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이시한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말하는가』가 말하는 ‘대화지능’, AI 시대에 오히려 중요해진 인간의 설득과 신뢰
똑똑하게 말한다는 것은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내 생각과 상대의 생각 사이에 정확한 길을 만드는 능력이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다. 분명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회의에서는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남지 않고, 가까운 사람에게는 좋은 의도로 한 말이 뜻밖의 상처가 된다. 말을 못해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문제는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 이시한의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말하는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2026년 8월 19일 북플레저에서 출간된 이 책은 328쪽에 걸쳐 ‘말을 잘한다’는 오래된 기준을 다시 정의한다. 저자는 전작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질문하는가』에서 질문을 통해 사고하는 방법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실제 행동으로 연결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우리는 흔히 말을 잘하는 사람을 떠올릴 때 유창한 사람부터 생각한다. 말을 막힘없이 이어가고, 적절한 유머를 사용하며, 화려한 어휘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사람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능력은 조금 다르다. 말의 목적이 단순히 ‘내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라면 유창함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대화에는 상대방이 존재한다. 내가 아무리 정확하게 말했다고 생각해도 상대가 이해하지 못했다면 대화는 완성되지 않는다. 상대의 전제와 상황을 파악하고 분위기를 읽으며, 어떤 순서로 말해야 생각과 감정이 전달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대화지능’이라고 부른다. 대화를 열고, 쌓고, 잇고, 닫는 과정을 설계해 머릿속 생각을 정돈하고 상대와 생각을 정렬하며 궁극적으로 합의와 행동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말의 중심에 ‘나’를 놓으면 표현이 중요해지지만, 중심에 ‘우리’를 놓는 순간 맥락과 관계가 중요해진다. 이 책에서 특히 실용적인 부분은 대화를 일종의 구조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대화의 OS’는 네 단계다. 첫 30초에 대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열기’, 전달할 내용의 뼈대를 만드는 ‘쌓기’, 근거를 이용해 상대를 설득하는 ‘잇기’, 마지막으로 핵심 의미와 다음 행동을 남기는 ‘닫기’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답답한 대화 상당수는 이 구조 가운데 무언가가 빠져 있다. 회의에서 배경 설명만 10분 동안 이어지는데 정작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열기’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 것이다. 주장만 있고 이유가 없다면 ‘잇기’가 약하다. 한 시간 동안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도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지 않았다면 ‘닫기’가 없는 대화다. 말을 잘하는 능력을 타고난 순발력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로 바라보면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향적인 사람이나 즉흥적인 말하기에 약한 사람에게도 하나의 위로가 된다. 대화에서 꼭 가장 많은 말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목소리가 크거나 분위기를 압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은 뒤 필요한 순간에 정확한 말을 건넬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충분히 강한 대화 능력이다. 대화지능이 관계에서 중요해지는 순간은 더욱 분명하다. 우리는 상대와 의견이 다를 때 흔히 ‘누가 맞는가’를 먼저 따진다. 하지만 저자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판단 기준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책이 질문, 공감, 거절, 피드백과 갈등 해결을 별도의 장으로 다루는 것도 그래서다. 상대를 논리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왜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했는지 전제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거절과 피드백은 대화의 수준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거절하지 못하면 내가 힘들어지고, 잘못 거절하면 관계가 상한다. 피드백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를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하지만 상대의 자존감까지 공격할 필요는 없다. 결국 좋은 대화는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도, 생각나는 대로 전부 말하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내용을 관계가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기술에 가깝다. 대화의 진짜 목적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대화가 끝난 뒤 서로가 다음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만드는 데 있다. 이 지점에서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말하는가』는 단순한 화술 책을 넘어선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AI 시대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생성형 AI는 이미 인간보다 빠르게 정보를 정리하고 문장을 만들어낸다. 보고서도 작성하고, 이메일을 고쳐주며, 발표문과 협상 문구까지 제안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말하기 능력은 이전보다 덜 중요해질까. 저자의 대답은 반대에 가깝다. 정보를 전달하는 일은 AI가 빠르게 대신할 수 있지만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밝히고, 그 판단에 책임을 지며, 상대와 신뢰를 형성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이 ‘AI 시대의 대화지능, 정보가 아니라 신뢰를 말한다’라는 제목을 가진 이유다. 오히려 AI가 말을 너무 쉽게 만들어주는 시대에는 ‘그럴듯한 문장’의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누구나 매끄러운 표현을 얻을 수 있다면 중요한 것은 그 문장을 누가 어떤 맥락에서 말했으며, 그 사람이 자신의 말에 얼마나 책임질 수 있느냐가 된다. 정보의 희소성이 줄어들수록 신뢰의 희소성은 커진다.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대화지능은 직장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기술에만 머물지 않는다.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방식과 연결된다. 사람은 말로 관계를 만들고 말로 관계를 잃는다. 한마디 사과가 오래된 감정을 풀기도 하고, 무심코 던진 문장이 오랫동안 상처로 남기도 한다. 중요한 면접과 협상뿐 아니라 가족과의 저녁 식사, 동료와의 짧은 대화에서도 말은 계속해서 우리를 설명한다. 그러나 모든 말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말이 언제나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좋은 대화의 출발점일 수 있다. 잘못 이해했다면 다시 묻고, 잘못 말했다면 고쳐 말하며, 상대의 표정을 보면서 자신의 표현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대화는 완성된 문장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두 사람이 의미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독자들이 밑줄 친 문장 가운데에는 “말보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진짜다”라는 표현이 있다. 짧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압축한다. 우리는 좋은 말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그러나 좋은 대화를 위해서는 좋은 문장보다 먼저 상대를 바라봐야 한다. 이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 어떤 감정인지, 내가 하는 말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지를 생각하는 것. 그리고 대화가 끝났을 때 무엇이 남아야 하는지를 미리 생각하는 것. 결국 똑똑하게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일이 아니다.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생각을 정리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연결하며, 말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AI가 점점 더 유창하게 말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언어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확한 생각, 상대를 고려하는 태도, 그리고 믿을 수 있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