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소연 〈퇴사할게여 (Narr. 기안84)〉, 버티는 삶에서 빠져나와 후회까지 ‘낭만’으로 바꾸는 유쾌한 탈출기
“퇴사할게요.” 직장인에게 이 다섯 글자만큼 달콤하면서도 무서운 문장이 또 있을까. 매일 마음속으로 몇 번씩 사직서를 쓰면서도 다음 달 카드값과 월세, 책임과 미래를 생각하며 다시 컴퓨터를 켜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소연은 이 무거운 단어를 의외로 가볍고 낭만적으로 꺼낸다. 제목부터 정석적인 ‘퇴사할게요’가 아닌 〈퇴사할게여 (Narr. 기안84)〉다. 맞춤법까지 살짝 비껴간 이 장난스러운 제목에는 이미 이 노래가 향할 방향이 숨어 있다. 완벽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퇴사할게여〉는 2026년 9월 7일 공개된 소연의 첫 솔로 정규앨범 《끝내주는 인생》의 타이틀곡이다. 2021년 미니앨범 《Windy》 이후 약 5년 만의 솔로 앨범이자 첫 정규 프로젝트로, 소연은 앨범의 8곡 모두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타이틀곡 역시 소연이 직접 작사하고 Pop Time, Daily, Likey와 공동 작곡했으며, 편곡에도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것은 컴백을 알리는 방식부터 이미 하나의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앨범 공개 전 소연은 큐브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퇴사할게요’라는 문구를 공개해 그 의미를 둘러싼 궁금증을 만들었다. 이후 그것이 실제 계약 문제를 알리는 문장이 아니라 신곡을 위한 장치였음이 밝혀졌다. ‘퇴사’라는 현실의 언어를 음악적 서사로 가져온 셈이다.

그리고 제목 옆에는 예상 밖의 이름이 하나 붙어 있다. 기안84다. 그는 노래에 내레이션으로 참여한다. 음원 크레디트에도 기안84의 참여가 명시돼 있으며, 그의 목소리는 소연의 조금은 철없고 자유분방한 상상에 현실적인 농담을 던지는 역할을 한다. 특히 “이제 약속을 취소할 일은 없다”는 화자의 말에 끼어드는 짧은 반응은 노래를 지나치게 진지한 ‘퇴사 찬가’로 흘러가지 않게 한다. 음악도 예상과 다르다. 사직서를 던지는 순간을 떠올리면 강한 록이나 공격적인 힙합을 예상하기 쉽지만, 이 곡은 오히려 아날로그 밴드의 질감을 중심에 둔다.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가는 분노보다 문밖에서 처음 마주한 좋은 날씨와 바람에 더 관심을 둔다. 그러니 이 노래의 진짜 주제는 ‘직장’이 아니다. 내 인생의 시간을 다시 나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가사에는 퇴사 이후 하고 싶은 일들이 등장한다. 세계를 여행하고 싶고,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고, 무엇보다 마음 편하게 노래하고 싶다. 하나하나는 어쩌면 흔한 버킷리스트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아프게 다가온다.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너무 오래 미뤄두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삶을 ‘하고 싶은 것’으로 설명한다. 커서는 점점 ‘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출근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약속을 미뤄야 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미래를 준비하다 보면 정작 오늘은 계속 유예된다. 〈퇴사할게여〉는 그 질서에 작은 장난을 건다. 꼭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느냐고. 그렇다고 소연이 무책임한 퇴사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노래에는 오히려 후회의 가능성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지금 떠난 것을 언젠가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런데 소연은 그 후회를 실패라고 부르지 않고 ‘낭만’이라고 부르겠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노래는 단순한 직장인 공감송을 넘어선다. 우리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너무 많은 선택을 포기한다. 실패할까 봐 시작하지 않고, 안정성을 잃을까 봐 떠나지 않으며, 남들이 철없다고 생각할까 봐 자신의 욕망을 숨긴다. 하지만 후회가 없는 삶과 살아본 삶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어떤 선택은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훗날 “그래도 그때 해봤잖아”라고 웃을 수 있는 기억이 된다.

그래서 이 곡에서 가장 인상적인 존재는 현재의 소연이 아니라 미래의 할머니가 된 소연이다. 노래는 결국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유쾌하게 꺼내놓는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는 승진과 평가, 체면과 실패도 수십 년이 흐른 뒤에는 인생의 작은 한 장면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때 오늘을 어떤 표정으로 기억하느냐다. 이것은 일종의 ‘미래의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보기’다. 지금의 나는 퇴사를 실패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70대의 나는 그날을 가장 용감했던 하루로 기억할 수도 있다. 반대로 안정적인 선택이라고 믿었던 오늘을 “그때 한번 떠나볼걸”이라고 회상할 수도 있다. 삶의 정답은 현재의 기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퇴사할게여〉가 건네는 위로는 “힘들면 당장 그만둬”가 아니다. 오히려 ‘너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오래 버티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직장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삶 전체는 아니다. 성취도 중요하지만, 친구와 밥을 먹는 시간과 여행을 떠나는 마음, 오래 미뤄둔 꿈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 역시 한 사람의 인생을 구성한다.

소연이 직접 쓰고 만든 노래라는 사실도 이 메시지에 무게를 더한다. 데뷔 이후 아이들의 음악을 직접 만들며 프로듀서이자 아티스트로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 “원래 이렇게 열심히 살 생각은 없었다”고 노래할 때, 그것은 단순한 직장인 역할극보다 넓은 의미를 갖는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어느 순간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농담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안84의 내레이션은 이 진지함에 적절한 틈을 만든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사람은 다짐한 것을 또 어길 수도 있다. 그래서 완벽한 자유인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가끔이라도 자신의 삶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인지 모른다. 결국 이 노래에서 ‘퇴사’는 하나의 은유가 된다. 그만두어야 하는 것은 회사일 수도 있지만, 타인의 기대일 수도 있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쉼 없이 달려야 한다는 믿음일 수도 있다. 삶은 성공한 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충동적이었던 날, 엉뚱한 선택을 했던 날, 잠시 길을 잃었던 날까지 모두 모여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 가끔은 미래의 나에게 꽤 재미있는 추억 하나를 남겨도 괜찮지 않을까. 언젠가 머리가 희어진 우리가 지금의 오늘을 돌아볼 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어쩌면 “참 효율적으로 살았어”가 아닐 것이다. 조금 철없었더라도, 조금 돌아갔더라도, “그날 참 낭만적이었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하루. 소연의 〈퇴사할게여〉는 바로 그 하루를 위해 문밖으로 나가보자고 유쾌하게 등을 떠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