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 & 전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죽음을 다루지만, 이 연극의 시선은 언제나 살아 있는 사람을 향해 있다. 떠난 이를 애도하는 대신, 남겨진 이들이 어떻게 다시 숨을 쉬게 되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메이리스 드 케랑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한 청년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청년의 죽음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연극은 그의 몸을 둘러싼 수많은 선택과 질문, 그리고 그 선택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무대 위에 올린다. 이 작품의 세계관은 철저히 현실적이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감정은 과장되지 않는다. 의료진의 언어는 차갑고 정확하며, 가족의 감정은 무너질 틈도 없이 결정의 순간으로 몰린다. 이 냉정한 구조 속에서 연극은 묻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과, 그 사람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은 어떻게 동시에 가능할까.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가 다루는 핵심 주제는 ‘장기 기증’이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근본적인 질문이 놓여 있다. 인간의 몸은 어디까지 개인의 것인가,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삶에 참여할 수 있는가. 이 연극은 생명과 윤리를 논쟁적으로 다루기보다, 감정의 층위에서 접근한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오래 남는다. 작품 속 부모는 선택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 선택은 이타적일 수도 있고,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연극은 그 결정이 옳았는지 그르렀는지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시간, 침묵, 망설임을 존중한다. 이 태도는 관객에게 깊은 공감의 여지를 남긴다. 무대는 절제되어 있고, 감정은 배우의 호흡과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과한 음악이나 장치는 오히려 배제된다. 그 덕분에 관객은 이야기에서 한 발짝 떨어져 감상자가 되기보다, 그 선택의 현장에 함께 서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된다. 누군가의 생이 끝나는 순간, 동시에 누군가의 삶이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복잡한 감정인지를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 연극이 전하는 가치관은 명확하다. 생명은 단절되지 않고, 관계 속에서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떠난 사람은 사라지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다른 누군가의 일상 속에서 다시 숨을 쉰다. 이 생각은 죽음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만든다. 끝이 아니라, 형태를 바꾼 연속으로. 그래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슬픔만 남기지 않는다. 이 작품이 주는 위로는 조용하고 현실적이다. 모든 상실이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상실은 누군가의 삶을 붙잡아주는 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만으로도, 이 연극은 충분히 말을 건다. 관객은 극장을 나서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가진 것들, 내가 언젠가 남길 것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수선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연극은 그렇게, 죽음을 통해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이어 붙일 수 있는 선택 앞에 선다면, 그 결정은 어떤 감정 위에서 내려질 것 같나요?
글 : 이재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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