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무라카미 하루키 『가호』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그려내는 모녀의 기억, 자기 존재의 회복 그리고 ‘좋은 이야기’가 가진 힘
“솔직히 말해서, 너처럼 못생긴 사람은 처음이야.” 스물여섯 살 그림책 작가 가호는 처음 만난 남자에게 느닷없이 이런 말을 듣는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분노하거나 상처받는 장면이 이어질 것 같지만, 가호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그녀는 화를 내기보다 궁금해한다. 도대체 이 남자는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일본 출판사 신초샤가 공개한 작품 소개에서도 바로 이 장면이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제시된다. 이 작은 호기심을 통과하면서 현실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한다. 꿈의 계시를 따라 도쿄 외곽 무사시사카이의 집으로 이사하고, 그 집 바닥 아래에는 새끼를 잃은 개미핥기 부부가 살고 있다. 재규어와 흰개미여왕이 등장하고, 어느 순간 가호는 자신의 어머니가 무언가 다른 존재에게 점령당했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현실인지 꿈인지 쉽게 구별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하루키의 소설에서 그렇듯 비현실은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현실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기 위한 통로에 가깝다. 『가호』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이후 3년 만에 나온 하루키의 장편이자, 그의 장편소설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 한 명을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2026년 7월 출간됐고, 한국어판은 홍은주의 번역으로 문학동네에서 10월 21일 출간 예정이다. 일본판은 발매 나흘 만에 발행 부수 30만 부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더 중요한 변화는 주인공의 성별 자체보다 하루키가 누구의 내면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바라보느냐에 있다. 하루키는 이 작품을 소개하며 자신이 이번에는 “그녀가 되어” 썼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품은 결국 가호와 어머니의 관계라는 아주 오래되고 사적인 문제를 향해 움직인다. 『가호』의 기묘한 세계는 현실을 떠나는 모험이 아니라, 오랫동안 외면했던 자신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한 우회로에 가깝다. 가호와 어머니 사이에는 언제나 얇은 종이 한 장 같은 거리감이 존재한다. 어머니는 사회적 상승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야심 있는 사람이고, 딸에게도 자신의 기준과 기대를 투영한다. 가호는 그 기대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쉽게 거부하지 못한다. 신초샤에 실린 작품 서평은 흰개미여왕에게 점령당한 어머니와 대면하는 과정이 결국 가호로 하여금 자신의 심층심리와 모녀 관계를 직시하게 만든다고 해석한다. 우리는 부모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배운다. 그래서 가족에게 느끼는 답답함이나 분노, 거리감을 인정하는 일에는 묘한 죄책감이 따라온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가족이 소중하지만 함께 있으면 힘들다.’ ‘부모가 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사랑 때문에 상처받기도 했다.’ 서로 모순되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애초에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가호』가 건네는 위로는 관계를 아름답게 봉합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사랑하면서 미워할 수도 있고, 고마워하면서 답답할 수도 있다는 복잡한 감정을 인정하게 만드는 데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모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부모가 만들어준 이야기와 내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가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흰개미여왕이라는 존재는 흥미롭다. 작품 속 흰개미여왕은 자신의 복제물을 끊임없이 생산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 인간 여성의 몸을 거처로 삼는다. 공식 서평에서는 이 존재가 어머니에게 깃드는 사건이 역설적으로 가호를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향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복제’라는 이미지를 모녀 관계에 겹쳐보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부모의 삶을 얼마나 반복하고 있을까. 말투, 가치관, 사랑하는 방식, 돈을 바라보는 태도, 성공의 기준까지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수많은 것을 복제한다. 그러나 물려받았다는 것과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가호가 해야 하는 일 역시 자신의 삶에 들어와 이야기를 대신 만들어가는 존재들로부터 다시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개미핥기 부부는 가호를 보호하고 조언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규어와 흰개미여왕, 수호천사 사하라까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존재들이 끊임없이 가호에게 개입한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내 삶의 이야기를 지금 누가 쓰고 있는가.’ 부모인가. 사랑하는 사람인가. 사회인가. 아니면 나 자신인가. 이 질문 때문에 『가호』는 단순한 판타지보다 성장소설에 가까워진다. 교보문고와 알라딘의 국내 소개 역시 이 작품을 자신의 가족에게 닥친 위기에 가호가 ‘주체적 존재’로 나서는 성장과 회복의 이야기로 설명한다. 회복은 상처받기 전의 나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상처까지 자신의 이야기 안에 받아들인 채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일이다. 이 지점에서 작품의 제목 『가호』도 의미심장해진다. 원제의 ‘夏帆’는 주인공의 이름이지만 한국어에서 ‘가호’라는 음가는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지키고 보호하는 ‘加護’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에는 실제로 보호를 약속하는 개미핥기와 수호천사 같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가호에게 정말 필요한 보호는 누군가가 모든 위험을 대신 제거해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삶의 위험 앞에 자신이 서는 힘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한국 출판사는 『가호』를 하루키가 오랫동안 품어온 그 질문에 대한 사유가 담긴 작품으로 소개한다. 하루키는 최근 인터뷰에서 생성형 AI가 과거의 것을 종합해 추론하는 방식과 자신이 소설을 쓰는 방식은 다르다고 말했다. 소설을 쓰다 보면 개미핥기 같은 존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에게 이야기는 이미 존재하는 패턴을 효율적으로 조립하는 일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현실 안으로 끌어오는 행위다. 가호의 삶 역시 그렇다.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놓은 정답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한 걸음씩 움직인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이야기를 읽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소설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부모와의 갈등을 없애주지도 않고, 상처받은 기억을 지워주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알고 있던 세계 말고도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작은 틈을 만들어준다. 그 틈으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본다. ‘나는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 질문을 할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새로운 이야기는 시작된다. 출구를 찾는다는 것은 반드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 가장 어려운 탈출은 가족도 직장도 도시도 아닌, 오랫동안 자신을 규정해온 하나의 이야기에서 빠져나오는 일이다. 가호가 찾아야 했던 출구 역시 어쩌면 그런 곳에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나’에서 벗어나 자신이 선택한 ‘나’로 향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