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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 전시

진실은 언제나 하나일까 — 연극 〈피노키오 트라이얼〉

거짓말을 심판하는 법정에서, 우리는 오히려 진실의 의미를 묻게 된다

미디어2026. 07. 18
  우리는 모두 한 번쯤 피노키오였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피노키오』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렸던 장면은 거짓말을 할 때마다 길어지는 코였을 것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통해 거짓말은 나쁜 것이며,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고 나면 세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누군가는 상처를 숨기기 위해 진실을 감춘다. 때로는 진실이 더 큰 폭력이 되기도 하고, 침묵이 누군가를 살리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피노키오 트라이얼〉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작품은 피노키오를 법정의 피고인으로 세우고, 우리가 너무 쉽게 믿어왔던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다시 묻는다. 동화 속 권선징악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마주한 윤리와 책임의 문제를 날카롭게 끌어온다.

진실은 사실일까, 아니면 선택일까

법정은 사실을 판단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작품 속 법정은 단순히 사건의 진위를 가리는 장소가 아니다. 각자의 기억과 관점, 신념이 충돌하며 ‘무엇이 진실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공간이 된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사람마다 기억은 다르고, 같은 행동을 두고도 해석은 달라진다.

우리는 흔히 진실은 하나라고 믿는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피노키오 트라이얼〉은 진실이란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인간의 감정과 맥락, 그리고 선택까지 함께 이해해야 비로소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관객은 재판을 지켜보는 배심원이자 증인이 된다. 공연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질문하도록 만든다.

“진실은 누군가를 심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존재한다.”

거짓말은 인간의 약함에서 시작된다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악해서가 아니다.

두렵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싶고, 혼나기 싫고,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우리는 살아가며 완벽하게 솔직할 수 있을까.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작은 거짓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침묵, 상처를 감추기 위한 웃음.

어쩌면 거짓말은 악의보다 연약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더 많다.

〈피노키오 트라이얼〉은 거짓말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을 한 사람을 쉽게 악인으로 규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은 결국 피노키오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향한다.

정의는 처벌이 아니라 이해에서 완성된다

법정극은 보통 유죄와 무죄를 가르는 긴장감으로 관객을 끌어간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말하는 정의는 판결문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진정한 정의는 누군가를 벌주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끝까지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피노키오는 더 이상 동화 속 나무인형이 아니다.

실수하고 후회하며 성장하는 인간의 상징이 된다.

그래서 공연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피노키오를 심판하던 시선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선으로 바뀐다.

나는 얼마나 솔직하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나는 타인의 실수를 얼마나 쉽게 판단해왔는가.

인간다움은 완벽함이 아니라 성장하는 능력이다

원작 『피노키오』의 마지막은 나무인형이 진짜 사람이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피노키오 트라이얼〉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일까.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일까.

작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받아들이며,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

그것이 인간다움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법정극인 동시에 성장극이며, 동화를 원작으로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인간 드라마가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2026년 꿈의숲 퍼포먼스홀에서 공연되는 〈피노키오 트라이얼〉은 익숙한 동화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SNS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진실을 말하고, 수많은 정보가 사실과 의견 사이를 오간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판단하고, 또 누군가에게 판단받으며 살아간다.

그럴수록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진실은 무엇인가.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본 적이 있는가.

〈피노키오 트라이얼〉은 화려한 반전보다 깊은 사유를 남기는 작품이다.

극장을 나서는 순간에도 관객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대신 마음속에 하나의 질문을 오래 품게 된다.

누군가를 심판하기 전에, 나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하려 했는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완벽한 진실이 아니라, 진실을 마주할 용기다.”
당신은 살면서 한 거짓말 가운데, 가장 후회했던 거짓말과 가장 누군가를 지켜주었던 거짓말을 기억하나요? 그 두 거짓말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글  :  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