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 & 전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도 괜찮다는 선언”
『킹키부츠』의 세계관은 의외로 현실적이다. 영국 노샘프턴의 낡은 구두 공장, 아버지의 유산을 떠안게 된 찰리 프라이스, 그리고 생존의 갈림길에 선 사업. 이 무대는 거대한 악당도, 비현실적인 설정도 없다. 대신 ‘망해가는 공장’이라는 아주 익숙한 현실이 있다. 찰리는 선의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늘 어딘가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아버지의 기대, 직원들의 생계, 자신의 삶 사이에서 그는 늘 “그래야만 하는 역할”을 선택해왔다. 『킹키부츠』는 이 지점에서 묻는다. 책임감은 언제부터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 되었을까. 이 질문에 균열을 내는 인물이 바로 롤라다. 드랙퀸이자 퍼포머인 롤라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관이다. 그는 세상에 맞추기보다, 세상을 자신의 무대로 바꿔버린 사람이다. 롤라가 만드는 ‘킹키부츠’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남성의 몸을 가진 사람이 하이힐을 신어도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된, 말 그대로 존재를 지탱하는 신발이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다름’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데 있다. 『킹키부츠』는 누군가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의 무게를 이해하려 한다. 찰리는 롤라를 통해 처음으로 깨닫는다. 자신이 짊어진 짐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음악은 이 깨달음을 감정의 언어로 확장시킨다. 신디 로퍼의 음악은 밝고 경쾌하지만, 그 가사는 종종 뼈아프다. 특히 롤라의 넘버들은 “강해 보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람”의 고백처럼 들린다. 화려한 메이크업 뒤에 숨겨진 외로움, 인정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이 모든 것이 무대 위에서 춤과 노래로 쏟아진다. 『킹키부츠』가 주는 가장 큰 위로는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말한다. 용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아직 신어보지 못한 신발이 있을 뿐이라고. 찰리는 사업을 통해, 롤라는 자신의 존재를 통해 서로에게 길을 내준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깨닫게 된다. 변화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아주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뮤지컬은 결국 ‘자기 수용’에 대한 이야기다. 완벽해지라는 요구 대신, 지금의 나를 인정하라는 메시지. 실패해도, 흔들려도, 이상해 보여도 괜찮다는 선언. 그래서 『킹키부츠』는 끝나고 나서도 이상하게 따뜻하다. 박수 뒤에 남는 감정은 감동이라기보다, 조금 더 나답게 살아도 되겠다는 용기에 가깝다. 지금의 당신이 신고 있는 신발은, 정말 당신의 발에 맞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신은 것은 아닐까?
글 : 이재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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