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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역사는 지나가도, 사람의 기억은 끝나지 않는다

임흥순, 거대한 사건보다 그 사건을 살아낸 한 사람의 목소리를 오래 바라보는 작가

미디어2026. 09. 29
역사는 사람을 숫자로 기억할 때가 있다.

몇 명이 죽었고.

몇 명이 해고됐으며.

몇 년 동안 싸웠는지 기록한다.

하지만 숫자에는 얼굴이 없다.

그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지, 사건이 끝난 뒤 어떤 마음으로 밥을 먹고 잠들었는지는 좀처럼 기록되지 않는다.

임흥순의 작업은 그 빠져나간 부분에서 시작한다.

[비념]에서는 제주4·3이라는 거대한 사건보다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기억을 따라간다. [위로공단]에서는 한국 산업화를 설명하는 대신 봉제공장과 전자공장, 마트와 콜센터에서 일했던 여성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는 이념과 전쟁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갈라놓았는지를 묻고, [좋은 빛, 좋은 공기]에서는 광주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국가폭력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을 서로 비춘다.

그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질문은 단순하다.

역사는 끝났다고 말하지만, 그 일을 겪은 사람에게도 정말 끝난 것일까.

[비념]을 만들며 임흥순은 제주4·3을 객관적으로 기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희생된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다.

그래서 사건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제주4·3은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카메라 역시 자신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식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시선처럼 제주를 떠돌게 했다.

그에게 [비념]은 “개인적인 작은 비념”이었다.

거대한 역사를 완성하는 기록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애도의 행위였던 셈이다.


 임흥순에게 예술은 역사를 대신 말하는 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말하지 못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다시 들릴 자리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

그 태도는 [위로공단]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작품의 출발점에는 그의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40년 넘게 봉제공장에서 일했고, 여동생 역시 백화점과 마트에서 노동했다.

그러나 영화는 가족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국의 여성 노동자에서 캄보디아의 노동자로 이동하고, 육체노동에서 서비스노동과 감정노동으로 확장된다.

66명을 만나고 그중 22명의 목소리를 영화에 담았다.

그런데 임흥순은 이들을 ‘피해자’라는 한 단어로 묶지 않는다.

그에게 노동의 역사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했다.

대우받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으며, 노동의 숭고함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위로공단]의 제목에 들어간 ‘위로’도 조금 다르게 들린다.

불쌍한 사람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건네는 위로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세계가 누구의 노동 위에 만들어졌는지를 뒤늦게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임흥순은 “포장이나 미적 장치보다 사람의 목소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못 만들더라도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는 태도였다.

 사람을 작품의 소재로 만들기 전에 한 사람의 삶으로 대하는 것.

그의 카메라가 감정을 다루는 방식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눈물을 크게 확대하지 않는다.

분노를 극적인 음악으로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인터뷰 사이에는 풍경이 들어오고.

사람의 얼굴 뒤에는 침묵이 남는다.

때로는 퍼포먼스와 시적인 이미지가 현실의 기록 사이에 끼어든다.



[위로공단]의 퍼포먼스 역시 화면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이 느꼈을 감정을 어떻게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다큐멘터리이면서 동시에 미술이 된다.

사실을 전달하지만 사실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임흥순은 “감동보다는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술 역시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며, 사람 사이에 관계를 만드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관객에게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좋은 빛, 좋은 공기]에서도 이 태도는 이어진다.

1980년 광주와 1970~8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장소의 국가폭력을 한 작품 안에서 바라본다.

그가 주목한 것은 사건의 유사성만이 아니었다.

폭력이 다음 세대로 어떻게 이동하는가였다.

사건은 끝났지만 실종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부모가 받은 트라우마가 자녀에게 전달되고, 강제입양된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임흥순은 이를 두고 “끝난 게 끝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역사는 과거형으로 기록되지만 고통은 현재형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억하는 일은 과거를 붙잡고 사는 행동만은 아닐 것이다.

같은 일이 다른 이름으로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현재의 우리가 맡아야 하는 일이 된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 그 질문은 ‘적’이라는 단어로 이동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이 되고.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면 경계 밖으로 밀어낸다.

임흥순은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며 우리를 갈라놓은 것이 결국 누군가를 ‘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싶다고 했다.

여기에서 그의 작업이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는 이유가 드러난다.

제주4·3도.

한국전쟁도.

광주도.

여성 노동의 역사도.

모두 과거의 사건이지만 그 안에서 작동했던 배제와 혐오, 침묵과 망각의 방식은 다른 모습으로 계속 돌아온다.


 그에게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뒤를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누구를 보지 않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 임흥순을 다시 바라볼 이유도 분명하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많은 사건을 본다.

몇 초짜리 영상으로 전쟁을 보고.

기사 제목으로 죽음을 읽고.

숫자로 해고와 재난을 확인한다.

그러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간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에 머무는 시간은 짧아졌다.

임흥순의 작품은 그 속도를 늦춘다.

한 사람의 얼굴을 보여준다.

말을 기다린다.

침묵까지 기록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단지 역사의 피해자나 노동자, 유족이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어머니였고, 딸이었고,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되돌려놓는다.

그가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어쩌면 명확하다.

‘내가 이 사람들을 대신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비념]에서도 하나의 역사관을 관객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위로공단]에서도 특정한 해석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양하게 생각하고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려 했다.

그것은 무책임한 중립과는 조금 다르다.

사람을 충분히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고통을 외면하지 않되.

그 사람의 삶을 자신의 주장에 필요한 증거로만 사용하지 않는 태도다.

임흥순은 “개인사야말로 공적 역사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역사는 언제나 그렇게 시작됐을 것이다.

거대한 사건보다 먼저 한 사람이 있었다.

출근했고.

사랑했고.

가족을 기다렸고.

무언가를 믿었고.

어느 날 자신보다 훨씬 큰 사건을 통과해야 했다.

임흥순은 그 사람에게 카메라를 돌린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잠시 그 사람 옆에 앉아보라고 한다.

 어쩌면 기억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아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지 않도록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예술은 현실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위로공단]으로 은사자상을 받은 뒤 임흥순이 자신의 작업 태도를 설명하며 남긴 말이다. 그의 작품이 역사에 하나의 결론을 붙이기보다 우리가 지나쳐온 사람과 현실을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이유를 압축한다.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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