징이다. 1969년 인류에게 달은 도달하고 싶은 미래였고, 남원에게도 멀리 날아가고 싶은 꿈의 이미지다. 그러나 인간이 달에 도착했다고 해서 삶의 모든 질문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결국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선택을 후회하고, 늙어가며, 지나온 시간을 기억한다. 기술은 인간을 우주까지 데려갈 수 있지만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대신 결정해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렛미플라이〉가 말하는 ‘비행’은 결국 멀리 떠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조금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당장에는 실패처럼 느껴졌던 일이 시간이 지난 뒤 다른 의미가 되기도 하고, 너무 당연해서 소중한 줄 몰랐던 사람이 인생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과거의 나에게 돌아가 모든 선택을 고칠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이전보다 조금 더 잘 바라보는 것. 2026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다시 만나는 〈렛미플라이〉가 오래 남기는 감정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당신은 꿈을 이루었습니까?“라고 몰아붙이지 않는다. 대신 “당신은 지금까지 누구와 함께 살아왔습니까?“라고 묻는다. 성취보다 관계를, 목적지보다 여정을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청춘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가 되고, 중년과 노년에게는 지나온 시간이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다정한 확인이 된다. 우리 모두는 시간여행자다. 다만 남원처럼 하룻밤 사이 50년을 건너뛰지 않을 뿐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도착했고, 오늘의 나는 다시 내일의 나를 향해 이동한다. 그리고 아주 먼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지금 이 평범했던 하루를 돌아보며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참 좋았다고. 그러니 조금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 멀리 날아가려는 마음만큼 지금 곁에 있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은 대단한 미래가 시작되는 날이 아니라,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평범한 오늘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