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최인서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이 괴담과 역사 사이에서 불러낸, 사료의 행간에 남겨진 사람들의 목소리
괴이한 것은 귀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이 역사에서 아무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궁궐과 고분, 오래된 사찰과 종갓집. 우리는 이런 장소 앞에서 ‘역사’를 떠올린다. 왕이 살았고, 전쟁이 벌어졌으며, 누군가의 무덤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안내판과 교과서에 남는다. 그러나 그 궁궐을 짓다 죽은 사람, 권력의 결정으로 삶을 잃은 사람,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최인서의 첫 장편소설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작품 속 대한민국에는 국가가 관리하는 사적지에서 발생하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추적하는 비밀 기관이 존재한다. 원영궁, 지하리 4호분, 와룡사, 사덕헌, 거렁바위골을 비롯한 장소에서 기괴한 사건이 이어지고 연구원들은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현장으로 들어간다. 설정만 보면 한국사를 배경으로 한 오컬트 호러에 가깝다. 하지만 이 작품이 겨누는 곳은 귀신의 정체보다 훨씬 깊다. 출판사가 강조하듯 소설은 역사를 공포를 위한 장식으로 소비하기보다, 공식 기록에서 누락된 삶이 어떻게 현재로 귀환하는지를 묻는다. 결국 이상현상은 과거가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현재까지 도착한 오래된 목소리다. 작품의 형식 역시 독특하다. 일반적인 소설처럼 한 명의 화자가 사건을 설명하지 않는다. 탐사 지침서, 사건 보고서, 면담과 음성 녹취록, 직원들의 채팅 기록이 하나씩 쌓이면서 세계의 윤곽이 드러난다. 독자는 완성된 진실을 전달받는 대신 서로 어긋나는 기록과 삭제된 부분 사이에서 직접 사건을 추론해야 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탐사가 된다. 기록은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지웠는지를 결정하는 순간 이미 하나의 시선이 된다. 이 대목에서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은 장르적 재미를 넘어 역사에 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이 아니다. 살아남은 사료와 유물, 기록을 통해 재구성한 과거다. 그렇다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의 삶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는가. 소설 속 괴이는 바로 그 공백을 파고든다. 역사책 한 줄 뒤에 숨어 있던 죽음과 고통이 모습을 얻고, 이름 없는 존재들의 감정이 현재의 사람들을 붙잡는다. 무서운 장면을 읽고 있는데 이상하게 슬픔이 먼저 도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의 공포는 알 수 없는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는 순간보다, 왜 그것이 사라지지 못했는지를 깨닫는 순간 더 강해진다. 그렇기에 ‘연구원’이라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연구원들은 괴이를 제거하는 퇴마사가 아니다. 조사하고 기록하며 원인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만이 아니라 과거의 고통에 너무 깊게 잠식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들여다보는 태도다. 그 과정에서 독자 역시 비슷한 위치에 놓인다. 사건을 흥미로운 괴담으로만 소비할 것인지, 아니면 그 안에서 끝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역사적 비극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누군가의 원한을 끝내는 첫 번째 방법은 그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이 가진 독특한 위로다. 작품은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비극을 없앨 수도,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도 없다. 다만 누군가 그 흔적을 발견하고 기록하며 기억할 수는 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설명하지 못했던 상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노력, 혼자 견뎌야 했던 시간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처럼 마음 한편에 남는다. 사람에게 필요한 위로가 반드시 문제의 해결만은 아닌 이유다. 때로는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알아주는 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오래된 고통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 기억은 일종의 책임이 된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연도와 사건을 암기하는 일이 아니다. 그 시대에도 우리처럼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살아남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하는 것이다. 역사가 숫자와 사건에서 인간의 얼굴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최인서가 포스타입에서 연재한 이 이야기는 누적 55만 열람을 기록한 뒤 500쪽 분량의 첫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출간 직후 교보문고 2026년 8월 넷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진입했는데, 특히 20대 여성 구매자가 절반을 넘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익숙한 한국사를 아카이브 미스터리라는 현대적인 형식으로 다시 읽게 만든 접근이 장르 독자들의 강한 반응으로 이어진 셈이다. 하지만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의 진짜 잔상은 사건이 해결된 뒤 찾아온다. 우리가 오늘 관광지가 된 궁궐을 걷고, 오래된 무덤을 바라보고, 문화재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 그곳에는 교과서가 모두 담아내지 못한 삶이 겹쳐 있을 수 있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누구를 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현재의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소설이 만들어낸 가장 무서운 ‘이상현상’은 유령이 아니라, 너무 많은 사람을 잊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계속되는 우리의 일상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