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티스트
반말 미디어에 찾아온 열네 번째 친구
간단히 자기소개 해줘. 집에서 애 보면서 디자인하고, 육아툰 그리고 있는 이다운이야.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건 뭐야? 일어나자마자 애들 밥 챙겨. 옆에서 계속 밥 달라고 하거든. 둘째가 23개월인데 먼저 일어나서 "아빠, 빵 줘", "딸기 줘" 이러면서 침대부터 난리야. 그래서 온 가족이 다 깨고, 나는 바로 어제 미리 생각해둔 메뉴 꺼내서 준비해. 고구마 까서 잘라주고, 딸기 주고, 토마토 주스 주고. "이거 먹고 있어" 해놓고 그 다음에 옷 준비하고 그래.

하루 중에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야? 애들 8시 20분에 보내고 나서 소파에 앉아서 커피 마시는 시간. 양평 살거든. 창밖에 먼 산이 보여. 그 산이 잘 보이면 미세먼지 없는 날이야. 그거 보면서 커피 마실 때가 제일 여유 있어. 밤 시간이 더 좋을 줄 알았어. 아니, 밤은 힘들어. 애들 재우고 나면 9시쯤인데 그때부터 내 일을 시작해야 하거든. "이거 해야 되는데…" 하면서 운동도 하고 싶은데 못 할 것 같고, 생각만 많아지면서 처져. 그래서 난 아침이 더 좋아.

아무 제약 없이 살 수 있다면 제일 하고 싶은 건? 킥복싱 대회 나가는 거. 20대 후반에 아마추어 선수 했었거든. 회사 생활하면서 뒤늦게 다닌 거라 30대 초반에 그만뒀는데, 아직도 애들 대회 나가는 거 보면 나도 너무 나가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한 6개월 제대로 준비해서 대회 한 번 나가보고 싶어. 육아로 잃어버린 테스토스테론… 아, 한 번만 다시 느껴보고 싶다. (웃음) 킥복싱의 매력이 뭐야? 하면 할수록 내가 성장하는 게 보이는 거. 운동은 진짜 솔직해서 하면 한 만큼 나오거든. 나도 울면서 운동했어. 안 되니까 너무 답답해서. 근데 결국 되더라. 그때 인생 많이 배웠어. "포기만 안 하면 된다"는 거. 그래서 애들한테도 꼭 운동 시키고 싶어. 좋아하는 작품 있어? The Iron Giant 혹시 알아? 이거 진짜 좋아해. 지금 봐도 울어. 외계에서 떨어진 로봇이 머리를 다쳐서 꼬마랑 만나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원래는 살상병기였거든. 근데 마지막엔 지구를 구해. 나는 '희생'이라는 키워드가 좋아. 내 사랑의 언어가 봉사와 희생이라서. 아빠로서, 남자로서 희생하는 게 사랑이라는 걸 계속 상기시켜주는 작품이라 되게 좋아해. 나는 진격의 거인 좋아하는데. 아… 그건 만화가 아니지, 철학이지. 근데 내용이 너무 복잡해서 볼 때 마음이 힘들어ㅎㅎ 깔끔하게 '희생'과 '사랑'을 느끼고 싶다면 아이언 자이언트를 추천해

SNS에 '삶과 디자인의 일치'라는 말이 있던데. 와이프랑 이야기하다 찾은 마음의 태도야. 디자인 하다 보면 나를 속이게 되는 순간이 많아. 내가 얼마나 고민했고,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유가 탄탄하지 않으면 설득할 때 말이 길어지거든. 있는 척을 해야 하니까. 삶도 똑같더라. 내 삶을 끌고 가는 기준이 없으면 텅 비어.
그래서 회사도 그만뒀고, 아이도 직접 키우고, 양평으로 이사온 거야. 디자인도 마찬가지야. 색 하나, 선 하나에도 이유가 있어야 해.


