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 & 전시
누군가를 처단할 권리를 가졌다고 믿는 순간, 인간은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까. 야가미 라이토의 선택은 거창한 악의보다, 아주 사소한 확신에서 시작된다.
야가미 라이토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를 “천재 살인마”로 부르지 않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을 욕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질서와 도덕을 신뢰했던 인물이었다. 공부를 잘했고, 정의감이 있었으며, 범죄로 얼룩진 세상을 혐오했다. 그의 불행은 그 혐오가 너무 명확했다는 데 있다. 뮤지컬 속 라이토는 노트를 손에 쥔 순간, 세상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고 믿는다. “네가 바꿔라.” 이 착각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꾼다. 노트는 단순한 살인의 도구가 아니라, 라이토에게는 사명이 된다. 그는 자신을 선택받은 존재로 인식하며, 점점 인간의 자리에서 벗어난다. 흥미로운 점은 라이토가 결코 자신을 악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항상 ‘정의’를 말한다. 범죄자는 죽어도 된다고, 그래야 선량한 다수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논리는 무섭도록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관객은 불편해진다. 그의 말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라이토의 정의는 효율적이다. 빠르고, 단호하며, 감정이 없다. 그러나 그 효율성은 곧 타인의 생을 숫자로 환산하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이름 하나, 얼굴 하나. 노트 위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죽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이때부터 라이토는 정의를 수행하는 인간이 아니라, 정의 그 자체가 되려 한다. 뮤지컬은 이 지점을 음악으로 확장한다. 라이토의 넘버들은 점점 장엄해지고, 확신에 차며, 신의 언어처럼 변한다. 그가 노래할수록 관객은 깨닫는다. 이것은 승리의 노래가 아니라 고립의 노래라는 것을. 라이토는 세상을 정화한다고 믿지만, 그 과정에서 누구와도 진실로 연결되지 못한다. 가족도, 연인도, 동료도 모두 ‘연출해야 할 대상’이 된다. 엘과의 대립은 라이토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엘은 정의를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의심하고, 질문하고, 끝까지 확신을 유보한다. 반대로 라이토는 너무 빨리 결론에 도달한다. 이 둘의 차이는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니라, 세계와 인간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다. 라이토는 세상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고, 엘은 이해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그래서 라이토의 비극은 몰락이 아니라, 고립이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옳음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정의가 대화의 언어를 잃는 순간, 그것은 폭력이 된다. 라이토는 그 사실을 끝내 배우지 못한 인물이다. 이 캐릭터가 오래 남는 이유는 그가 우리와 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차라리 이 사람만 없으면 세상이 나아질 텐데.” 라이토는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긴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괴물이기 이전에, 우리의 그림자에 가깝다.
글 : 이재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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