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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목소리가 커질수록, 사람은 더 작게 보여야 한다

홍광호, 노래를 증명하는 대신 한 사람이 왜 그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는지 찾는 배우

미디어2026. 09. 28
홍광호에게는 조금 불리한 수식어가 있다.

‘노래를 정말 잘하는 배우.’

틀린 말은 아니다.

단단한 발성, 넓은 음역, 객석 끝까지 밀려가는 성량은 그의 이름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배우 홍광호가 가려질 때가 있다.

그의 작품들을 이어놓으면 다른 질문이 보인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토, [미스 사이공]의 투이, [지킬앤하이드]의 지킬과 하이드, [데스노트]의 라이토.

모두 목소리의 힘이 필요한 인물들이지만, 홍광호는 그 힘 자체를 인물의 목적지로 삼지 않는다.

그가 반복해서 붙잡아온 것은 오히려 ‘점과 점 사이’다.

2013년 [노트르담 드 파리]를 준비하며 그는 작품 속에 떨어져 있는 점들을 선으로 이어주는 것이 배우의 몫이라고 말했다. 극본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배우가 그 사이를 메워 하나의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 말은 홍광호의 연기를 바라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에게 배우는 장면을 잘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삶을 만들어내는 사람에 가깝다.

[미스 사이공]의 투이는 대표적인 사례다.

투이는 작품의 구조만 따라가면 킴과 크리스의 사랑을 방해하는 인물로 읽히기 쉽다.

하지만 웨스트엔드에 진출한 홍광호는 투이를 단순한 악인으로 두지 않았다.

그는 투이 역시 전쟁의 희생자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국과 킴을 향한 사랑을 가진 인간이며,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밀려간 사람으로 바라봤다. 실제 웨스트엔드 제작진 역시 그의 해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홍광호는 현지 인터뷰에서 상이나 평가보다 이러한 과정 자체에 더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투이를 ‘좋은 사람’으로 바꾸지 않았다는 점이다.

악행을 지우지 않는다.

대신 악행을 저지른 사람에게도 그곳까지 도착하게 된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남긴다.

여기에서 홍광호의 감정 표현 방식이 드러난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만 감정의 논리는 의외로 세밀하다.

큰 소리를 내기 전에 왜 이 사람이 여기까지 몰렸는지를 쌓는다.

그래서 폭발은 시작점이 아니라 결과가 된다.

[지킬앤하이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지킬과 하이드는 선과 악이라는 극단적인 대비를 가진 인물이다. 배우에게는 두 사람을 얼마나 강렬하게 구분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을 조금 다르게 보면 둘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다.

하나의 몸 안에서 자신이 믿었던 선과 억압했던 욕망이 충돌하는 한 사람이다.



홍광호의 강점은 그 충돌을 목소리만으로 분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확신에 찬 지킬의 언어가 조금씩 흔들리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세계가 무너지면서 하이드가 커진다.

결국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괴물이 아니라 자신의 확신을 지나치게 믿었던 인간이다.

[데스노트]의 라이토 역시 비슷하다.

라이토는 처음부터 자신을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강해질수록 그는 점점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을 판단할 권리까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홍광호가 연기하는 인물들에게서는 그래서 반복되는 것이 있다.

확신.

욕망.

사랑.

그리고 그것이 너무 커졌을 때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가.

 그의 강한 목소리는 힘을 자랑하기 위해 존재하기보다, 한 인간의 믿음이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처럼 들릴 때가 있다.

반대로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토에서는 그 힘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콰지모토는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밀려난 사람이다.

외모 때문에 조롱받고,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일에 익숙하다.

홍광호는 콰지모토를 준비하면서 자신이 배우로서 해야 할 일을 ‘떨어진 점들을 선으로 잇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을 따라가 보면 콰지모토의 노래 역시 단순한 비극의 절규가 아니다.

말하지 못했던 사람이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내보내는 순간이다.

그래서 홍광호의 노래에는 종종 이상한 여백이 생긴다.

고음을 오래 끌고 난 뒤보다, 그다음 짧은 침묵에서 인물이 더 크게 보이는 순간.

노래가 끝났는데 감정은 아직 끝나지 않은 순간.

목소리가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의 얼굴이 남는 순간이다.



홍광호가 웨스트엔드 [미스 사이공]에 진출했을 때 보였던 태도 역시 흥미롭다.

한국 배우 최초로 웨스트엔드에서 주요 배역을 맡는 사건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정복’이나 ‘성공’이라는 언어보다 ‘유학’이라고 표현했다.

이미 한국에서 주연 배우로 자리 잡은 뒤였다.

그런데도 가는 이유를 배우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리고 분명하게 덧붙였다.

완성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이 태도는 무대 밖에서도 반복된다.

웨스트엔드에서 상을 받은 뒤에도 상이 모든 것을 말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

성공을 자신의 완성으로 번역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홍광호가 좀처럼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나는 이미 도착했다’는 문장인지도 모른다.

노래를 잘한다는 평가도.

해외에서 받은 인정도.

매진되는 공연도.

그에게는 다음 무대를 보장하는 답이라기보다 다시 시작해야 할 조건에 가까워 보인다.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무대 밖의 삶과도 연결된다.

우리 역시 어느 순간부터 잘하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알게 되고, 주변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간다.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알기 어려워진다.



홍광호가 이미 인정받은 자리에서 다시 낯선 언어와 시스템 속으로 들어갔던 선택이 오래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장은 더 높은 곳에 올라가는 일만이 아니라, 익숙한 자신을 다시 초보자의 자리에 세울 수 있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홍광호를 다시 바라볼 이유는 그의 고음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최고의 가창력을 가진 배우로 불린 사람이 여전히 ‘배우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목소리는 언젠가 익숙해진다.

기술도 반복해서 보면 놀라움이 줄어든다.

하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은 쉽게 낡지 않는다.

콰지모토가 왜 사랑하는지.

투이가 왜 그렇게까지 매달렸는지.

지킬은 왜 자신의 선함을 믿었는지.

라이토는 언제부터 정의와 오만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홍광호는 그 질문 사이에 서 있다.

그리고 노래한다.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인물이 왜 지금 이 노래를 부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때 뮤지컬의 노래는 공연을 장식하는 음악에서 한 인간의 삶으로 바뀐다.

“떨어진 점 이어서 선 만드는 게 배우 몫이죠.”
2013년 [노트르담 드 파리]를 앞둔 인터뷰에서 홍광호가 배우의 역할을 설명하며 한 말이다. 작품이 건네준 장면 사이의 빈칸을 배우가 인물의 삶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그의 태도를 압축한다.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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