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재레드 다이아몬드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가 정치·기업·스포츠·종교를 가로지르며 발견한 능력, 기회, 우연 그리고 시스템의 힘
한 기업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면 우리는 CEO의 결단을 이야기한다. 스포츠팀이 연승하면 감독의 리더십을 칭찬하고, 국가가 위기에 빠지면 지도자의 판단을 비판한다. 역사책 역시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에 몇몇 인물의 이름을 남긴다. 칭기즈칸, 샤를 드골, 찰스 다윈, 스티브 잡스. 그러나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조금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정말 그 결과는 존재하지 않았을까? 『총, 균, 쇠』에서 문명의 격차를 개인이나 민족의 우열보다 지리와 환경이라는 거대한 조건에서 설명했던 다이아몬드는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에서 시선을 다시 ‘개인’에게 돌린다. 2026년 9월 김영사에서 출간된 372쪽의 이 책은 『대변동』 이후 7년 만의 신작으로, 정치·비즈니스·스포츠·종교라는 네 영역에서 개인의 영향력이 실제 결과를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역사적 사례와 자연실험, 통계를 통해 추적한다. 흥미로운 것은 다이아몬드가 다시 개인을 바라본다고 해서 ‘위대한 인물이 역사를 만든다’는 영웅주의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는 개인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그 능력이 발휘될 수 있었던 시대와 제도, 조직, 권한과 우연을 함께 보자고 한다. 리더의 능력만 바라보면 그를 가능하게 만든 시대를 놓치고, 시대만 바라보면 그 순간 결단했던 한 사람의 책임과 용기를 놓치게 된다. 이 책을 관통하는 흥미로운 장치가 ‘햄릿 테스트’다. 셰익스피어가 존재하지 않았어도 누군가 『햄릿』을 썼을까? 이 질문을 다른 분야에 적용한다. 다윈이 없었어도 자연선택설은 등장했을까. 스티브 잡스가 없었어도 스마트폰은 탄생했을까. 다윈과 거의 같은 시기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도 자연선택이라는 아이디어에 도달했고, 잡스 이전에도 터치스크린과 모바일 인터넷이라는 기술은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완전히 없던 미래를 창조한 사람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가능성을 알아보고 하나의 결과로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이아몬드는 다윈이 방대한 증거와 논증으로 자연선택설을 과학의 중심으로 끌어왔고, 잡스가 흩어져 있던 기술을 하나의 제품과 경험으로 결합했다는 차이에 주목한다. 여기에서 리더십에 관한 중요한 관점이 생긴다. 좋은 리더가 반드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때로 리더의 능력은 아직 흩어져 있는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는 방향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레이첼 카슨의 사례도 그렇다. 환경오염은 그가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카슨은 과학적 증거를 설득력 있는 언어로 전달함으로써 이미 존재하던 문제를 사회가 외면할 수 없는 문제로 바꾸었다. 다이아몬드는 샤를 드골 역시 시대적 요구와 자신의 능력이 맞물린 순간을 붙잡았고, 더 이상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때 물러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리더십은 언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인 동시에 언제 자신이 물러나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이기도 한 셈이다. 하지만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가 더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우연’을 끌어들일 때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모든 사건을 필연처럼 연결하는 데 익숙하다. 그가 성공했으니 어린 시절의 경험도 특별해 보이고, 어느 순간 내린 결정도 천재적인 판단처럼 해석한다. 하지만 실제 인생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1930년 히틀러는 교차로에서 트럭과 충돌할 뻔한 사고를 가까스로 피했다. 만약 몇 초의 차이로 그때 사망했다면 이후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다이아몬드는 정치 지도자의 암살과 질병, CEO의 갑작스러운 죽음, 가족의 사별처럼 의도하지 않은 사건을 일종의 ‘자연실험’으로 바라보며 개인이 실제 결과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이 질문은 역사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묘한 위로를 건넨다. 성공한 사람을 바라보며 우리는 쉽게 생각한다. ‘나는 저 사람만큼 능력이 없었어.’ 하지만 누군가의 성취에는 능력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적절한 시대에 태어났고, 필요한 사람을 만났으며, 기술과 시장이 준비되어 있었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행운이 있었다. 다이아몬드는 베이조스, 게이츠, 잡스, 저커버그, 머스크 등의 성공 역시 개인의 재능과 집념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그들의 뒤에는 기술과 자본, 인재와 시장, 도전을 허용하는 문화라는 조건이 있었다. 성공을 전부 실력이라고 믿으면 오만해지고, 실패를 전부 자신의 부족함이라고 믿으면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구분하는 능력이다.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 자원을 발견하며 경제적 기회를 얻었지만, 자원이 존재한다고 모든 나라가 번영하는 것은 아니다. 다이아몬드는 세레체 카마가 그 기회를 민주주의와 공공의 번영으로 연결한 사례를 통해 ‘기회가 주어지는 것’과 ‘기회를 결과로 바꾸는 것’ 사이에 리더의 선택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리더는 모든 조건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주어진 조건을 해석하고 선택하는 사람이다. 스포츠 분야는 이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성적이 나쁜 팀이 감독을 해임한 뒤 성적이 좋아지면 새 감독의 리더십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팀이 유난히 부진했던 시점에 감독이 해임되고 이후 성적이 평소 수준으로 되돌아오는 통계적 현상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다. 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986년부터 2013년까지 이끈 알렉스 퍼거슨처럼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성과를 낸 사례에서는 감독의 영향력을 단순한 우연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한 번의 성공보다 반복되는 결과를 봐야 한다. 결과뿐 아니라 그 결과가 만들어진 조건을 봐야 한다.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카리스마적인 창시자 한 사람만으로 거대한 종교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이아몬드는 모르몬교의 조지프 스미스와 브리검 영 등의 사례를 통해 메시지를 만든 사람과 그것을 조직하고 지속시키는 사람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좋은 리더십은 모든 것을 혼자 해내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남기는 능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결국 리더를 평가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평가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성공을 너무 쉽게 그 사람의 능력으로 설명하고, 누군가의 실패를 너무 쉽게 그 사람의 무능으로 설명한다. 회사에서도 그렇다. 좋은 실적을 낸 팀장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책임자를 찾는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의 질문을 가져오면 평가의 방식이 달라진다. 그 사람에게 실제로 어느 정도의 권한이 있었는가. 충분한 시간과 자원이 주어졌는가. 조직은 그의 판단을 실행할 수 있는 구조였는가. 성과 가운데 얼마만큼이 이전부터 진행되던 흐름이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과가 정말 달라졌을까. 이 질문은 리더의 책임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의 정확한 크기를 측정하기 위한 질문이다. 개인을 지나치게 숭배하지 않으면서도 개인의 선택을 지워버리지 않는 것. 시스템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시스템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것. 그 사이에서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는 꽤 현실적인 리더십의 모습을 발견한다. 리더는 언제나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능력과 기회, 권한과 시대가 교차하는 어떤 순간에는 한 사람의 판단이 예상보다 훨씬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 어쩌면 이것일 것이다. 내게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나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