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티스트
뮤지컬 배우 정성화가 노래로 증명해온 시간
정성화가 반복해서 붙잡아온 질문은 명확하다. “이 인물은 왜 여기까지 왔는가.” 그의 대표작들을 떠올리면 공통된 결이 보인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영웅]의 안중근,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 이 인물들은 모두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성화는 그 신념을 영웅적 선언으로만 처리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흔들림을 보여준다. 확신에 앞서 망설임을, 결단에 앞서 고통을 통과하게 한다. 그의 감정 연출은 크지만, 과장되지는 않는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본래 감정을 확장시키는 예술이다. 그러나 정성화는 고음을 치는 순간에도 표정과 호흡을 잃지 않는다. 노래는 기술이 아니라 인물의 언어로 남는다. [영웅]의 넘버에서 울려 퍼지는 결의는 단지 힘 있는 성량 때문이 아니라, 그 이전 장면에서 쌓아온 감정의 밀도 덕분이다. 그는 눈물을 쉽게 소비하지 않는다. 관객이 울기 전에, 인물이 왜 울 수밖에 없는지 충분히 쌓아 올린다. 그래서 그의 클라이맥스는 갑작스럽지 않다. 예고 없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준비된 결과처럼 다가온다. 감정은 폭발이 아니라 축적이다. 정성화의 인터뷰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책임감’. 무대에 선다는 것, 그 역할을 맡는다는 것에 대한 무게를 여러 번 언급해왔다. 그는 캐릭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보다, 자신을 캐릭터에 맞추려 한다고 말한다. 이 태도는 스타성보다 배우로서의 본질에 가깝다. 흥미로운 건, 그가 거의 말하지 않는 부분이다. ‘최고’, ‘흥행’, ‘전설’ 같은 단어는 그의 입에서 쉽게 나오지 않는다. 대신 연습, 과정, 동료 배우와의 호흡을 이야기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기보다, 무대 전체가 살아야 한다는 태도. 그 말하지 않음은 곧 그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이 건네는 공감은 거대한 감정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 감정은 멀지 않다. 영웅의 노래 속에서도 결국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두려움과 고독이다. 관객은 위대한 인물을 보면서도, 그 안의 작은 사람을 발견한다. 정성화는 그 ‘작은 사람’을 놓치지 않는다. 위로는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대신 무대 위에서 끝까지 버티는 태도로 전달된다. 노래가 끝나고 조명이 꺼진 뒤에도, 그 인물이 지켜낸 신념이 오래 남는다. 우리는 그 시간을 함께 견딘 감각을 가져간다.
지금 정성화를 다시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뮤지컬이 점점 더 화려해지고,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그는 여전히 기본을 이야기한다. 발성보다 감정, 효과보다 서사.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 속에서 그는 시간을 들이는 배우다. 정성화는 노래를 잘하는 배우라기보다, 노래로 인물을 증명하는 배우에 가깝다. 그의 무대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신뢰로 완성된다. 어쩌면 그는 매 작품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인물이 지금 이 자리에서 부르는 노래는 진짜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관객에게도 돌아온다.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이 감정은, 우리 자신의 삶과 닿아 있는가.