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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인생이라는 노선에서 우리는 모두 한 번쯤 같은 버스를 탄다

『리치먼드힐의 이층 버스』가 들려주는 낯선 도시에서 발견한 삶과 사람의 온기

미디어2026. 06. 22
어떤 여행은 풍경보다 사람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높은 빌딩도, 유명한 관광지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나눈 짧은 대화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이경진의 『리치먼드힐의 이층 버스』는 바로 그런 기억을 담아낸 책이다. 캐나다 토론토 북부의 리치먼드힐을 오가는 이층 버스를 중심으로, 저자는 일상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계절, 도시의 공기를 차분하게 기록한다. 출판사 소개와 독자 리뷰에서도 이 책은 단순한 해외 생활기가 아니라, 타국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에세이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의 배경인 리치먼드힐은 화려한 대도시의 중심이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평범함 속에서 삶의 본질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매일 같은 시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창밖을 바라보는 노인,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학생,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웃들. 저자는 그들의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바라보며 ‘평범함이야말로 가장 깊은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리치먼드힐의 이층 버스』의 가장 큰 매력은 거창한 사건이 없다는 점이다. 대신 누구나 지나쳤을 법한 순간을 붙잡는다. 버스 창문에 맺힌 빗방울, 겨울 아침의 하얀 숨결, 낯선 사람의 미소, 창밖으로 흘러가는 단풍길. 이러한 장면들은 독자에게도 자신의 일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책이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인생은 목적지만큼이나 함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더 빠른 길을 찾는다. 더 높은 곳, 더 좋은 결과를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저자는 천천히 달리는 버스 안에서 오히려 삶의 속도를 배운다. 서두르지 않아도 계절은 바뀌고, 사람은 성장하며, 하루는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경진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지만 감상적이지 않다. 사람을 이상화하지도 않고,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하지도 않는다.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외로움도,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낯섦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사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 위로받는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낯선 사람도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 하나의 풍경이 된다’는 시선이다. 매일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서로 이름조차 모른다. 하지만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기억하고, 존재를 인식하며, 어느새 익숙한 이웃이 된다. 관계란 거창한 인연이 아니라 같은 시간을 함께 견디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책은 조용히 들려준다.

이 책은 여행 에세이이면서도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도시를 설명하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감정을 기록한다. 그래서 독자는 캐나다라는 공간보다 자신의 삶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친 사람들, 자주 가는 카페의 직원, 늘 같은 시간 산책하는 이웃처럼 우리가 지나쳐 온 풍경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또 하나 깊이 남는 주제는 ‘낯선 환경은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한다’는 점이다. 익숙한 공간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이 새로운 도시에서는 드러난다. 혼자 걷는 시간, 다른 문화 속에서 느끼는 거리감, 언어가 통하지 않는 순간들 속에서 저자는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결국 여행은 장소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시선을 바꾸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철학적으로 『리치먼드힐의 이층 버스』는 느림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효율과 속도가 중요해진 시대일수록 잠시 멈춰 주변을 바라보는 일이 더욱 소중해진다. 버스는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 느린 속도 덕분에 우리는 창밖의 풍경을 보고,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책이 주는 위로는 특별한 해결책이 아니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 대신,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공감에 가깝다. 낯선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같은 외로움을 견디며, 작은 친절 하나에 웃는다. 그래서 독자는 자신의 삶도 그리 특별하게 외로운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빠르게 이동하지만 너무 천천히 관계를 만든다. 수많은 사람과 스쳐 지나가지만 진심으로 바라보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리치먼드힐의 이층 버스』는 그 속도를 잠시 늦추라고 말한다. 창밖을 바라보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존재를 느끼고,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살아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이 책은 버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나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풍경이 되어 준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은 도착한 순간이 아니라 함께 이동했던 시간 속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목적지보다 오래 기억되는 것은,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당신의 인생이라는 버스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글  :  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