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조아란·권희·이정윤 『마음의 어휘력』이 70개의 단어를 통해 발견하는 감정의 해상도와 나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가 많아진다는 것은 단순히 어휘가 늘어나는 일이 아니라,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내 마음의 차이를 발견하는 일이다. “기분이 어때?” 누군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비슷한 대답을 내놓는다. 괜찮아. 그냥 그래. 피곤해. 짜증 나. 하지만 정말 그것으로 충분할까. ‘짜증 난다’고 생각했던 마음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서운함이 있을 수도 있고, 인정받지 못했다는 억울함이 있을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일 수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무기력일 수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각각의 마음에는 필요한 위로가 다르다. 조아란·권희·이정윤의 『마음의 어휘력』은 바로 이 작은 차이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한다. 2026년 8월 페이지2북스에서 출간된 이 책은 240쪽에 걸쳐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70개의 단어를 소개한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에 열 개의 단어를 만나는 ‘일주일 단어 수업’이라는 구성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어휘력은 국어시험을 잘 보기 위한 어휘력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세밀하게 구별할 수 있는가에 가깝다. 출판사 소개에서도 ‘감정 세분화(Emotional Granularity)’라는 개념을 통해 감정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이름 붙이는 일이 감정을 다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책의 출발점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책에는 익숙한 심리학 용어만 등장하지 않는다. ‘사티’, ‘벨트슈메르츠’, ‘끄렝짜이’, ‘르상티망’, ‘헤젤리흐’, ‘사우다데’, ‘킨츠기’, ‘코모레비’, ‘필라우티아’, ‘와비사비’, ‘프티 보뇌르’, ‘모노노아와레’처럼 심리학과 철학, 여러 문화권에서 건너온 단어들이 함께 놓인다. 처음 보는 단어도 많다. 그러나 낯선 단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익숙한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테면 월요일은 불안한 마음에 이름을 붙이는 날이다. 임포스터 신드롬, 애착불안, 학습된 무기력, 완료주의와 같은 단어를 지나간다. 화요일에는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을 생각하고, 수요일에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 밤을 들여다본다. 목요일에는 상처의 회복, 금요일에는 무너진 마음, 토요일에는 기쁨과 자기돌봄, 일요일에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이야기한다. 일주일이라는 구성은 그래서 하나의 마음 여행처럼 읽힌다. 불안을 없애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먼저 불안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대신 관계 속에서 자신의 경계를 이해한다. 그리고 상처와 무너짐을 통과한 뒤 다시 작은 기쁨을 찾고 살아갈 이유를 발견한다. 이 책이 건네는 위로는 “괜찮아질 거야”라는 낙관보다 “네가 느끼는 그 마음에는 이미 이름이 있어”라는 발견에 가깝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이유 없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을 때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이상하게 여기기 쉽다. 왜 이렇게 예민하지. 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불안하지. 왜 별것도 아닌 일에 계속 생각이 머물지.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단어를 발견한다. ‘반추’를 알게 되면 같은 생각을 계속 되풀이하는 자신의 마음을 조금 떨어져 바라볼 수 있다. ‘예기불안’을 알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두려워하는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공감 피로’를 알면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에 지친 자신을 냉정한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아도 된다. 단어 하나가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와 나 사이에 아주 작은 거리를 만들어준다. 책에서 소개하는 ‘사티’에 관한 글도 이를 잘 보여준다. 저자들은 설거지를 하며 물의 온도를 느끼고 걸을 때 발바닥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작은 실천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미래를 걱정하거나 과거를 붙잡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 생각은 더 이상 ‘나의 전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마음의 언어를 가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불안한 사람이야”와 “나는 지금 불안을 느끼고 있어”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문장이다. 첫 번째 문장은 감정을 정체성으로 만든다. 두 번째 문장은 감정을 하나의 상태로 바라본다. 상태는 변할 수 있다. 그 작은 언어의 차이가 때로는 사람에게 숨을 쉴 공간을 만들어준다. 『마음의 어휘력』의 세 저자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조아란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13년 차 마케터로,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가 많아질수록 내면이 편안해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단어를 모으기 시작했다. 권희는 SNS ‘마인드서핑’을 통해 심리와 철학 이야기를 전해왔으며, 이정윤은 프리랜서 작가이자 오랫동안 상담을 받으며 심리학과 일상의 감정을 연결해 기록해왔다. 이들의 단어 수집 프로젝트가 『마음의 어휘력』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책은 사전처럼 단어의 뜻만 나열하지 않는다. 단어 하나에서 출발해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불안과 관계, 상처와 회복을 바라본다. ‘킨츠기’처럼 깨진 흔적을 없애지 않고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는 개념도 있고, ‘와비사비’처럼 불완전함과 변화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태도도 등장한다. 여기서 책의 철학은 더욱 분명해진다. 마음을 돌본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 감정만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좋지 않은 감정까지도 정확하게 알아보고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슬픔을 무조건 없애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슬퍼하는 자신까지 미워하게 된다. 불안을 실패로 생각하면 불안해하는 자신을 또다시 비난한다. 하지만 감정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다. 때로 불안은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주고, 질투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보여준다. 외로움은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의 신호일 수 있고, 후회는 다음 선택을 다르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감정을 이해하는 일은 감정에 끌려가는 것과 반대다. 정확하게 이름을 붙일수록 우리는 “나는 왜 이 모양이지”라는 막연한 자기비난에서 벗어나 “아, 지금 내게 이런 마음이 찾아왔구나”라고 말할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그것은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도 바꾼다. 누군가가 힘들다고 말했을 때 무조건 “힘내”라고 답하는 대신 그 사람의 힘듦이 어떤 종류인지 물을 수 있다. 외로운 것인지, 지친 것인지, 억울한 것인지, 미래가 두려운 것인지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된다. 마음의 어휘력이 많아질수록 공감의 해상도 역시 높아지는 셈이다. 이 책이 출간 직후 SNS에서 주목받고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 배경에도 이런 갈증이 있어 보인다. 8월 30일 현재 알라딘 에세이 주간 베스트에서는 5위에 올라 있으며, 예스24에서도 에세이 분야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분류를 찾는다. 성격 유형을 확인하고, 관계 유형을 나누며,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려 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몇 개의 유형보다 훨씬 복잡하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도 다르다. 그래서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더 많은 언어인지 모른다. 슬픔을 슬픔 하나로 묶지 않고, 불안을 불안 하나로 단정하지 않는 것. 자신의 마음에 더 많은 이름을 허락하는 것. 『마음의 어휘력』은 바로 그 일을 한다. 삶에서 모든 감정을 해결할 수는 없다. 어떤 슬픔은 오래 남고 어떤 불안은 반복해서 찾아온다. 그래도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 하나를 발견하면 마음은 이전보다 조금 덜 막막해진다. 나도 몰랐던 마음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마음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