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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피어난 하나의 올리브

김초엽 『태양 아래 올리브』가 묻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끝내 믿는다는 것

미디어2026. 07. 24
김초엽의 소설은 언제나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가장 현재적인 인간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는 거리와 그리움을, 『지구 끝의 온실』에서는 회복과 공존을, 『파견자들』에서는 존재의 경계를 탐구했다. 그리고 세 번째 장편 『태양 아래 올리브』에서 그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번에는 인간이 끝내 답할 수 없는 질문, **‘무엇을 믿으며 살아갈 것인가’**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출판사 소개와 예스24의 작품 소개에 따르면 이번 작품은 김초엽이 처음으로 신앙과 과학, 인공지능이라는 세 개의 거대한 축을 하나의 이야기 안에 엮어낸 장편이다. 기후 재난 현장을 누비는 수녀 이레와 과학기술 전문 에디터이자 익명의 과학 유튜버 ‘미놋’을 운영하는 솔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정반대인 두 사람이 오래전 끊어진 관계를 다시 이어가며 동남아시아를 횡단하는 로드트립을 시작한다. 한국에서 하노이, 라오스, 메콩강, 태국 북부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단순한 추적극이 아니라 서로 다른 믿음이 부딪히는 철학적 여행이 된다. 

이레는 증명되지 않아도 사람을 믿는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먼저 몸이 움직인다. 반대로 솔민은 모든 주장에 근거를 요구한다. 과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허위 정보와 맹신을 비판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둘은 같은 현실을 바라보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소설은 둘 중 누구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을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보다 관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이 가장 강하게 전하는 메시지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함께 걸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옳고 그름을 구분하려 한다. 정치도, 종교도, 과학도 자신이 가진 진실을 증명하려 애쓴다. 그러나 김초엽은 인간은 끝내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곁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소설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올리브나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이다. 원래 그곳에서 자라지 않아야 할 나무가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이레는 그것을 보며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자란 올리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올리브는 태어날 장소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미 뿌리를 내렸다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존재의 이유라는 사실을. 

이 상징은 결국 인간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우리는 누구도 삶의 출발점을 선택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상처 속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이해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이 존재를 잘못된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김초엽은 낯선 땅에서도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올리브를 통해 존재 자체의 존엄을 이야기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인공지능을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SF가 AI를 기술 발전의 결과로 다루는 것과 달리, 『태양 아래 올리브』는 AI가 인간에게 어떤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지에 집중한다. 의식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사랑은 증명될 수 있는가. 인간다움은 기억에서 비롯되는가, 관계에서 비롯되는가. 이러한 질문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 철학과 종교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김초엽은 인터뷰에서 “유토피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말했다. 완벽한 세상에는 갈등이 없고, 갈등이 없다면 이야기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그리는 미래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민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회복이며, 미래가 아니라 공존이다. 

이 책은 종교를 찬양하지도, 과학을 절대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두 세계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넓혀 주지만, 종교는 설명할 수 없는 것 앞에서도 살아갈 용기를 준다. 결국 인간은 두 가지 모두를 필요로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 오래 남는 메시지는 ‘사랑은 증명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사랑에도 이유를 찾으려 한다. 왜 좋아하는지, 왜 함께해야 하는지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소설은 어떤 감정은 논리보다 먼저 존재한다고 말한다. 믿음도, 우정도, 용서도 결국은 설명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태양 아래 올리브』는 ‘인간다움’에 대한 소설이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이지 않다. 때로는 증거 없이 믿고,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며,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품으려 한다. 그 모순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책이 주는 위로는 거창하지 않다.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정답을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김초엽은 한 그루의 올리브를 보여준다. 척박한 땅에서도 끝내 뿌리를 내리는 생명처럼, 인간 역시 서로를 향한 믿음을 통해 살아갈 수 있다고.

결국 『태양 아래 올리브』는 SF 소설이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소설이다. 미래를 상상하지만 현재를 위로하고, 기술을 말하지만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독자는 깨닫게 된다. 우리가 평생 찾고 있었던 것은 정답이 아니라, 끝내 함께 걸어갈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끝내 믿기로 선택하는 일.”
당신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증명할 수 없었지만 끝내 믿기로 선택했던 것이 있었나요?

글  :  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