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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 전시

당신이 선택한 장면이, 당신의 이야기다 — 「슬립노모어 서울」

무대가 사라진 자리에서, 관객이 서사의 일부가 된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객석과 무대를 지운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이 비극을 어디까지 따라갈 것인가.

미디어2026. 02. 24
「슬립노모어 서울」은 영국 Punchdrunk의 오리지널 작품을 기반으로 한 이머시브(immersive) 퍼포먼스다. 관객은 입장과 동시에 흰 가면을 쓰고, 대사 없이 펼쳐지는 공간 속으로 흩어진다. 고정된 좌석도, 명확한 시작과 끝도 없다. 단서가 되는 것은 오직 공간과 움직임뿐이다.

이 작품의 세계관은 셰익스피어 『맥베스』를 중심으로 하지만, 단순한 각색이 아니다. 마녀의 예언, 권력에 대한 욕망, 살인과 죄책감이라는 고전적 구조는 유지하되, 서사는 파편처럼 흩어진다. 관객은 호텔, 병원, 술집, 침실, 숲을 닮은 공간을 오가며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이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관객이 관찰자가 아니라 목격자라는 점”이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설명되지 않는다. 배우는 말하지 않고, 음악과 신체 움직임, 조명과 공간이 감정을 전달한다. 누군가는 레이디 맥베스를 따라가고, 누군가는 마녀를 좇는다. 어떤 관객은 살인의 장면을 목격하고, 또 다른 관객은 전혀 다른 공간에서 고독을 마주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공연을 봐도 각자가 경험하는 이야기는 다르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 이 작품이 전하는 철학과 연결된다. 욕망과 선택은 결국 개인의 몫이라는 것. 맥베스가 예언을 듣는 것은 우연이지만,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그의 의지다. 관객 역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면할지 스스로 결정한다.

서울 프로덕션은 한국적 공간 감각을 더해, 서늘한 호텔이라는 설정을 보다 입체적으로 구현한다. 좁은 복도와 문이 많은 구조는 관객의 긴장을 높이고, 언제든 배우와 마주칠 수 있는 거리감은 몰입을 극대화한다. 이곳에서 당신은 단순히 이야기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사 속을 배회하는 존재가 된다.


“우리는 언제 욕망을 선택하는가, 그리고 언제 그것을 멈출 수 있는가.”
「슬립노모어 서울」은 이 질문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살인의 장면, 광기의 춤, 무너지는 인물의 몸짓을 통해 보여준다. 욕망은 화려하지만, 그 끝은 공허하다. 그리고 그 공허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는 이는 바로 관객이다.

이 공연은 위로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사유를 남긴다. 인간은 왜 같은 비극을 반복하는가. 권력과 사랑, 질투와 두려움은 왜 항상 파국으로 이어지는가. 그러나 이 작품이 남기는 또 다른 메시지는 이것이다. 비극을 목격한 사람은, 적어도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을 자유를 가진다.

가면을 벗고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 관객은 묘한 감정을 느낀다. 분명히 한 이야기를 보았지만,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것이 이 작품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삶 역시 한 번에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Fair is foul, and foul is fair.”— 셰익스피어 『맥베스』
(아름다운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아름답다.) 당신은 오늘 어떤 장면을 따라갈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은, 당신의 삶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

글  :  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