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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답을 가진 배우보다, 계속 질문하는 배우

김신록, 인물을 이해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연기란 무엇인가’를 계속 처음으로 돌려놓는 사람

미디어2026. 09. 28
김신록의 얼굴을 하나 떠올리기는 어렵다.

[지옥]의 박정자는 죽음을 선고받은 뒤 공포에 잠식됐고,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화영은 욕망을 숨기지 않은 채 질주했다. [전,란]의 범동은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이 인물들은 닮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신록이라는 배우를 지나고 나면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사람은 정말 혼자 만들어지는 존재일까.

김신록은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이야기하며 자신은 오래전부터 인물을 하나의 개별자가 아니라 그 사람이 만나는 ‘세계의 총체’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환경과 관계까지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연기는 심리 설명보다 관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화영도 그렇다.

돈도 권력도 부족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그는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김신록은 진화영을 이해하기 위해 ‘욕망’을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 바라는 마음으로 바라봤고, 결국 이 인물의 행동을 결핍에서 출발하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특정한 누군가를 모델로 삼기보다 가족 안에서 진화영이 맺고 있는 관계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매일경제⁠)

진화영의 과장된 몸짓과 감정도 그렇게 보면 다르게 보인다.

그것은 단순한 악역의 히스테리가 아니다.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몸 전체를 사용하는 방식에 가깝다.


김신록에게 감정은 마음속에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충돌하면서 비로소 발생하는 사건처럼 보인다.

이 생각은 [지옥]에서 더욱 선명했다.

김신록은 당시 자신이 ‘감각에 의해 되어지는 몸’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배우가 먼저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에 반응하면서 연기가 발생하도록 두는 것이다. 이후 [지옥 시즌2]와 [전,란]에서는 반대로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방향을 시험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어느 쪽이 옳다고 결론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신록에게 연기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어떤 시기에는 세계가 몸을 움직이게 두고, 또 어떤 시기에는 몸이 먼저 세계를 향해 움직인다.

그는 자신의 연기론마저 완성하려 하지 않는다.

좋은 답을 오래 지키는 것보다, 지금의 답이 여전히 유효한지 다시 묻는 쪽을 선택한다.

[전,란]의 범동은 그 변화가 드러나는 인물이다.

범동은 논리적 추론보다 삶에서 얻은 직관으로 움직인다. 김신록 역시 고향의 언어인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면서 자신에게 익숙했던 이성적 접근과 다른, 조금 더 ‘날것’의 에너지를 꺼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연기에서 감정이 때때로 크게 폭발하는데도 이상하게 과잉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처한 조건을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로 감정이 발생한다.



반대로 무대에서는 여백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1인 16역의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김신록은 여러 인물을 완벽하게 분리해 흉내 내는 방법보다 ‘배우의 하나뿐인 몸과 여러 인물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고민했다. 심지어 서술자조차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존재로 만들기보다 인물들과 일정한 거리를 둔 하나의 존재로 남겨두고 싶다고 했다.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관객에게 감정을 정확하게 지정해주기보다 관계와 에너지를 만들어놓고 그 사이를 바라보게 한다.

그런 태도는 2024년 직접 연출하고 출연한 [없는 시간]으로도 이어진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극장 안의 존재들이 서로를 침범하고 무너뜨리며 뒤섞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혼자 완결된 존재보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존재에 관심을 두는 그의 오래된 질문이 연기에서 연출로 확장된 셈이다.

그래서 김신록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공감은 조금 독특하다.

그는 인물을 쉽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분리하지 않는다.

진화영의 욕망에서도 결핍을 찾고, 박정자의 공포에서는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의 몸을 바라본다. 범동의 거친 충동에서도 한 사람이 살아오며 몸에 새긴 직관을 발견한다.

인물을 용서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한 번 더 바라보게 한다.


이해한다는 것은 동의하는 일이 아니라,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도 하나의 세계가 있었음을 상상하는 일인지 모른다.

김신록을 지금 다시 바라볼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뒤에도 자신의 성공 방식을 반복하는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연극과 드라마, 영화 사이를 오가고, 배우들을 만나 연기에 관해 질문한 인터뷰집 [배우와 배우가]를 만들고, 다시 무대로 돌아가고, 직접 연출까지 한다. 그 책 역시 25명의 배우에게 ‘연기’를 묻는 작업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많은 공부가 확신을 만들기보다 질문을 늘린다는 점이다.

김신록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도 시기마다 생각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같은 장면을 다르게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흥미롭게 바라본다. [지옥 시즌2]와 [전,란]을 두고는 당시 자신의 연기 방법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확인하는 ‘테스트 보드’처럼 바라보기도 했다. 

어쩌면 김신록이 쉽게 말하지 않으려는 것도 바로 ‘완성’일 것이다.

나는 이런 배우라고.

연기는 이런 것이라고.

인간은 이런 존재라고.

그 문장을 너무 빨리 완성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다시 질문한다.

이번에는 내 몸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상대 배우가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카메라와 무대가 무엇을 다르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다음에는 또 무엇을 바꿔볼 수 있는지.

그래서 김신록의 작업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연기에 관한 이야기였던 질문이 어느 순간 삶에 관한 질문으로 옮겨온다.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빨리 정의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이것은 내가 잘하지 못한다고, 이제는 바뀌기 어렵다고.

김신록의 작업은 그 단정에 작은 균열을 만든다.

사람은 완성된 인물이 아니라 세계와 계속 접촉하며 달라지는 존재일 수 있다고.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결핍이라기보다 가능성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인물이라는 건 하나의 개별자가 아니라 그 사람이 만나는 세계의 총체”
김신록이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인터뷰에서 밝힌 인물에 대한 관점이다. 그의 연기가 한 사람의 감정을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사람을 만든 관계와 환경까지 향하는 이유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하다.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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