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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누군가는 ‘그랬다’고 적어두어야 한다

김애란 『그랬다고 적었다』가 사람의 얼굴과 이야기의 힘을 통해 기록하는 우리 시대의 마음

미디어2026. 08. 30
어떤 시간은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문장이 되고, 그 문장을 통해 우리는 그때의 자신을 다시 만난다.

『그랬다고 적었다』는 김애란이 『잊기 좋은 이름』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산문집이다. 2026년 8월 24일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이 책은 220쪽에 걸쳐 한 사람의 얼굴, 이야기의 얼굴, 일상의 얼굴을 바라본다. 1부 ‘사람의 얼굴’, 2부 ‘이야기의 얼굴’, 3부 ‘일상의 얼굴’이라는 구성 아래 작가로 살아온 시간과 문학에 대한 생각, 코로나19를 함께 지나온 기억, AI가 일상적인 대화 상대가 된 지금의 풍경까지 담아낸다. 

제목부터 김애란답다. ‘그랬다고 적었다.’ 무엇이 옳았다고도,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고, 누군가는 그렇게 느꼈으며, 자신은 그것을 그렇게 적었다고 말한다. 단정 대신 기록을 택하는 태도다.

그래서 이 책에서 글쓰기는 자신을 드러내는 기술에 머물지 않는다. 흘러가버릴 사람과 사건을 붙잡고, 미처 이름 붙이지 못했던 감정에 잠시 자리를 내어주는 일에 가깝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을 경험한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사랑하고, 실패하고, 다시 출근하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식사를 한다. 당시에는 그저 견뎌야 할 하루였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그 안에도 분명 하나의 시대가 들어 있었다.

알라딘은 이 책을 소개하며 김애란과 독자가 지난 7년 동안 함께 나이를 먹었고, 만남과 헤어짐을 거쳐 코로나를 지나 이제 AI와 대화하는 시대에 도착했다고 짚는다. 실제 책에도 ‘모두의 일곱 해’, ‘숨 나누기’, ‘코로나 극장전’, ‘종말은 가볍고 투명하게’, ‘진짜로 가짜 같은 진짜’ 같은 글이 실렸다. 한 개인의 산문이면서 동시에 2020년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집단적인 기억과 겹쳐지는 이유다. 

좋은 산문은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어느 순간 독자가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

김애란의 문장이 오래 사랑받아온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거대한 담론을 앞세우기보다 작은 장면을 오래 바라본다. 한 사람의 말과 표정, 사라진 자리, 생활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순간에서 시작해 그 안에 숨어 있던 감정을 끌어낸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작가의 기억을 따라가던 독자가 어느 순간 자신의 부모와 친구, 헤어진 사람과 지나간 계절을 생각하게 된다.

1부의 제목이 ‘사람의 얼굴’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내가 되지 않는 꿈’, ‘세 개의 빛’, ‘산문적인 세계에서’, ‘없는 자리’ 같은 글들은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보여준다. 여기서 사람은 완성된 인물이 아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남고, 때로는 부재를 통해 더 선명해지는 존재다. 

우리는 사람을 쉽게 판단한다. 짧은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로 성격을 규정하고, 자신의 경험을 기준 삼아 상대를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는 타인이 알 수 없는 수많은 시간이 있다. 김애란의 글은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사정을 알아내는 일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사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에 가까워진다.

2부 ‘이야기의 얼굴’에서는 시선이 문학으로 이동한다. ‘나의 유령 문학 유랑’, ‘인간은 그런 존재’, ‘어떤 책은’, ‘아름다움은 자란다’, ‘없어지지 않는 말’, 그리고 표제작 ‘그랬다고 적었다’까지 이어진다. 

이 글들을 관통하는 질문은 결국 ‘우리는 왜 이야기를 읽고 쓰는가’에 닿는다. 문학이 현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상실한 사람을 돌려보내지도 못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것으로 만들 수도 없다. 그런데도 힘든 시기가 오면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누군가가 남긴 문장을 찾는다.

알라딘의 편집자 소개에는 이 책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는 김애란의 말이 짧게 소개된다. 삶의 어려움을 통과할 때 우리가 문학의 언어에 기대왔고,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문학의 효용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혼자라고 생각했던 감정에 이미 누군가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문학은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하지만, 그 고통을 혼자 설명해야 하는 외로움에서는 우리를 조금 구해줄 수 있다.

그래서 『그랬다고 적었다』의 위로는 크거나 요란하지 않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쉽게 말하지도 않는다. 대신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상실과 불안, 관계와 시간의 변화를 자세히 바라본다. 그리고 그 순간을 언어로 옮겨둔다. 누군가 훗날 그 문장을 발견하고 ‘나도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3부 ‘일상의 얼굴’에서 이 태도는 동시대의 풍경으로 확장된다. 코로나19라는 집단적인 사건부터 AI가 우리의 언어와 일상으로 들어온 현재까지, 기술과 사회는 빠르게 변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여전히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기척을 느끼는 일이다. 실제 출간 기념 작가전에서도 책 속 문장으로 “이웃들의 기척 쪽으로, 동시대인들의 체온 쪽으로” 향하는 시선이 강조됐다. 

기술이 사람보다 더 빠르게 문장을 만들고 수많은 기록이 실시간으로 생산되는 시대에 ‘쓴다’는 행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문장을 생산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누구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무엇을 잊지 않기 위해 적었느냐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랬다고 적었다』는 과거를 회상하는 산문집인 동시에 현재를 기록하는 책이다. 김애란 개인의 지난 시간이 들어 있지만 독자는 그 안에서 자신의 지난 시간을 발견한다. 팬데믹을 지나온 기억, 나이를 먹으며 달라진 관계, 사라진 사람과 새롭게 생겨난 두려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낯선 일상까지.

출간 직후 독자의 반응도 빠르다. 알라딘에서는 종합 주간 2위와 종합 TOP10 2주를 기록했고, 8월 30일 현재 높은 판매 지수를 보이고 있다. 이제 막 출간된 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김애란이 지난 시간을 어떤 언어로 기록했는지 기다린 독자가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것은 판매 순위도, 문학에 대한 거창한 정의도 아니다. 제목에 담긴 아주 작은 태도다. ‘그랬다고 적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이별은 끝까지 이유를 모르고, 어떤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정확한 이름을 찾지 못한다. 그래도 그때 내가 슬펐다고, 누군가를 좋아했다고, 무서웠다고, 함께 견뎠다고 적을 수는 있다.

그렇게 남겨진 문장은 훗날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작은 흔적이 된다. 그리고 누군가 그 문장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발견한다면, 아주 개인적인 기록은 어느 순간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사라지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들에게 작은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때 그곳에 있었고, 사랑했고, 아팠고, 그래도 살아갔다고. 그랬다고 적어두는 것이다.

“타인에게로, 또 세상에게로.” — 김애란, 『그랬다고 적었다』
이 짧은 방향성이 책의 마음과 맞닿아 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산문은 결국 자기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얼굴과 동시대의 삶을 바라보는 일로 확장된다. 훗날 지금의 시간을 돌아봤을 때, 당신은 오늘의 자신에 대해 어떤 한 문장을 남기고 싶나요?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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