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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사람은 같은 실수를 조금씩 다르게 반복한다

영화감독 홍상수가 일상의 반복 속에서 발견해온 인간의 우스움과 진심

미디어2026. 08. 12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상한 기시감이 생긴다.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식당, 카페, 골목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밥을 먹으며 사랑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호감을 표현하고,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다음 날에는 어제와 조금 다른 말을 한다.

큰 사건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소함 속에서 인간의 민망할 만큼 솔직한 얼굴이 나타난다.

홍상수가 반복해서 붙잡아온 질문은 어쩌면 이것에 가깝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 알고 있는가.”

그의 영화 속 사람들은 자신을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술이 들어가고 관계가 꼬이면 말과 행동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사랑을 말하면서 상대를 소유하려 하고, 진실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을 선택한다.

홍상수는 그 모순을 폭로하듯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 인간은 악하기보다 우습고, 선하기보다 복잡하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이러한 세계관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다.

비슷한 만남이 두 번 반복된다.

영화감독과 화가가 만나 대화하고, 술을 마시고, 서로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두 번째 이야기는 첫 번째와 조금씩 다르다.

말 한마디가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가 관계 전체를 바꾼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진실인지 판정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상황과 감정에 따라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는 사실이다.

홍상수에게 반복은 같은 장면을 되풀이하는 형식이 아니라, 인간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방법이다.



[북촌방향]에서도 시간은 직선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비슷한 장소와 사람들이 되돌아오고, 우연한 만남이 겹친다. 그의 영화에서 우연은 사건을 극적으로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기본 조건에 가깝다.

우리는 계획한다고 생각하지만 삶의 많은 부분은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순간들로 결정된다.

그는 실제 영화 제작에서도 이런 우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배우와 장소를 먼저 정한 뒤 완성된 각본 없이 시작하고, 촬영 직전 대본을 쓰는 방식은 잘 알려져 있다. 배우에게 충분한 예측의 시간을 주지 않는 것도 계산된 선택이다.

미리 너무 많은 것을 상상하면 안전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고, 그 순간 현재의 생생함이 사라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영화는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에 반응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영화’에 더 가깝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 역시 그렇다.

홍상수는 좀처럼 관객에게 여기서 슬퍼해야 한다고 지시하지 않는다.

음악으로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고, 클로즈업으로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조금 떨어져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러다 갑자기 줌이 들어간다.

그 단순한 움직임만으로 평범했던 대화의 온도가 미묘하게 변한다.

감정을 확대하기보다 감정이 발생하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이상할 만큼 많은 여백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말하지 못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왜 사랑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바라보지는 못한다.

그가 ‘무엇을 말하지 않으려 하는가’를 생각하면 이 지점이 흥미롭다.



홍상수는 자신의 인물을 규정하려 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배우에 관해 미리 어떤 정의를 말하는 것 자체가 배우와 관객을 하나의 틀에 가둘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영화 역시 비슷하다.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이 관계는 잘못되었다.

이 장면의 의미는 이것이다.

그런 문장을 감독이 대신 완성하지 않는다.

판단 이전에 인간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본다.

그의 작품에서 공감은 바로 그 불완전함에서 생긴다.

우리는 누구나 말을 잘못한 적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비겁했던 적이 있으며, 어제의 확신을 오늘 바꾼 적이 있다.

그 사실은 자랑스럽지 않지만 인간적이다.

홍상수는 그런 순간을 영화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민망함을 화면 한가운데 놓는다.

그래서 그의 영화가 건네는 것은 위로라기보다 묘한 인정에 가깝다.

사람은 그렇게 단정한 존재가 아니라는 인정.

그리고 삶은 한 번의 선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을 조금씩 다르게 통과하면서 이어진다는 감각.

지금 홍상수를 다시 집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사람을 너무 빠르게 판단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몇 개의 장면과 몇 문장의 말로 누군가를 설명하고, 하나의 선택으로 한 사람 전체를 규정한다.

하지만 홍상수의 영화는 정반대의 시간을 요구한다.

조금 더 바라보고, 다시 바라보고, 같은 장면을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라고 한다.

그의 영화에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욕망에 흔들린다.

그런데 아주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한다.

어쩌면 변화란 바로 그 작은 차이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제와 비슷한 오늘에서 아주 조금 다른 말을 해보는 것.

홍상수는 거창한 세계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식당과 골목, 술자리와 대화 속에서 인간을 발견한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당신 자신도, 다시 바라보면 조금 다른 사람이 아닐까.

“너무 많이 연습하면 신선함이 사라집니다.” — 홍상수, 2025년 칸영화제 인터뷰

글  :  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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