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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존재들의 가족 선언: 《릴로 & 스티치》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

‘오하나’라는 한 단어가 세상을 견디게 할 때

미디어2026. 02. 09
하와이의 푸른 바다와 느긋한 공기 속에서 시작되는 《릴로 & 스티치》는 사실 꽤 외로운 이야기다. 부모를 잃은 소녀 릴로, 동생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언니 나니, 그리고 실험체 626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외계 생명체 스티치. 이들은 모두 어딘가에서 ‘문제’로 분류된 존재들이다. 영화는 그 낙인에서 출발한다.

스티치는 파괴하도록 설계된 존재다. 그는 본능적으로 부수고 망가뜨리며 도망친다. 하지만 릴로는 그를 ‘괴물’이 아닌 ‘친구’로 본다. 이 단순한 시선의 전환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 된다. 존재는 본질로 규정되는가, 아니면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가. 릴로의 선택은 후자에 가깝다. 그는 스티치를 길들이지 않는다. 대신 곁에 둔다.

영화가 반복해서 들려주는 단어는 “오하나(Ohana)”다. 가족을 뜻하는 이 하와이어는 혈연 이상의 의미를 품는다. 오하나는 선택이고, 책임이며, 끝까지 남는 태도다. “가족은 버려지지 않는다”는 문장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선언에 가깝다. 사회에서 밀려난 존재들에게 이보다 더 직접적인 위로가 있을까.

릴로는 조금 다르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엉뚱한 취향과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 모습은 때로 어색하고, 때로는 위태롭다. 하지만 영화는 그 다름을 교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름이 관계를 통해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스티치 역시 릴로를 통해 변한다. 파괴 본능을 완전히 잃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멈출 이유를 배우게 된다. 여기서 영화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변화는 억압이 아니라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것.

《릴로 & 스티치》는 가족의 형태를 다시 묻는다. 전통적인 구조가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서로를 묶을 수 있을까. 나니는 완벽하지 않다. 지치고, 화내고, 실수한다. 그럼에도 그는 떠나지 않는다. 그 반복이 가족을 만든다. 영화는 완벽한 보호자가 아니라, 끝까지 곁에 남는 사람이 가족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이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스티치였고, 또 한 번쯤 릴로였다. 이해받지 못해 방황했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 애썼다. 영화는 거창한 교훈 대신 작은 행동을 보여준다. 손을 잡는 것, 이름을 불러주는 것, 함께 밥을 먹는 것. 그 사소한 장면들이 관계를 지탱한다.

디즈니 특유의 유머와 경쾌함 속에서도 이 영화는 결코 가볍지 않다.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 혼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은 현실의 감정과 닮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웃다가도 잠시 멈춘다. 스티치가 조용히 말할 때, 그 울림은 예상보다 깊다.

결국 《릴로 & 스티치》는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오하나인가. 그리고 당신은 누구를 끝까지 남겨둘 것인가. 혈연이 아니어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함께 남겠다는 선택, 그것이 이 영화가 오래도록 유효한 이유다.

“오하나는 가족이야. 가족은 버려지지 않아. 잊혀지지도 않고.” — 《릴로 & 스티치》
이 문장은 영화의 심장과 같다. 관계란 완벽함이 아니라,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글  :  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