일을 하다 보면 그 방향을 풀어내기 쉽지 않을 때도 있지 않아? 맞아. 그래서 디자인은 결국 설득의 예술 같아. 클라이언트가 "A랑 B를 섞어서 C를 만들어주세요"라고 수정 요청하는 건 내가 완벽하게 설득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다음엔 수정 못 하게 설득해보자, 이렇게 생각해.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전환한 이유가 궁금해. 아기를 더 잘 케어하고 싶었어. 근데 더 크게 보면 '어떤 삶을 살 건가'에 대한 고민이었어. 회사 다니면서 보니까 아침에 출근하고 칼퇴를 해도 집에 와서 정리하면 늦어도 8시인데, 내가 마치 '달' 같은 기분이 들더라. 이 가정은 '지구' 같고, 나는 계속 지구에 살고 싶은데 주변만 돌고 있는 느낌. 애낳고 나면 이 생활에 둘 다 불행해질 게 너무 뻔했어. 그래서 그만뒀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아내가 많이 도와줬어. 내가 불안해하고 힘들 때마다 "1년은 그냥 놀아봐" 이랬거든. 직장인 마인드 빼야 된다고. 진짜 1년 동안 되게 행복하게 살았어.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뭐 할까?" 하면서. 주변 반응은 어땠어? 아내랑 나만 신났고. (웃음) 장인어른은 당황하셨고, 형님은 "행복하게 해준다더니 왜 회사를…" 우리 엄마도 "그래도 남자가 회사는 다녀야지" 하시더라고. 그런 갈등은 어떻게 버텼어? 무시해야 돼. 설득 안 돼. 각자 가치관이 너무 다르니까. 예전엔 설득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안 해.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상대 인생은 상대가 책임지는 거니까. 부모님한테는 이렇게 말해. "엄마 아빠가 열심히 산 거 알고 고마워. 근데 나도 내 인생 내가 책임지고 살게. 이제는 나 신경 쓰지 말고 엄마 아빠 노후 잘 챙겨." 그렇게 정리해. 육아툰 애개육아는 어떻게 시작했어? 육아 시작했는데 너무 힘든 거야. "왜 아무도 이걸 안 알려줬지?" 싶었어. 그러면서 여성들의 삶을 다시 보게 됐고, 이 구조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 아내가 회사 취직하면서 내가 육아하게 됐는데,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애 보는 게 당연하다"는 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더라고. 오히려 초반 육아는 남자가 더 적합한 부분도 있어. 여자는 출산으로 몸이 망가져 있고, 초기 육아는 체력 싸움이니까. 그래서 "남자가 육아하는 사회가 더 건강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고, 재밌게 풀어보자 해서 시작했어. 톤이 되게 유쾌하더라. 유머 진짜 중요해, 나한테. 말로 웃기는 거 좋아하고, 컷 전환이나 살짝 비트는 방식이 세련된 유머라고 생각해. 잠깐, 근데 너... 만화만 보고 팔로우는 안 한 거 같던데...? ㅋㅋ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야? 애들 재우고 나서 밤에 혼자 있을 때. 할 일 많을 때도 힘들고, 없을 때는 더 힘들어. "나는 뭐지?" 이런 생각 들거든. 집안일은 돈으로 보상이 없잖아. 그래서 "내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나?" 싶어. 친구들 성과급 얘기 들으면 "내 연봉 얼마지?" 이런 생각 들고 좀 씁쓸해. 올해는 공황도 왔고, 봉와직염도 걸렸어. 인생에서 제일 힘든 해였어. 힘들 때 극복하는 방법은 있어? 운동 그리고… 도망가기. 예전엔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힘들면 잠깐 빠져도 된다"라고 생각해. 정신과 상담도 받고 약도 먹으면서 느꼈는데, 이건 나약한 게 아니라 나를 돌보는 방법이더라. 잠깐 빠졌다가 다시 돌아와서 해결해. 그래도 잘 선택했다 싶은 순간은? 애들이 밥 먹을 때. 밖에서 실컷 놀고 나서 식당 가면 진짜 미친 듯이 먹어. 칼국수, 돈가스 이런 건데 너무 맛있게 먹어. 나는 그냥 보고만 있어.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 셋이서 서로 먹겠다고 싸우면서 먹는 모습 보면 눈물 날 것 같아.

아내 얘기를 자꾸 하게 되네. 어떤 존재야? 와이프는… 진짜 크지. 지혜롭고. 나는 항상 "나 결혼 잘했다"라고 말해. 맨날 놀리지만 진짜 감사한 존재야. 평강공주야. 둘은 어떻게 만났어? 소개팅. 원래 비혼주의였거든. 돈 다 써서 외제차도 사고 "그냥 즐기면서 살겠다" 이런 상태였지. 근데 소개팅 나가게 됐고 2월 1, 2, 3일 내내 보고, 3일에 사귀고, 3월에 프로포즈, 10월에 결혼. 엄청 급진적이네. 나도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예전에 이상형 리스트를 써놨거든, 기도하면서. 근데 만나고 나서 "딱 이 사람이네?" 이 느낌이었어. "이 친구 놓치면 결혼 안 한다"였어. 그래서 밀어붙였지. 구체적으로 기도하세요 자매님 (웃음)


지금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건? 가족. 가족밖에 없어. 육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나에게 한마디. "네가 생각하는 거 다 틀릴 수 있어. 장담하지 마. "삶은 장담하면 안 되는 것 같아. 항상 배우는 태도로 가야 돼. 앞으로의 계획은? 미지의 영역이야. 지금 양평에서 귀농 수업 받고 있고 디자인이랑 접목해보려고 해. 돌아보면 계획대로 된 건 하나도 없더라. 그냥 그때그때 열심히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 올해 목표 중 하나는 아이한테 동화책 만들어주는 거.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걸 책으로 남기고 싶어. 가능하면 ISBN 받아서 정식 출판까지. 마지막으로 한마디. 오랜만에 어른과의 대화 즐거웠어. 결혼하세요!!!

글 : 황보라 에디터
bora@wefeel5.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