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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 전시

빛은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비로소 형태를 드러낸다 — 전시 《미묘하게 열린 어둠안에서 : 이타미 준》

비워낼수록 더 깊어지는 공간, 건축가 이타미 준이 남긴 사유의 풍경

미디어2026. 07. 18
공간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건축을 ‘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사람이 머무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 말이다. 그러나 이타미 준에게 건축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그는 공간을 채우기보다 비우는 사람이었고, 화려한 형태보다 빛과 바람, 그림자와 침묵을 설계한 건축가였다.

2026년 류동룡미술관(이타미준뮤지엄)에서 열리는 《미묘하게 열린 어둠안에서》는 이러한 그의 철학을 가장 깊이 만날 수 있는 전시다. 전시는 도면과 모형, 사진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는다. 오히려 건축이 자연과 만나고, 시간이 머물며, 사람이 공간을 경험하는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풀어낸다.

전시장을 걷다 보면 작품을 ‘본다’기보다 공간을 ‘걷는다’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것이 이타미 준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이다.



어둠은 빛을 위한 빈 공간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미묘하게 열린 어둠안에서’는 이타미 준의 건축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둠을 빛의 반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어둠을 빛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공간으로 이해했다.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 벽면을 따라 흐르는 그림자,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광까지. 그의 건축은 빛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빛이 스스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의 건축에서는 비어 있는 공간이 오히려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한다. 침묵이 음악을 완성하듯, 어둠은 빛을 완성한다.

“비어 있는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라, 가장 많은 감정이 머무는 자리다.”



자연은 건축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타미 준의 건축을 이야기할 때 자연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대표작들은 바람과 물, 돌과 나무를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을 건축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제주의 화산석과 바람,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빛은 그의 건축 속에서 하나의 재료가 된다. 건물은 자연을 지배하지 않는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번 전시 역시 이러한 철학을 깊이 들여다본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관람객은 건축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건축이 어떻게 함께 숨 쉬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효율과 속도를 우선하는 공간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타미 준은 가장 느린 방식으로 공간을 만들었다. 그 느림 속에서 비로소 사람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건축은 사람의 마음을 설계하는 일이다

건축은 기능을 위한 것일까, 감정을 위한 것일까.

이타미 준은 늘 후자를 선택했다. 그의 공간은 편리함보다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창은 풍경을 보기 위해 존재하고, 어떤 벽은 침묵을 느끼기 위해 세워진다.

그래서 그의 건축물에 들어서면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느려진다.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들고, 주변의 소리와 바람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런 감각을 되살린다. 건축을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전시를 보고 나오면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과 거리, 창문과 빛도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침묵은 또 하나의 언어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소음 속에서 살아간다. 스마트폰 알림, 도시의 소리, 끝없이 이어지는 정보들.

이타미 준은 그런 시대에 침묵의 가치를 이야기한 건축가였다.

그의 공간에는 의도적인 여백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잠시 멈춰도 되는 공간,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공간.

이번 전시 역시 그런 여백을 품고 있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오래 서 있게 되고, 설명보다 감각으로 공간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건축을 공부하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묘하게 열린 어둠안에서 : 이타미 준》은 건축가 한 사람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가 아니다. 우리가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자연과 어떻게 공존하며, 삶을 어떤 속도로 살아갈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다.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 속에서 이타미 준은 천천히 머무는 법을 가르쳐준다. 많이 채우기보다 비우는 삶, 크게 말하기보다 조용히 존재하는 삶, 화려함보다 본질을 바라보는 삶.

그의 건축은 언제나 사람을 중심에 두었고, 사람을 자연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그래서 전시를 다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건물의 형태가 아니다.

창틈으로 스며들던 빛, 바람이 지나가던 소리,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던 그 고요한 시간이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쉬고 싶었던 공간은 화려한 장소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머물고 싶은 시간을 만드는 일이다.”
당신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은 어디인가요? 그곳은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엇이 비워져 있기에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나요?

글  :  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