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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 전시

영원히 사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일, 영원히 사랑하는 것 — 뮤지컬 〈드라큘라〉

죽지 못하는 남자와 다시 살아온 사랑, 그 사이에서 묻는 사랑과 집착의 경계

미디어2026. 08. 26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과 돈 블랙·크리스토퍼 햄튼의 극작을 통해 원작의 공포를 강렬한 러브스토리로 확장한다. 2026년 한국 프로덕션의 대구 공연은 10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계명아트센터에서 이어지며, 드라큘라 역에 신성록·김준수·전동석, 미나 머레이 역에 조정은·김환희가 이름을 올렸다. 서울 공연에 이어지는 대구 무대라는 점에서도 이번 시즌의 서사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공연이다.

하지만 〈드라큘라〉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화려한 캐스팅이나 압도적인 무대만은 아니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아주 오래된 질문 하나가 놓여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작품 속 드라큘라는 시간을 초월한 존재다. 늙지도 않고 쉽게 죽지도 않는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의 삶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면 불멸은 자유가 아니라 형벌에 가깝다. 자신은 남아 있는데 사랑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세상은 계속 변하지만 자신만 과거에 멈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미나를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첫눈의 사랑이라기보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싶은 절박함에 가깝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는 순간을 끝없이 기억해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드라큘라〉는 뱀파이어 판타지를 넘어 상실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잃으면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시간이 상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게 하는 것은 아닐까. 드라큘라는 바로 그 과정을 끝내 통과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사랑했던 순간에서 떠나지 못하고, 과거를 현재로 되돌리기 위해 끊임없이 손을 뻗는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미나를 향한 마음에는 그리움과 헌신이 있지만 소유하고 싶은 욕망도 존재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은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상대에게도 같은 영원을 선택할 자유가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사랑과 집착의 경계를 흐리기 때문이다. 드라큘라를 단순한 악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도, 그렇다고 그의 사랑을 무조건 숭고하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미나는 그 경계에서 중요한 인물이 된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선택되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사랑과 현실, 욕망과 책임 사이에서 자신의 선택을 고민한다. 드라큘라와 미나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강렬하게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상대의 선택을 어디까지 존중할 수 있느냐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사랑은 상대를 내 삶에 영원히 붙잡아 두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도록 놓아주는 일일 수도 있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은 이러한 감정을 더욱 극단으로 끌어올린다. 이 작품의 넘버들은 사랑을 달콤한 감정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욕망과 절망, 분노와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방식으로 인물들의 내면을 확장한다. 특히 드라큘라가 자신의 사랑과 운명을 토해내는 순간들은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동시에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음악으로 체감하게 한다. 그래서 〈드라큘라〉의 무대는 화려하지만, 그 화려함의 중심에는 언제나 외로운 한 사람이 있다.

반 헬싱과 조나단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까지 시선을 넓히면 작품은 사랑의 또 다른 얼굴들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누군가는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서로 다른 사랑이 충돌하면서 관객에게 남는 질문은 점점 복잡해진다. 사랑한다면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가.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줄 수도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감정 가운데 얼마만큼이 사실은 외로움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일까.

〈드라큘라〉가 지금도 반복해서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이 질문이 시대와 무관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없지만 영원할 것처럼 사랑한다. 헤어짐을 알면서 관계를 시작하고, 언젠가 사라질 순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을 지키려고 애쓴다. 어쩌면 유한하기 때문에 사랑은 더 절실한지도 모른다. 끝이 없다면 오늘의 포옹도, 지금 건네는 한마디도 그렇게 간절하지 않을 테니까.



사랑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가 아니라, 함께했던 순간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깊게 변화시켰는지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큘라〉는 영원한 사랑을 찬양하는 작품처럼 시작하지만, 역설적으로 유한한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은 소중하고, 이별이 있기 때문에 사랑은 간절하다. 드라큘라가 갈망하는 ‘영원’을 바라보다 보면 오히려 관객은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현재를 생각하게 된다. 아직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공연장을 나설 때 남는 것은 뱀파이어의 전설보다 한 인간의 외로움에 가깝다. 아무리 긴 시간을 살아도 과거를 놓지 못한다면 삶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반대로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면 짧은 삶 역시 충분히 깊어질 수 있다. 〈드라큘라〉가 건네는 위로는 어쩌면 여기에 있다. 모든 사랑을 영원히 지킬 수는 없지만, 사랑했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떠난 사람과 끝난 관계가 우리의 일부가 되어 다음 시간을 살아가게 한다는 것.

“She was the light of my life.”
드라큘라의 사랑을 압축해 보여주는 작품 속 문장이다. 한 사람을 자신의 삶을 비추는 빛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그 빛이 사라진 뒤에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깊은 어둠이 될 수 있다. 당신에게 사랑은 끝까지 붙잡는 마음에 더 가까운가요, 아니면 사랑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놓아줄 수도 있는 마음에 더 가까운가요?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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