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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기를 연출하다

공연·연극 연출가 양정웅이 끝내 비워두는 자리

미디어2026. 02. 19
양정웅이 반복해서 붙잡아온 질문은 단순하지만 근본적이다.
“연극은 무엇으로 살아 있는가.”

그의 작업은 형식적으로는 다채롭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고, 전통적 요소와 현대적 장치를 병치하며, 대형 야외무대에서부터 실험적 소극장까지 확장한다. 그러나 그 확장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 가지 태도가 놓여 있다. 무대는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공간’이라는 믿음.

그는 텍스트를 절대적인 권위로 다루지 않는다. 고전 작품을 연출할 때조차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지금의 시간 위에 다시 올려놓는다. 대사는 리듬을 바꾸고, 장면은 압축되거나 확장된다. 하지만 이 해체는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질문을 위한 것이다. 이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

양정웅의 감정 연출은 과장 대신 여백에 가깝다.
대형 프로젝트에서도 그는 감정을 크게 몰아붙이기보다, 순간의 정적을 택한다. 배우가 멈춰 서는 시간, 음악이 사라진 뒤의 침묵,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는 틈. 그는 그 틈에서 감정이 스스로 자라나길 기다린다.

무대 위 인물들은 종종 집단 속에 놓인다.
그러나 집단은 개인을 압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몸짓이 모여 하나의 장면을 만든다. 그는 군무나 대형 장면을 연출할 때도 개별적인 움직임을 지우지 않는다. 집단 속에서도 개인은 여전히 호흡한다.

“연극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시간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인터뷰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관객’이다.
그러나 그 관객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는 관객이 무대를 해석하는 주체라고 말해왔다. 연출가는 방향을 제시할 뿐, 결론을 대신 내려주지 않는다는 태도. 그래서 그의 공연은 명확한 메시지보다 열린 질문에 가깝다.

흥미로운 건, 그가 거의 말하지 않는 ‘권위’다.
연출가라는 위치는 무대를 통제할 수 있는 자리지만, 그는 통제 대신 조율을 택한다. 배우와 스태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리허설 과정을 작품의 일부로 여긴다. 완성된 결과보다 만들어가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

그의 작품에서 위로는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대신 같은 공간 안에서 누군가의 숨소리를 듣는 경험이 남는다. 어둠 속에서 함께 장면을 바라보는 시간. 그 시간은 말없이 연대의 감각을 만든다. 우리는 무대를 보며 타인의 몸짓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본다.

양정웅의 세계관은 거창한 선언보다 경험에 가깝다.
공연은 일회적이고, 순간적이며, 다시 재현될 수 없다. 그는 그 휘발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성 속에서 예술의 힘을 찾는다. 기록으로 남기기보다, 그 자리에 있었던 감각을 중요하게 여긴다.

지금 그를 다시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디지털 이미지와 빠른 소비가 지배하는 시대에 그는 여전히 ‘현장성’을 고집한다. 편집되지 않은 몸, 실시간의 떨림, 예측할 수 없는 실수까지 포함한 무대.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공연의 본질이라는 태도.

양정웅의 연출은 화려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은 언제나 단순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그 거리가 가까워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일.

그는 무대를 채우기보다, 비워둔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서 관객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떠올리길 기다린다.

연극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마도 그 침묵 속에 있다.

글  :  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