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 & 전시
배움은 나이를 묻지 않는다, 다만 용기를 묻는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웃음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삶으로 귀결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 대신 묻는다. 우리는 왜, 하고 싶은 것을 미루며 살아왔는가.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채 평생을 살아온 이들이 교실에 모이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써 내려간다. 이 단순한 행위는 예상보다 훨씬 깊은 울림을 만든다.
이 작품의 세계는 거창하지 않다. 작은 교실, 삐뚤한 글씨, 서툰 발음. 그러나 그 안에는 오랜 시간이 쌓여 있다. 글을 몰라 겪어야 했던 불편함, 말하지 못했던 감정, 그리고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순간들.
“글을 모른다는 건,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일이다.”
이 문장은 작품의 출발점이 된다. 단순한 문해력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로 확장된다.
할머니들은 처음에는 웃음으로 시작한다. 틀린 발음, 엉뚱한 대답, 교실 안의 소란스러운 분위기. 관객은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웃음은 다른 감정으로 변한다. 왜 이들은 지금까지 배우지 못했을까. 왜 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을까.


뮤지컬은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사회적 맥락을 드러낸다. 교육에서 소외되었던 세대, 특히 여성으로서의 삶. 누군가는 공부 대신 가족을 선택해야 했고, 누군가는 선택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은 ‘늦은 배움’이 아니라, ‘늦게 주어진 기회’에 대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비극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밝고 경쾌한 리듬을 유지한다. 노래는 유쾌하고, 장면은 따뜻하다. 이 대비는 감정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특히 인상적인 순간은, 각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는 장면이다. 처음으로 써 내려간 문장. 서툴지만, 그 안에는 누구보다 정확한 감정이 담겨 있다. “나는 이제, 내 이야기를 내가 쓸 수 있다.” 이 문장은 단순한 배움의 결과가 아니라, 삶의 주체가 되는 선언이다.


뮤지컬 〈가시나들〉이 전달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배움은 지식을 얻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것. 글자를 익히는 순간, 세상을 읽는 방식도 함께 바뀐다. 이 작품이 주는 위로는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여전히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 시작이 생각보다 큰 변화를 만든다는 사실. 늦은 시작은 실패가 아니라, 다른 출발선일 뿐이다. 극장을 나서는 순간, 관객은 질문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나는 무엇을 미루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것은 정말 늦은 것인가. 이 작품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선택을 남긴다. 지금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미룰 것인가. 배움은 언제나 열려 있지만, 시작은 언제나 스스로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