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 & 전시
환상의 세계에서 배우는 가장 현실적인 성장. 이름을 빼앗긴 순간에도, 치히로는 끝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뮤지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신들의 온천장이라는 독특한 세계를 무대 위에 구현한다. 인간 세계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질서를 가진 공간. 이곳에서 치히로는 계약을 맺고 ‘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 작품의 세계관은 환상적이지만, 그 구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름을 빼앗긴다는 것은 곧 정체성을 잃는다는 뜻이다. 유바바는 치히로의 이름을 지우고, 노동과 규칙으로 그녀를 통제한다. 그 장면은 어른이 된다는 과정, 혹은 사회에 편입되는 순간과 닮아 있다. 우리는 종종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포기한다.
이 작품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가.”



치히로는 처음에는 겁 많고, 투덜대며, 의존적인 아이로 등장한다. 그러나 낯선 세계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면서 점점 단단해진다. 하쿠를 기억하고, 가오나시를 두려움 대신 연민으로 바라보며,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성장의 방식이 경쟁이나 승리가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는 힘’**이라는 점이 이 작품의 철학이다.
가오나시라는 존재는 특히 인상적이다. 그는 욕망을 흡수하며 괴물이 되지만, 진심 어린 환대를 받자 조용히 변한다. 욕망은 채워지지 않으면 폭주하고, 이해받으면 멈춘다. 이 메시지는 지금의 사회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소비와 경쟁 속에서 비대해진 욕망은 결국 공허함을 남긴다.
하쿠 역시 정체성을 잃은 존재다. 자신의 본래 이름을 잊어버린 그는 유바바에게 예속된 채 살아간다. 치히로가 그의 이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이 장면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누군가의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큰 구원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대 연출은 원작의 상상력을 물리적 공간으로 확장한다. 인형과 앙상블, 움직임 중심의 연출은 애니메이션의 환상을 생생하게 구현하면서도, 연극적 상상력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짜 힘은 스펙터클이 아니라 감정의 호흡에 있다. 화려한 장면이 지나가도, 결국 관객의 마음에 남는 것은 한 소녀가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타협이 아니라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 치히로는 현실로 돌아가지만, 더 이상 예전의 아이가 아니다. 경험은 상처가 아니라 자산이 된다. 그리고 그 자산은 이름을 기억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뮤지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환상의 껍질을 두르고 있지만, 그 속은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낯선 세계에 던져지고, 계약을 맺고, 누군가의 규칙 안에서 살아간다. 그때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