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윤태영 『노무현 평전』이 기억과 평가를 넘어 기록으로 복원한 정치인 노무현의 선택, 원칙 그리고 ‘사람 사는 세상’
한 정치인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를 좋아하거나 싫어했던 감정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그가 어떤 선택 앞에서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를 다시 살펴보는 일이다. 2026년은 노무현 탄생 8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이 기획하고 윤태영이 집필한 첫 공식 『노무현 평전』이 출간됐다. 928쪽에 이르는 책은 봉하마을에서 태어난 소년부터 인권변호사,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거쳐 다시 봉하의 시민으로 돌아간 2009년까지의 생애를 아홉 장에 걸쳐 복원한다. 이 책에서 먼저 눈여겨볼 것은 저자 윤태영의 위치다. 그는 1988년 노무현과 인연을 맺은 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 제1부속실장,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냈고 퇴임 후에는 봉하마을 집필팀에서 함께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오랫동안 한 인물을 지켜본 사람이라는 것은 이 평전의 강점인 동시에 독자가 염두에 두어야 할 조건이기도 하다. 저자는 노무현과 정치적으로 무관한 제3자가 아니라 그의 말과 생각을 기록했던 참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현 평전』의 중요한 가치는 단순히 ‘가까이서 봤다’는 데 있기보다 그 기억을 얼마나 기록과 교차시키느냐에 있다. 집필에 동원된 자료의 규모가 상당하다. 노무현사료관에 보관된 구술과 연설문, 참여정부 참모들이 남긴 메모와 녹취록·비망록 등 160여 개의 비공개 기록에 윤태영 자신이 청와대 시절 작성한 600여 권의 포켓수첩과 약 1,000개의 파일이 더해졌다. 저자는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개인의 기억 속에 흩어져 있던 장면을 하나의 생애로 연결한다. 그렇게 되살아나는 노무현의 출발점은 대통령이 아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성장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짧은 판사 생활을 거쳐 변호사가 된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삶에서 결정적인 방향 전환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는 것이 부림 사건이다. 책은 변호사 노무현이 사회의 부조리와 민주주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당시 학생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아들이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권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는 기록은 그의 변화가 추상적인 정치이론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 뒤의 정치 인생은 승리보다 패배가 먼저 쌓인다. 청문회에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정치적 선택은 언제나 유리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특히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했던 장면은 이후 노무현 정치의 상징처럼 남았다. 책 역시 당시 “이의 있습니다. 반대 토론 해야 합니다”라고 외쳤던 순간을 원칙과 상식, 지역구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집약된 장면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부산에서 반복해서 선거에 패한다. 여기서 평전은 익숙한 ‘바보 노무현’의 신화를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조금 다른 시선을 보탠다. 저자는 당시의 부산 출마를 처음부터 패배가 확실한 무모한 도전으로만 보는 해석에 거리를 둔다. 당시 여론조사를 고려하면 위험하지만 승산도 있었던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결과를 알고 있는 현재의 시선으로 과거의 결정을 낭만화하지 않으려는 대목이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언제나 패배를 선택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길 방법을 고민하면서도 승리를 위해 무엇까지 포기할 것인지 스스로 경계를 정하는 일에 가깝다. 이 책에서 반복해서 발견되는 노무현 정치의 긴장은 바로 ‘원칙과 현실’ 사이에 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그 긴장이 훨씬 복잡해진다. 북핵 문제와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사회적 갈등, 언론과의 관계, 대연정, 한미FTA 등 대통령 노무현이 마주한 문제들은 후보 시절의 신념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었다. 책의 제6장이 재임기를 단순 연대기보다 주요 의제와 선택을 중심으로 구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노무현 평전』은 정치인의 삶을 읽을 때 필요한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신념과 현실이 충돌했을 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정치인은 자신의 지지자에게 충실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한 전체의 이해를 고려해야 하는가. 이상을 지키기 위한 타협과 이상을 포기하는 타협의 경계는 어디인가. 노무현의 재임 기간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크게 갈린다. 그의 정책과 정치적 판단 가운데에는 지지받은 선택도 있었고 강한 비판을 받은 결정도 있었다. 평전 역시 이러한 시기를 ‘가장 원대한 꿈, 가장 혹독한 싸움’이라는 장 아래 다루며 북핵부터 경제·국토 정책과 사회적 갈등, 기존 권력구조와의 충돌까지 폭넓게 추적한다. 그래서 이 책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성공한 대통령의 영웅담보다 선택의 과정이다. 어떤 결정에서는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판단을 수정하기도 한다. 북핵 문제를 다룬 기록에서는 기존 전제와 예측이 깨졌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자신의 판단을 수정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정치적 리더십을 생각할 때 중요한 질문이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내려놓은 뒤 이야기는 다시 봉하로 돌아간다. 책은 퇴임 후 자유인이 된 시간과 기록물 논란, 글쓰기, 검찰 수사 그리고 2009년 마지막 시간까지 이어진다. 이후 8장과 9장에서는 연대기에서 잠시 벗어나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따로 바라본다. 사람을 쓰는 방식, 토론과 설득, 시스템에 대한 집착, 가족과의 관계, 말과 글, 언론을 상대하는 방식까지 살핀다. 여기서 하나의 흥미로운 모습이 나타난다. 노무현은 강한 개인적 캐릭터를 가진 정치인이었지만 동시에 개인보다 시스템을 강조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토론하고 기록하며 절차와 제도를 만들려 했다는 점은 ‘좋은 지도자 한 명’보다 좋은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을 고민했던 그의 정치관과 연결해 읽어볼 수 있다. 민주주의의 성숙은 훌륭한 지도자가 우리를 대신해주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판단하고 참여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그래서 『노무현 평전』을 읽으며 우리가 반드시 노무현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평전의 의미는 질문을 되살리는 데 있다.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정치는 가능한가. 권력은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 대통령과 시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원칙과 실용은 함께 갈 수 있는가. 언론과 정치권력은 어떤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가.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투표가 끝난 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노무현의 임기가 끝났다고 함께 사라진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노무현을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것과 그의 실패만으로 한 시대를 정리하는 것은 모두 충분하지 않다. 평전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사람을 동상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다. 성공과 실패, 원칙과 타협, 자신감과 불안, 정치적 성취와 판단의 한계를 함께 놓고 볼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생애는 역사가 된다. 책의 프롤로그에서 윤태영은 노무현의 삶을 돌아보며 그의 역정에는 굴곡이 있었지만 지향은 곧았고,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역사의 큰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고 평가한다. 가까운 참모가 내린 평가라는 점에서 독자는 이에 동의할 수도, 다른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판단을 가능하게 할 기록이 우리 앞에 놓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평전』은 한 정치인의 과거에 관한 책이면서 현재의 독자에게 보내는 질문에 가깝다. 우리가 정치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기는 사람인가, 원칙을 가진 사람인가. 아니면 현실을 움직이면서도 자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잊지 않는 사람인가. 한 시대를 살았던 정치인을 다시 읽는 이유는 과거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남긴 성공과 실패를 함께 바라보며 우리가 다음에 만들고 싶은 사회의 모습을 생각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결국 질문은 정치인에서 시민에게 돌아온다. 우리가 원하는 ‘사람 사는 세상’은 누군가 만들어주기를 기다리는 세상인가, 아니면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하는 세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