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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것은 도시가 아니라, 사유의 중심이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과장된 설정 속에 밀어 넣어, 질문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장르다. 좋은 SF는 언제나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남긴다. 재난 역시 마찬가지다. 물이 차오르는 이유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상황 속에서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는가이다. 〈대홍수〉는 이 중요한 지점에서 길을 잃는다. 영화는 홍수, 첨단 생명과학, 인간 복제, 모성애라는 강력한 키워드들을 한 화면 안에 쏟아 붓지만, 그것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밀어붙이지 못한다. 질문은 많지만 중심은 없다. 무엇이 이 이야기의 핵심인지, 이 재난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지 끝내 정리되지 않는다. 안나의 선택은 이 혼란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아이를 향한 감정은 모성인가, 실험의 결과물에 대한 집착인가. 이 질문 자체는 흥미롭다. 그러나 영화는 그 질문을 사유의 장으로 확장시키지 않는다. 갈등은 설정으로만 존재하고, 고민은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선택의 순간은 있어도, 선택의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관객은 함께 고민할 틈을 얻지 못한 채 다음 장면으로 떠밀린다. 결국 이 영화의 재난은 인간을 시험하지 않는다. 희생도, 연대도, 윤리적 딜레마도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홍수는 배경으로만 남고, 인물들은 물 위를 떠다니는 설정의 조각처럼 보인다. 재난영화도, SF도, 드라마도 아닌 어딘가에 머무른 채, 영화는 스스로 묻지 못한 질문을 관객에게 떠넘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홍수〉가 완전히 무의미한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이 실패는 한국 SF가 앞으로 반드시 붙잡아야 할 과제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기술과 자본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 스케일이 아니라, 그 스케일을 관통하는 철학.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물이 아니라, 질문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남긴 가장 큰 여운은 위로가 아니라 아쉬움이다. “이 설정으로, 이 예산으로,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라는 공허함. 그러나 그 공허함조차 우리가 다음 이야기를 더 잘 만들기 위한 재료가 될 수 있다면, 이 실패 역시 하나의 기록이 된다. 홍수는 지나가지만, 질문은 남아야 한다. SF는 바로 그 질문을 위해 존재하니까.
글 : 이재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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