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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상처를 읽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구병모 『절창』이 상처와 독해의 은유를 통해 묻는 사랑, 이해, 그리고 타인이라는 영원한 미지의 세계

미디어2026. 08. 30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과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일지도 모른다.

『절창』의 제목은 한자로 ‘切創’, 말 그대로 칼이나 날카로운 것에 베여 생긴 상처를 뜻한다. 구병모는 이 물리적인 상처 하나를 인간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바꿔놓는다. 작품의 중심에는 타인의 상처에 접촉하면 그 사람의 내면을 읽을 수 있는 여성이 있다.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다친 친구의 상처를 눌렀다가 생각이 자신의 안으로 밀려드는 경험을 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그의 특별한 능력을 알아본 사업가 문오언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능력과 욕망, 사랑과 소유가 뒤엉킨 기묘한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설정만 놓고 보면 초능력을 소재로 한 판타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병모가 관심을 두는 곳은 능력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타인을 읽는다’는 행위의 본질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그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표정을 보고 마음을 짐작하고, 말투에서 감정을 읽으며,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는 이유로 상대의 생각까지 이해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절창』은 그 믿음에 날카로운 금을 낸다. 작품 속 능력자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타인의 내면에 접근할 수 있지만, 그것조차 완전한 이해를 보장하지 않는다. 출판사 역시 이 작품을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타인이라는 영원한 텍스트’를 독해하려는 행위와 그 가능성·불가능성을 성찰하는 소설로 설명한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를 알고 싶어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욕망은 때로 사랑보다 소유에 가까워진다.

이 지점에서 『절창』은 흥미로운 사랑소설이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더 알고 싶어진다. 오늘 왜 침묵했는지, 무엇 때문에 아픈지, 자신에게 하지 못한 말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친밀감의 욕구다. 하지만 상대의 모든 내면을 열어볼 권리까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질 수 있을까.

구병모는 그 경계를 편안하게 정리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와 침범, 애정과 집착, 독해와 오독의 경계를 계속 흔든다. 그래서 작품에서 상처는 단순한 아픔의 흔적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들어갈 수 있는 입구인 동시에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경계가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책 읽기 자체와도 겹친다. 독자는 활자로 기록된 인물의 생각을 읽으며 그를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작가가 보여준 조각들을 자신의 경험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알라딘의 편집자 소개가 작품을 두고 “읽은 만큼만 말할 수 있다”고 표현하고, 소설 속에서 ‘본질적인 오독’의 문제를 짚는 것도 이런 구조와 연결된다. 『절창』은 인물을 읽는 소설인 동시에 우리가 사람과 문학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되묻는 소설이다. 

어쩌면 사랑의 완성은 상대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이 문장이 『절창』이 남기는 가장 깊은 여운에 가깝다. 우리는 관계에서 자주 “나는 너를 알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 인간은 한두 개의 사건이나 몇 년의 관계로 해독할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이 다르고, 자신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은 달라져야 한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틀렸다고 판단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다고 거짓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것. 상대에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앞에서 잠시 멈추는 것. 『절창』의 기묘한 판타지는 결국 아주 현실적인 관계의 윤리로 돌아온다.

여기에 구병모 특유의 밀도 높은 문장이 더해진다. 『파과』에서 노년의 여성 킬러를 통해 삶과 쇠락의 의미를 뒤집어놓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상처를 읽는다’는 비현실적 설정을 현실의 인간관계를 비추는 렌즈로 사용한다. 실제로 『절창』은 2025년 9월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352쪽의 장편이며, 알라딘 독자 선정 2025 올해의 책 TOP 10에도 이름을 올렸다. 예스24에서도 독자 리뷰가 수백 건 축적되며 사랑과 관계의 의미를 둘러싼 다양한 독해가 이어졌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위로는 따뜻한 해답에서 오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타인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오랫동안 함께한 가족도, 때로는 자기 자신조차 완벽하게 해석할 수 없다.

그 사실은 쓸쓸하지만 동시에 관계를 조금 자유롭게 만든다. 상대를 전부 이해해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남겨둔 채 곁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읽지 못해서 관계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만이 옳다고 믿는 순간 관계가 닫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절창』은 상처를 없애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상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묻는다. 누군가의 상처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열어보고 싶은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상대가 스스로 보여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인지.

결국 사랑은 모든 것을 알아내는 능력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것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태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절창』을 덮은 뒤 오래 남는 것은 초능력의 기묘함보다 바로 그 질문이다.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다.” — 구병모, 『절창』
짧지만 작품 전체의 역설을 압축한 문장이다. 상처는 사랑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상처 때문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타인의 세계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은가요, 아니면 끝내 알 수 없는 부분까지 그 사람의 몫으로 남겨둘 수 있나요?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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