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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흘러가다, 휩쓸리다, 남겨지다

정대건의 『급류』가 말하는 관계와 선택의 속도

이재혁2026. 01. 07
“이미 발을 들인 순간,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급류』는 조용하게 시작하지만, 읽을수록 감정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큰 사건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관계 안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끌림, 그리고 선택의 순간들을 따라간다. 정대건은 이 소설에서 사랑과 삶을 ‘통제 가능한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붙잡고 있다고 믿는 많은 것들이 얼마나 쉽게 휩쓸리는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의 세계관은 감정이 이성을 앞서는 순간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인물들은 늘 신중하게 생각하려 하지만, 관계는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한 번 발을 들이면 되돌아오기 어려운 감정의 흐름, 그것이 바로 『급류』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세계다. 이 작품에서 삶은 안정된 강이 아니라, 언제든 방향을 바꾸는 물살에 가깝다.

『급류』의 핵심 주제는 선택 이후의 시간이다. 사랑을 선택한 순간보다, 그 선택을 안고 살아가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 인물들은 자신이 내린 결정이 옳았는지 끊임없이 되묻지만, 소설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선택의 결과는 언제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사실만을 남긴다. 이 지점에서 『급류』는 로맨스라기보다 삶에 대한 소설에 가까워진다.

이 작품의 가치관은 단순한 낭만을 경계한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믿음 대신, 사랑 역시 책임과 불안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인물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 양면성을 숨기지 않는 태도가 이 소설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든다. 정대건은 관계의 실패를 도덕적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려다 겪게 되는 필연적인 충돌로 바라본다.

철학적으로 『급류』는 통제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린다. 우리는 흔히 감정을 관리할 수 있다고 믿지만, 이 소설은 그 믿음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감정은 계획보다 빠르고, 관계는 결심보다 앞서 움직인다. 그래서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늘 뒤늦게 깨닫는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사실을. 그러나 『급류』는 그 깨달음을 후회로만 남기지 않는다. 그것 역시 삶의 일부라고,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소설이 건네는 위로는 조심스럽다. 무조건 버티라고 말하지도, 쉽게 놓으라고 조언하지도 않는다. 대신 “흔들렸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급류를 건너며 살아가고 있고, 때로는 휩쓸리고, 때로는 간신히 버틴다. 『급류』는 그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너무나 인간적인 감정임을 인정해준다.

『급류』를 덮고 나면 마음이 단번에 정리되지는 않는다. 대신 오래 생각하게 된다. 내가 붙잡고 있는 관계는 어떤 속도로 흘러가고 있는지, 나는 지금 건너고 있는 급류를 알고 있는지. 이 소설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책을 읽은 이후의 삶에서도 계속해서 따라온다.


당신은 지금, 스스로도 알면서 건너고 있는 급류 하나를 품고 있지 않나요?

글  :  이재혁 에디터

admin@use9.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