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호메로스 『오디세이아』가 3천 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 전하는 방황과 귀환, 유혹과 절제, 그리고 인간이 자기 삶을 되찾는 법
인생에서 길을 잃지 않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길을 잃은 순간에도 자신이 어디로 돌아가고 싶은지를 잊지 않는 것이다. 『오디세이아』는 약 3천 년 전 만들어진 이야기인데도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마친 이타케의 왕 오디세우스는 열두 척의 배와 동료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향한다. 전쟁이 10년이었으니 이제 남은 일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인 듯했다. 하지만 그의 귀환에는 다시 10년이 필요했다. 폭풍과 괴물, 신의 분노와 인간의 욕망이 계속해서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현대지성이 2025년 출간한 박문재 번역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어 원전을 직접 옮긴 완역본이다. 고대 그리스어의 리듬과 어순, 문체를 살리면서 현대 독자가 읽을 수 있도록 다듬었고, 43쪽의 심층 해설과 303개의 각주를 더했다. 루벤스를 비롯한 거장들의 명화 104점을 함께 수록했다는 점도 이 판본의 특징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매력은 고전이라는 권위에 있지 않다. 오디세우스라는 인간에게 있다. 그는 흔히 지략의 영웅으로 기억된다. 트로이 목마를 떠올리면 그의 영리함이 먼저 생각난다. 『오디세이아』에서도 그는 힘보다 머리를 사용한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빠져나가고, 마녀 키르케와 세이렌의 유혹을 통과하며, 마침내 이타케로 돌아와 자신의 왕국을 되찾는다. 그렇다고 완벽한 영웅은 아니다. 영리하지만 오만하고, 신중하면서도 충동적이다. 폴리페모스에게서 탈출하고도 자신의 정체를 자랑하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해 이름을 밝힌다. 그 결과 폴리페모스의 아버지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면서 귀향은 더욱 험난해진다. 이 결함이 오히려 오디세우스를 인간적으로 만든다. 우리는 대부분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몰라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고, 욕망을 이기지 못해 돌아가야 할 길에서 벗어난다. 오디세우스의 위대함은 실수하지 않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의 실수와 상실을 통과하면서도 다시 방향을 찾아가는 데 있다. 그가 만나는 존재들은 그래서 단순한 판타지의 괴물로만 읽히지 않는다. 로토파고이족의 연꽃은 현실을 잊게 만드는 안락함이고, 키르케는 머물고 싶은 유혹이며, 세이렌은 인간이 거부하기 어려운 욕망의 목소리처럼 다가온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삶을 제안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이타케를 선택한다. 왜일까. 이타케가 더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곳이 자신의 삶이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아내 페넬로페이아와 아들 텔레마코스, 자신의 집과 왕국이 있는 곳. 오디세우스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되찾는 일이다. 이 때문에 『오디세이아』에서 귀향은 공간의 이동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떠난다.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돈, 더 높은 자리, 다른 사람의 인정. 그런데 너무 오래 달리다 보면 처음에는 왜 출발했는지조차 잊을 때가 있다. 그런 우리에게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묻는다. 당신의 이타케는 어디인가. 모든 성공과 명예를 내려놓더라도 돌아가고 싶은 사람과 장소가 있는가. 그리고 지금 달리고 있는 방향은 정말 그곳을 향하고 있는가. 『오디세이아』의 또 다른 축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오디세우스가 바다를 떠도는 동안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 페넬로페이아는 이타케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수많은 구혼자가 궁전을 점령하다시피 하며 재혼을 요구하지만 그녀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완성하면 결정하겠다며 시간을 번다. 낮에 짠 천을 밤마다 다시 풀어버리는 유명한 계책이다. 작품은 오디세우스의 모험만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용기도 보여준다. 한 사람은 바다를 건너며 버티고, 한 사람은 같은 장소에서 시간을 견딘다. 움직이는 사람만이 삶과 싸우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용기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또 어떤 용기는 쉽게 포기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오디세이아』는 성공담과도 거리를 둔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것을 잃는다. 출발할 때 열두 척이었던 배도, 함께했던 동료들도 사라진다. 마지막에는 왕의 위엄을 드러내며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를 감춘 채 이타케에 들어선다. 그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영웅의 귀환과 다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오디세우스는 가장 현명해져 있다. 무작정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상황을 살피며 기다린다. 젊은 시절의 그였다면 참지 못했을지도 모를 시간을 견딘다. 출판사 역시 작품의 후반부에서 모든 것을 확인하고 때를 기다린 뒤 행동하는 그의 절제에 주목한다. 결국 10년의 방랑은 그에게 괴물을 이기는 기술만 가르친 것이 아니다. 기다리는 법을 가르쳤다. 그래서 『오디세이아』가 보여주는 성장은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것과 조금 다르다.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가깝다. 바다는 언제든 거칠어질 수 있고 신들은 인간의 계획을 뒤집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인간에게 남는 것이 있다. 상황을 판단하고, 선택하고, 다시 시작하는 능력이다. 여기에 오래된 고전이 건네는 의외의 위로가 있다.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남들보다 오래 돌아간다고 해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을 끝내고도 집에 돌아가는 데 10년을 더 썼다. 하지만 그 방황의 시간이 결국 그를 이전과 다른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타케에 도착했을 때 귀환은 단순히 여행의 종료가 되지 않는다. 떠났던 사람이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것을 다시 선택하는 순간이 된다. 그래서 『오디세이아』는 모험소설이면서 동시에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세이렌도, 키클롭스도 만나지 않는 우리의 삶에도 예상하지 못한 폭풍과 유혹은 끊임없이 나타난다. 때로는 멀리 돌아가고, 자신이 선택한 길 때문에 더 큰 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지도가 아닐지 모른다. 돌아갈 방향을 기억하는 일이다.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중요한 것은 폭풍을 한 번도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폭풍이 지나간 뒤 다시 돛을 올릴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그 돛이 향할 곳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