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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 전시

죽음보다 웃긴 것은 삶이다 — 뮤지컬 「비틀쥬스」

유령보다 더 외로운 사람들에 대하여

미디어2026. 02. 24
뮤지컬 「비틀쥬스」는 팀 버튼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기묘한 상상력과 블랙코미디를 무대 위에 옮긴 작품이다. 교통사고로 죽은 아담과 바바라 부부는 자신들이 살던 집을 떠나지 못한 채 유령이 된다. 그 집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 오고, 죽음을 동경하는 소녀 리디아와, 수다스럽고 제멋대로인 생계형 유령 비틀쥬스가 얽히면서 이야기는 폭주한다.

표면적으로 이 작품은 소란스럽다. 빠른 전개, 메타적인 농담, 파격적인 무대 장치와 의상, 관객을 직접 겨냥하는 유머. 그러나 이 화려함 속에 숨어 있는 핵심은 단순하다. “상실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리디아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그녀는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유령과 더 쉽게 대화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삶에 대한 애착을 잃어버린 상태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비틀쥬스」는 의외로 섬세해진다. 리디아의 노래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남겨진 자의 고백처럼 들린다.


비틀쥬스는 혼란의 중심에 있지만, 동시에 가장 고독한 인물이다. 그는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소란을 피운다. 이름을 세 번 불러야 나타나는 존재. 즉, 불리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존재다. 그의 과장된 행동 뒤에는 **“나는 여기 있다”**라고 외치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다.

이 작품의 세계관은 죽음조차 행정적으로 처리되는 공간이다. 사후세계는 관료적이고, 규칙으로 가득하며,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이 설정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과 닮아 있다. 삶과 죽음 모두, 감정보다 시스템이 먼저 움직이는 세계. 그래서 작품은 묻는다. 우리는 과연 감정을 제대로 애도하고 있는가.

뮤지컬 넘버들은 경쾌하지만 가사의 결은 날카롭다. 웃음은 방어기제처럼 작동한다. 관객은 크게 웃다가도, 문득 멈칫하게 된다. 죽음을 희화화하는 순간에도, 상실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리디아가 다시 삶을 선택하는 순간은 이 작품의 철학을 응축한다. 죽은 자와 머무는 대신, 살아 있는 사람과 연결되기로 결심하는 장면. 그것은 망각이 아니라, 상실을 안고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비틀쥬스」는 말한다. 죽음을 마주한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실을 통과한 사람만이 진짜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이 작품이 남기는 위로는 유쾌하다. 울지 말라고 하지 않고, 대신 함께 웃는다. 슬픔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잠식되지 않게 한다. 블랙코미디라는 형식은 그래서 적절하다. 삶은 늘 진지하기만 하지 않으니까.

극장을 나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잊혀지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 존재를 인정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라는 것을.


“죽음은 끝이 아니야. 끝은, 아무도 네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거지.” — 뮤지컬 「비틀쥬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이름을 불러주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이름은 누군가의 삶에서 여전히 불리고 있는가?

글  :  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