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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끝까지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것

호메로스 『오뒷세이아』가 3천 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 귀향과 정체성,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의미

미디어2026. 08. 30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유혹과 실패를 지나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뒷세이아』는 서양 문학의 시작점 가운데 하나다. 제목 자체가 ‘오뒷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이며, 트로이아 전쟁이 끝난 뒤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기까지 오뒷세우스가 겪는 10년간의 방랑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번 을유문화사 판은 고전학자 김헌이 고대 그리스어 원전을 완역한 760쪽 분량의 신간으로, 2026년 8월 출간됐다. 원전에 충실하면서 호메로스가 바라본 인간의 모습을 살리고, 독해를 돕는 주석과 일러스트를 더했다는 것이 출판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책을 ‘영웅의 모험담’이라고만 설명하면 작품의 절반밖에 읽지 못한 셈이다. 오뒷세우스는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지만 귀향길에서는 끊임없이 무너진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고,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와 맞닥뜨리고, 마녀 키르케와 세이렌의 유혹을 지나며 죽은 자들의 세계까지 방문한다. 동료를 잃고 배를 잃으며 끝내 홀로 남는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목표는 놀라울 만큼 소박하다. 집에 가는 것이다.

오뒷세우스에게 이타케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그래서 그의 귀향은 공간적인 이동인 동시에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된다. 예스24의 책 소개 역시 오뒷세우스의 방황과 고뇌, 귀향의 대서사를 인간이 여러 고난을 통과하며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과 연결한다. 

『오뒷세이아』가 묻는 것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은 뒤에도 자신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기억할 수 있는가이다.

그 과정에서 오뒷세우스는 완벽한 영웅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는 용감하지만 교활하고, 현명하지만 때로는 자만한다. 퀴클롭스 폴뤼페모스에게서 가까스로 탈출한 뒤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행동은 대표적이다. 승리를 과시하고 싶은 인간적인 욕망이 포세이돈의 분노를 불러오고 귀향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바로 이 불완전함 때문에 『오뒷세이아』는 오늘날까지 살아남는다. 신처럼 완벽한 존재의 성공담이었다면 우리는 오뒷세우스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실수하고 후회하고 유혹받으며 때로는 자신의 선택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는다. 그러면서도 다시 방향을 찾는다.

인생 역시 그렇다. 우리는 항상 옳은 선택만 하며 살아갈 수 없다. 잘못된 사람을 믿기도 하고,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기도 하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먼 길을 돌아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한 번도 길을 잃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길을 잃었을 때 다시 방향을 찾는 능력이다.

오뒷세우스의 이야기와 나란히 흐르는 페넬로페의 시간도 중요하다. 남편이 사라진 20년 동안 그녀는 수많은 구혼자의 압박을 견딘다. 낮에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고 밤이면 다시 풀어버리는 계책으로 선택을 미룬다. 오뒷세우스의 영웅성이 바다를 건너는 행동으로 나타난다면, 페넬로페의 강인함은 한 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견디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한 사람은 떠나면서 견디고, 다른 사람은 남으면서 견딘다. 그래서 『오뒷세이아』에서 귀향은 혼자 완성할 수 없는 사건이다. 돌아오려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버티게 만드는 것은 고통이 끝날 것이라는 확신보다, 그 고통 너머에 여전히 자신을 기다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3천 년 가까이 된 서사시는 놀랍도록 현대적인 위로가 된다. 오늘의 우리는 퀴클롭스도 세이렌도 만나지 않지만 다른 종류의 괴물과 유혹을 만난다.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 타인과의 비교, 돈과 인정에 대한 욕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끊임없이 원래의 방향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특히 세이렌의 에피소드는 상징적이다. 오뒷세우스는 자신을 돛대에 묶고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게 한다. 유혹이 존재하지 않는 척하는 대신 자신의 의지가 무너질 가능성을 인정하고 미리 장치를 마련한다. 인간은 의지만으로 모든 욕망을 이겨낼 만큼 강하지 않다는 현실적인 인간관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김헌의 번역이 주목되는 이유도 이러한 호메로스의 인간관을 원전의 언어에서 되살리려 했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원전의 문장과 표현, 호메로스 특유의 인간관을 살리는 것을 이번 완역의 강점으로 소개한다. 알라딘 역시 이 판본을 김헌의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으로 분류하고 있다. 

『오뒷세이아』에는 신들이 인간의 운명에 끊임없이 개입한다. 아테네는 오뒷세우스를 돕고 포세이돈은 그를 방해한다. 그러나 작품은 모든 것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신들이 조건을 만들더라도 그 안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은 운명을 지배하는 능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세계에서도 자신의 선택을 계속해 나가는 데서 나온다. 바다를 잠재울 수는 없어도 돛의 방향을 정할 수 있고, 폭풍을 막을 수는 없어도 다시 배를 띄울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 오뒷세우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다. 자신의 자리를 되찾고, 페넬로페에게 자신이 정말 그 사람임을 확인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가 돌아간 곳은 떠날 때와 같은 장소지만, 돌아온 그는 떠났을 때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여행의 역설이다. 우리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떠나지만, 수많은 경험을 통과한 뒤에는 이전과 같은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다.

그래서 『오뒷세이아』를 읽고 나면 ‘어디로 갈 것인가’보다 ‘어디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직업이나 주소를 묻는 것이 아니다. 모든 명예와 성취를 내려놓았을 때에도 지키고 싶은 사람, 가치, 관계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타케가 필요하다. 삶이 예상보다 멀리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다시 방향을 잡게 해주는 무엇. 어쩌면 『오뒷세이아』가 수천 년 동안 읽혀온 이유는 괴물과 영웅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한 번쯤 길을 잃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보다 더 비참한 것은, 땅 위에서 숨 쉬며 움직이는 모든 것 가운데 아무것도 없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절망만을 말하는 문장은 아니다. 『오뒷세이아』에서 인간은 약하고 흔들리며 운명의 영향을 받는 존재다. 그럼에도 다시 선택하고, 견디고, 집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인간의 비참함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위대함과 맞닿는다. 당신이 지금 긴 여행의 한가운데 있다면, 모든 것을 지나 결국 다시 돌아가고 싶은 당신만의 ‘이타케’는 어디인가요?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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