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티스트
현대미술가 김수자가 몸으로 질문해온 자리
김수자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그 질문은 장소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인간의 존재로 이어진다.
김수자의 대표적인 작업인 [A Needle Woman]에서 그는 세계 여러 도시의 한복판에 서 있다. 도쿄, 뉴욕, 델리, 라고스, 상파울루.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서로 다른 리듬을 가진 도시들 속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 있다.
사람들은 그를 스쳐 지나간다.
군중의 흐름 속에서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장면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다.
**“인간과 세계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김수자는 자신을 “바늘”에 비유한 적이 있다.
천을 꿰매는 바늘처럼 사람과 사람, 장소와 장소 사이를 연결하는 존재. 그의 작업에서 바늘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세상을 가로지르기보다 조용히 통과하는 태도.
이 태도는 그의 또 다른 작업인 ‘보따리’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의 전통적인 천 보자기에 물건을 싸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의 방식이 아니다. 기억과 삶을 담아 이동하는 하나의 구조다.


김수자는 이 보따리를 통해 이동과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이동하는가. 그 질문은 작품 속에서 조용히 반복된다. 김수자의 작업에서 감정은 과장되지 않는다. 그는 분노나 선언 대신 정적을 선택한다. 군중 속에 서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 천천히 흔들리는 천, 조용히 놓인 보따리. 그 장면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감정은 외부로 터지기보다 내부에서 울린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종종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관객은 작품을 이해하기보다 먼저 경험한다. 군중 속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떠올린다. 수많은 사람 사이에 서 있는 나 자신. 그 장면은 묘한 공감을 만든다.


김수자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자주 ‘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몸은 이동하고, 멈추고, 기억을 담는다. 그의 작업에서 몸은 하나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거대한 구조를 만들기보다 자신의 존재를 공간에 놓는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거의 말하지 않는 해석이다.
자신의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정하지 않는다. 관객이 각자의 경험으로 작품을 읽기를 기다린다.
그 태도는 작품의 방식과도 닮아 있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김수자의 작품에서 위로는 직접적인 언어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감각이 남는다.
세계가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때,
우리는 잠시 멈출 수 있다는 감각.
군중 속에서 가만히 서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은 그 자체로 질문이 된다.
지금 김수자를 다시 집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는 점점 더 빠르게 연결되고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개인은 종종 방향을 잃는다.
그럴 때 김수자의 작업은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 질문은 거대한 철학이 아니라, 아주 개인적인 감각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가 지나온 길, 내가 떠날 곳.
김수자의 작품은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흐름을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그의 작업은 예술이라기보다 하나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세상 속을 통과하는 방법에 대한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